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엿보기 - 해리포터 열풍
문화엿보기 - 해리포터 열풍
  • 최윤섭 / 무학과 1
  • 승인 200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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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전세계 200여 개국에서 1억 부 이상 팔린 경이적인 초 베스트셀러, 영국 우수도서상, 미국도서협회 우수도서상 수상 등 여러 수상 사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해리 포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다. 최근에는 영화화 되어 각종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처음 영화를 보고 필자는 솔직히 약간 실망 한 것이 사실이다. 영화가 잘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시간 제약 때문에 내용 전개에 중요한 부분이 상당부분 생략되었고, 책에서 느꼈던 해리포터 특유의 매력이 반감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만 봐서는 느낄 수 없는 해리 포터 책의 매력. 혹자는 단순한 어린애들 동화나, 단순한 판타지 정도로 치부하는 이 소설이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리가 어릴 때 어둠의 마왕인 ‘볼드모트’는 마법 세계의 위대한 마법사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기였던 해리 포터는 불가사의하게 그의 손에서 살아 남고, 마왕은 힘을 잃고 사라진다. 그리하여 마법세계의 영웅이 되었지만 해리는 머글(일반 인간)인 친척집에서 자기가 마법사인지도 모른 채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 자라난다. 열한번째 생일날 마법학교 호그와트의 초대를 받고 다시 마법세계로 돌아간 해리는 모험 끝에 다시 부활하려는 볼드모트로부터 ‘마법의 돌’을 지키고 또 한번 영웅이 된다는 것이 영화화된 1권의 줄거리이다.

이렇게 어찌 보면 진부하게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는 판타지 소설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 첫번째 이유는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에 있다. 이 이야기는 현실과 마법의 세계가 공존하지만 머글(일반 인간)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전제 하에 출발한다. 마법의 세계에 살다 온 작가가 그곳을 본 그대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경 자체가 완벽에 가깝다. 조그만 과자 하나에서부터, 스포츠인 퀴디치, 마법 사회와 마법학교의 규율과 법, 부엉이로 보내는 편지, 상업화 된 마법세계 등등 책 전체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지겨운 현실속에 매몰되어 창의력과 상상력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로 영웅심리의 반영을 들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지금의 평범한 현실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현실에서 구박받고 왕따를 당하던 한 약한 소년이 마법세계의 영웅이 된다는 모티브는 독자로 하여금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해리 포터 시리즈는 깊이 들여다 보면 국내의 인식과는 달리 단순한 아동을 대상으로 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다른 어떤 소설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치밀한 사건 전개구조를 가지고 있다. 곳곳에 알지 못하게 깔리 복선들이 깔려있고 그 많은 복선이 마지막의 종결된 하나의 사건을 위한 하나하나의 장치가 된다. 그리고 그 복선들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개연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하나의 책 내에서 만이 아니라 전편에서 언급된 내용이 그 다음 권의 사건에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처음 읽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복선이 드러나고, 사건 하나하나가 내용전개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어 감탄하게 되는 것이 이 책의 매력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야기 전개에 급급해 이러한 짜임새 있는 사건 구조를 제대로 관객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또한 책의 내용 중에는 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주제들이 적잖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해리가 자아 정체성에 대해 끊임 없이 갈등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본성이 과연 악한가, 선한가 하는 다분히 철학적인 의문이 곳곳에 드러난다. 더욱이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유 의지’라는 심오한(?) 대답을 2권 말미에서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고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드러나는 신뢰하고, 속고 속이는 복잡 다양한 인간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해리 부모의 죽음이 친구의 배신 때문이라든지, 스내이프가 해리의 목숨을 구하려고 한 것, 명예욕으로 가득찬 무능력자 락허트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인간상 등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뛰어난 점이 있으면 그렇지 못한 점도 있는 법. 이 소설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에서 우려되는 아이들의 현실과 환상의 혼동은 기우라고 하더라도, 위에서 나타나듯 적나라한 인간 관계의 속면을 다 까발림으로써 여린 동심에 상처를 줄 수 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점은 해리와 친구들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설사 그것이 정의라고 하더라도) 사회의 규범, 학교의 규율에 전혀 개의치 않으며 행동하는 소위 ‘결과론’적인 행동양식을 보인다는 점이다. 또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 교수들에게 의도적으로 수많은 거짓말을 하며 그것이 ‘영리함’으로 비춰지는 것도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탄탄한 구성력으로 이루어진 요즘 찾아 보기 힘든 매력적인 소설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치밀한 사건 전개와 수준 있는 주제의 등장으로 우리 대학생들이 읽어도 충분히 공감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 때문에 아동들에게는 적절한 독서 지도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족을 달자면 개인적으로는 번역본 보다는 원서를 구해서 읽기를 권한다. 필자는 영문판을 먼저 읽고 번역본을 접했다. 번역본에는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어색한 ‘번역체’가 만연했고, 어른들까지 대상으로 한 소설을 아동만을 위한 동화로 바꿔 놓았으며 원서에서 느낄 수 있는 등장 인물들의 선명한 개성과 작가 특유의 위트, 아기자기한 맛을 느끼기 힘들기 때문이다.

추위에 몸이 움츠러들어 움직이기 싫은 계절. 눈에 보이는 것만을 전달하는 영화보다는 책을 통해 오랫동안 닫아두었던 상상력의 문을 열고 해리, 론, 헤르미온느 삼총사와 같이 호그와트의 마법세계로 멋진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