[78 오름돌] 우리들의 일그러진 도서관
[78 오름돌] 우리들의 일그러진 도서관
  • 이길호 기자
  • 승인 2008.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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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미래를 보기 위해선 도서관을 가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대학 도서관을 보면 그 미래가 밝아 보이지만은 않다. 시험기간 아침에 청암학술정보관에 가보면 대부분의 좌석에 책이 놓여있다. 낮에 가보아도 다들 책 몇 권과 가방만 책상에 올려두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려서, 정작 필요한 학생이 자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곤 한다.

사람은 없는데 좌석에 책이 놓여있는 곳의 대부분은 학생들이 아침 일찍 자리를 맡은 것이 아니라, 이미 사석화 되어버린 좌석들이다. 특히 5층 칸막이 책상 같은 경우 거의 90%이상이 사석화 되어 있는 실정이다. 자신의 책과 학용품, 심지어 세면도구까지 갖춰놓는 등 ‘자기 집’인 양 자리를 만드는 문제는 이미 다른 학생들의 양해를 구하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이런 도서관의 사석화 문제는 그동안 빈번하게 논란이 되어왔으며, 이번 중간고사 기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도서관이란 곧 ‘독서실’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인식은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서관이란 그저 자신의 책을 싸들고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지겹지만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만 하는 장소라는 생각을 우리들은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다. 바글바글 학생들이 칸막이를 쳐놓고 시험답안을 암기하는 모습. 이런 도서관의 모습이 ‘진정한 지성의 본고장’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올바른 도서관 이용방법은 저녁 늦게까지 공부한 사람이 다음날 아침 일찍 오는 사람을 위해 자리를 정리하고 비워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학술정보관은 정직하게 이용하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곳이다. 왜 정직한 학생들이 피해를 받고, 공석을 사석화한 학생들은 편하게 공부해야 하는가?
이와 같은 문제가 매년 시험기간마다 되풀이되고 있는데도 대학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총학생회에서는 작년에 메모지를 남겨놓는 캠페인을 벌였지만 별 효과는 없었고, 올해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 같다.

성균관대에서는 시험기간에 도서관 좌석배부가 영화관처럼 전산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침 6시에 도서관 1층 컴퓨터 서버가 열리면, 그 옆에 있는 바코드 리더기에 학생증을 댄다. 그러면 학생 정보를 읽은 후 좌석표가 출력되고, 1인당 한 좌석만 차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균관대에서는 우리대학처럼 ‘살림을 차리는’ 행동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또 부산대는 도서관자치위원회라는 게 있는데, 1시간 이상 자리를 비울 경우 그 자리에 있던 소지품을 다 압수해서 보관하는 조치를 취한다. 이것은 다른 대학에서도 많이 행해지고 있지만 부산대는 위원(학생)들과 조교들이 한 열람실 당 두 명씩 배치되어 그들도 공부를 하면서 시간마다 좌석 정리도 하기 때문에 사석화는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대학도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도서관 사석화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도서관 사석화 문제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바로 학생들의 자발적인 실천이다. 도서관 자리는 특정한 이용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도서관을 이용하는 모두의 좌석이다. 부족한 가운데서도 많은 이용자가 공동으로 공평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이용자들이 열람석의 사석화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내 문제가 아니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자리를 사석화하여 독점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착오다. 학술정보관을 독서실이나 사설고시원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