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서울 공연
[문화현장] 서울 공연
  • 박성찬 / 화학 박사과정
  • 승인 2001.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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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룹 <아바> 아카펠라 그룹으로 환생
‘상투적’이라 여겨지는 표현들이 상투화되어 버린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들 중 하나는 이 표현들이 누구나 수긍할만한, 그래서 오랜 기간 인구에 회자되고 전승될만한 보편적 진실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악기는 인간의 몸이다’ - 그렇다면 음악에 관한 이 상투적 표현 역시 보편적 진실을 담고 있을까? 만약 이 표현을 아래와 같이 손보도록 허락한다면, 나는 이 질문에 ‘그렇다’ 라고 답하고 싶다. -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악기는 몇몇 선택받은 인간의 몸이다’ 같은 보컬그룹들이 들려주는 아카펠라가 이를 실증하고, 의 첼로를 무색케 하는 의 ‘기예’(그래, 이건 음악의 서커스다!)가 이를 웅변한다.

지난 11일, 필자가 한동안 업데이트를 게을리 했던, ‘몸이 악기인 보컬 그룹’에 관한 짧고 얇은 목록에 새로운 그룹이 등재되는, 그리고 순위 진입과 동시에 1위에 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그날 밤 예술의 전당에서는 스웨덴에서 날아온 의 첫 번째 한국 공연이 있었고, 필자는 다행히 세계무역센터가 아닌 그곳에서 음악적 테러의 희생양이 되고 있었다. 듣는 이의 것과 같은 재질, 비슷한 크기의 울림통에서 생성되는 소리가 불러 일으키는 물리적 공명과 정서적 공감, 이것이 아카펠라 그룹의 필살기라면 이들의 필살기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 이 오만방자한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우리는 본의 아니게 그들의 음악을 반복적으로 들어왔다. 지난 봄 이나영이 출연한 모 화장품 광고에서, 이미숙이 나왔던 아파트 광고에서 이들의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쓰였었다. (‘아∼’ 하는 감탄사가 귀에 들리는 것 같군.) 이들의 음악에 대해 꽤 아는 척 하고 있지만, 사실 필자도 공연을 보기 전에는 CF를 통해 접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그저 유럽 특유의 상큼하고 예쁜 감각을 지닌 보컬 그룹 정도로 여기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십수 초 짜리 CF에서 들었던 두세 개 곡은 그들의 진면목을 보여 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1984년 스웨덴의 왕립음악원에서 공부하던 5명의 젊은이들이 결성한 그룹답게 그들은 거의 완벽한 음악 장악력을 보여줬고, 팝에서 재즈, 클래식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과시했고, 위트와 경쾌함에서 그루브(groove)와 스윙(swing)을 거쳐 끈적한 우울까지 다양한 느낌을 적확(的確)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었다.

오프닝 곡으로 선택된 ‘A Cappella In Acapulco’를 통해 자신들의 음악적 정체성과 아카펠라의 매력을 짧고 명쾌히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 이날의 공연은 ‘I Sing, You Sing’, ‘Walking Down The Street’ 등과 같은 CF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전 앨범의 히트곡들과 최근 앨범 “Commonly Unique”에 수록된 오리지날 창작곡들, 그리고 ‘No More Blues’, ‘Shiny Stockings’ 같은 스탠다드 재즈 곡들이 적절히 배분돼 있었다. 그들의 창작곡은 현대인의 삶에 대한 위트있는 시선이 돋보이는 짧고 쉬운 가사와 부담없고 은은한 멜로디를 빈틈없는 사운드로 들려주는 편곡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이 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 그룹이 어떻게 상업적 성취를 동시에 이루어 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해답이 들리는 듯 했다. 그러나 필자의 감정선을 보다 강하게 자극한 것은 만의 스타일로 편곡돼 불려진 스탠다드 재즈 곡들과 창의적인 멜로디와 재기발랄한 템포를 재즈적인 화성으로 들려준 ‘Thousand Things’ 같은 곡들이었다. 특히, 5∼60년대 미국의 빅밴드 재즈가 스웨덴의 대중 음악계에 미쳤던 영향을 설명한 후 연주한 ‘Li’ I Darling’과 ‘Shiny Stockings’에 이르러서는 거의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여기서 각 멤버들은 목소리만으로 베이스 기타, 트럼펫, 드럼의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마치 빅 밴드의 스윙감 충만한 딕시랜드 재즈를 퀸텟 밴드가 비밥 풍으로 연주하고 있는게 아니가 하는 착각을 들게 할 정도였다.

결성 후 17년 동안의 수백회 공연 중 가장 멋진 공연이었고 가장 훌륭한 관객이었다는 그들의 인사가 공치사로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준비된 뮤지션이 수준있는 관객들을 만난 행복한 자리였다. 공연 끝자락에 그들은 , 를 비롯한 스웨덴이 배출한 팝스타들의 노래를 메들리로 들려줬다. 그들이 의 ‘Dancing Queen’을 부르는 순간 관객모두는 그룹 의 환생을 보고 있었다. - 세계 최고의 아카펠라 그룹으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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