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비평] 소설가 김진명과 배타적 민족주의
[문화 비평] 소설가 김진명과 배타적 민족주의
  • 박정준 기자
  • 승인 2001.10.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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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내각 출범 이후로, 한일 양국 사이 관계는 교과서 왜곡문제, 어업협정 문제 등으로 시끄럽기만 하다. ‘노브레인’이란 한국 Rock 그룹은 일본에 대한 항의 표시로 공연 때에 일장기를 불태우기도 하고 각 시민단체들은 목소리를 합쳐 고이즈미 총리 방한시 항의시위를 했다. 이 와중에 한국의 대표적 중견작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김진명씨가 <황태자비 납치사건>이라는 이름의 새책을 내어 놓았다. 김진명 씨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후로 많은 팬들을 모으고 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견작가 중 하나이다. 그는 인기가 많은 만큼 많은 폄하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그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그의 작품이 상업주의적,
극우적이라 하며,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역사를 보는 눈을 넓히고 민족혼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들 한다.

그가 상업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은 그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부터이다. 한국 출판계의 상업적 기획의 대표적인 성공작이기도 한 이 책은 처음에는 92년 ‘실록출판사’에서 ‘플로토늄의 행방’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으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사장될 뻔 했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 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되자, 책에 담긴 민족주의가 국내에 팽배한 반미, 반일 감정을 등에 업고 어느 정도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계산한 도서출판 ‘해냄’이 표지와 제목을 바꾸고 다시 출판한 결과, 이 책은 90년대 전반기 최대 베스트셀러로 급부상하였다.

그 후로 그의 후속작들도 독자들의 반외세적인 배타적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경향을 띄어 왔다. 최근에 나온 <황태자비 납치사건> 역시, TV 드라마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명성황후를 소재로 국내에 팽배한 반일감정에 시의적절하게 편승하고 있다. 그의 소설의 특징은 문학성이 없네, 상업적이네 하는 여러 비난에도 불구하고 매우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반일감정과 민족주의는 여전히 강한 호소력을 가진 주제이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가 민족혼을 고양시킨다는 칭송을 받는 것이나 극우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나 모두 그의 소설 속의 민족주의 때문이기도 하다.

민족주의라 함은 어떤 단위보다 앞서 자기 민족을 으뜸으로 생각하는 정치 이념이다. 자연스레 개인의 행복보다는 민족집단의 힘에 최우선적 가치를 둔다. 민족주의는 양날의 칼로서, 다양하고 보편적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거대한 역사적 전환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하는 탓에 자연스레 전체주의의 방패로 악용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식민지와 남북분단을 경험한 우리 역사 탓에 ‘민족주의’라는 단어 앞에서는 일반 대중부터 엘리트 들까지 건전한 사고가 마비되어 버리는 우리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민족주의는 배타적 민족주의이며 민족정체성 고취에 불을 지르기 위해서 동원되는 연료는 대개 국민들의 강력한 반일 감정이다. 민족주의 중에서도 타민족에 대한 증오를 밑거름으로 자라나는 배타적 민족주의는 많은 불행의 근원이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바탕으로 자라난 나치의 민족주의, 증오속에 한 나라를 여러 세력으로 갈갈이 찢어발긴 유고의 민족주의, 그리고 비아프라 내전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수많은 민족 분쟁까지 그 비극적 결과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건전한 민족주의라 함은 세계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기 민족이 차지하는 위치를 자각하고, 보편성과 특수성을 조화시키는 속에서 나름의 문화창달을 통해 세계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는 모습일 것이다. 아울러 비판의 눈을 외부에 돌리기에 앞서 스스로의 잘못과 과오를 반성함으로써 민족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민족주의의 진정한 사명이 아니겠는가? 한국 민족주의가 당면한 과제도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는 대외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에게 악용당하는 지역감정 문제와 집단 이기주의 문제에서 국민들의 사고를 민족 차원의 대승적 견지에서 바라보게 하여 해소해 나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아울러 김진명 씨의 소설에서 국내 극우 언론 특유의 황색 선동의 징후가 보이는 것도 지적할만한 부분이다. “소설은 드러난 사실보다 더 진실되어야 한다.”라는 그의 말이 대표하는 그의 입장은 작가 나름대로 치밀한 취재와 고증을 통해 소설의 바탕이 마련되지만 각 소재간의 결정적인 연결고리는 상상의 산물에 불과하다. “누구누구에게(어디어디에) …한 의혹이 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검증되지 않은 의혹을 확대재생산하는 국내 극우 언론의 행태와 다를 바 없는 이 모습은 여지없이 이번 소설 <황태자비 납치사건>에서도 보인다. 일본 황태자비를 인질 삼아 요구할 정도로 중요한 문서라는 ‘이시카와 에조의 보고서(명성황후 학살의 전모를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미확인 문건)’ 역시 그 실체가 확실히 검증된 바도 없고, 그 내용 역시 추측을 해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를 호소력 강하게 전달하는 그의 개성이 그의 말마따나 ‘개인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힘을 끌어내도록’ 건전하게 쓰이려면, 소모성 짙은 대외비난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그의 소설에서 일부 보이듯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인식시키고 우리 민족 스스로 반성해 마땅한 점 등을 두려움 없이 지적하는 면에 보다 주력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