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아 세상] 소리와 내가 하나 되는 그 느낌
[매니아 세상] 소리와 내가 하나 되는 그 느낌
  • 김정묵 기자
  • 승인 2001.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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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연주에 몰두한 황준호(수학 석사과정) 학우
아직은 선선한 봄밤, 학생회관에서 폭풍의 언덕으로 넘어가는 잔디밭에는 봄밤처럼 편안한, 은은한 기타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쏟아지는 박수에 멋쩍어 머리를 긁적이다가도 연이은 ‘앵콜’에 눈을 지그시 감고 곡에 심취하는 클래식 기타 매니아 ‘황준호(수학 석사 2)’학우였다.

그가 클래식 기타를 접하게 된 건 중학교 때 동네에 있던 교습소에 친구들과 함께 다니면서라고 한다. 원래 음악을 좋아하지만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없어 불만이던 그는 친구들의 “7개월만 배우면 된다”는 말에 넘어갔다며 “지금 생각하면 정말 황당한 얘기죠”라고 웃으며 말한다. 이미 10년 넘게 기타를 ‘배우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중, 고등학교 때는 손톱을 깎았다가도 다시 악기 잡고 하길 반복했죠.” 연주를 위해서 손톱을 길러야만 하는 클래식 기타 연주자들에게 ‘손톱을 깎는다’는 말은 곧, 악기를 그만 둔다는 의미이다. “고3 때는 어머니 눈치보느라 소리가 안나게 현에 휴지를 두르고 연습한 적도 있어요.” 그만큼 그에게 클래식 기타는 도저히 때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대학에 와서는 실력있는 선배들이 많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우리 학교 클래식 기타 동아리 ‘클라타’에 가입했는데, 도리어 특별히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던 터라 도리어 선배들에게 많은 기대를 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동아리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이 생겨 동아리 활동을 더욱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그러나 역시 실력있는 사람이 부족하고 다른 학교 동아리와의 교류나 수준있는 공연 관람이 힘든 우리 학교 공연 동아리들의 여건 상, 생각보다 음악을 하는 것이 힘들어 중간에 기타를 놓았던 적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동아리 사람들과의 생활이 즐겁고 자신이 하는 음악을 남들에게 전하는 공연이 좋아 동아리 활동을 계속하였고, 2학년 때 좋은 악기를 구하기 위해 알아보고 다니던 중 당시 전국 대학가를 돌며 클래식 기타를 알리려 애쓰던 엄태창 씨를 만난 것이 기타에 대해 더욱 폭넓게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기타만의 매력을 말해달라고 하자, “기타는 소리를 내는 현에 내 손이 직접 닿아 있잖아요. 그리고 기타는 안고 치는 악기라 소리의 진동이 몸으로 직접 전해옵니다. 그 손끝으로, 온 몸으로 바로 전해지는 그 느낌, 소리와 내가 하나가 되는 그 느낌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일렉 기타 같은 다른 기타도 연주해 보곤 했는데 자신에게는 클래식 기타의 아름다운 음색과 단독으로 음악을 이루어 갈 수 있는 면이 맞는 것 같단다. 물론 음악을 좋아하는 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편곡해 클래식 기타로 직접 연주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매력이다.

대화를 끝내며 한 곡만 들려 달라는 요청에 “사실 얼마간 너무 바빠서 기타를 오랫동안 안 잡았었는데 어제 우연히 이 악보를 발견해서”라며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 2번’을 들려주었다. 조금 밖에 연습을 못했다고 말했지만, 잔잔한 가을 밤 같은 연주는 몇 분 간 이어졌다. 연주가 끝나자 “악기에 대한 판에 박힌 칭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정말 놓았다가도 다시 잡게 하는 매력이 있는 악기다’라고요. 석사 말년 차의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자꾸 다시 잡게 하는 걸 보면 그 말이 참 맞는 것 같아요.”라며 예의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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