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한다
[노벨동산]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한다
  • 박상준 교수 / 인문사회학부
  • 승인 2008.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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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커뮤니케이션’이란 말은 그다지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니며, 그 의미 또한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 화제(topic)에 주목하여 과학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을 뜻하기도 하며, 소통의 주체에 초점을 맞추어 과학자의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렇게 여러 용례로 쓰이지만 그 핵심은 ‘내용형식적인 면에서 과학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방식 중 사회적인 중요도 면에서 첫손에 꼽히는 글쓰기를 대상으로 정리해 보자. 내용과 형식 측면에서 과학적인 글쓰기란 무엇인가. 논리성과 간결성을 갖춘 글쓰기가 바로 과학 글쓰기이다.

과학 글쓰기의 논리성은, 글 전체 차원에서는 주제의 명확성을, 구성 면에서는 논지의 일관성 및 정합성을, 세부 논의에서는 근거의 타당성을 갖출 때 성취된다. 이러한 논리성과 더불어 간결성이야말로 과학 글쓰기의 특징을 이루는데, 이는 전체적인 내용에서든 하나의 문단이나 문장에서든, 반복, 부연, 수식(rhetoric)을 배제할 때 얻어진다.

논리성과 간결성은 글쓰기뿐 아니라 프레젠테이션 등의 말하기에서도 요청된다. 여기에 더하여 글을 읽거나 말을 들을 때도 논리적인 요소를 간결하게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두 가지 속성이야말로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추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도 중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난 시대의 일반인들이라면 ‘실험실 속의 고독한 연구자’라는 과학자상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과거의 이미지일 뿐이다. 현대의 과학자는 사실상 과학 연구자인 동시에 경영인이자 관리자이며, 당위적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연구가 개발과 결합되고[R&D] 더 나아가 경제적인 측면이 중요요소가 되는[R&BD] 시대인 까닭이다.

우리 시대의 과학자는 <우연과 필연>이나 <과학혁명의 구조>, <시간의 역사> 등을 쓸 생각이 없어도 탁월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제안서(proposal)를 통해 과제를 유치하고, 연구팀 단위로 협력연구를 수행하여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현대 과학자 본연의 연구 활동을 수행하는 과정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타 분야 전문가와의 소통, 과학문화의 발전, 지식인으로서의 사회 참여 등을 통해 과학자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있어서도 과학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러한 필요성에 더하여 다음 두 가지 면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소통을 통해 인정받은 것만이 사회적으로 의미를 갖는다는 원리적인 면에서 찾아진다. 연구실 컴퓨터 속에 사장된 과학적 성과가 아무 의미도 갖지 않음은 자명하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과학적 성취의 현실화 방안이기 때문이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또한, 그것이야말로 현실적인 면에서 이공계 위기를 타파하고 과학을 발전시키는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는 데서 찾아진다. 위기상황을 해소해 달라고 외치기만 해서는 바뀌는 게 없다. 과학 정책의 결정권자를 효과적으로 설득하고 더 나아가 과학자들 스스로 결정권자가 될 때 이공계 위기의 타파뿐 아니라 과학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전 과정의 핵심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학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습득이야말로 모든 과학기술자의 필수 요건이요 과학기술교육의 중요 사업 중 하나임이 자명해진다.
사정이 이러하니 배우고 때로 익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효과적으로 말하고 써서 널리 통할 수 있어야 한다. 후학들이라도 전체적으로 그럴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