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부산 국제락페스티벌
문화현장-부산 국제락페스티벌
  • 문재석 기자
  • 승인 2001.08.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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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에 열광하는 관객들
시행착오 아쉽지만 락의 대중화 가능성 기대 커

8월 12일 6시, 광안리 해수욕장. 한 쪽 구석에 마련된 무대에는 WWF에 나올 듯한 거구들이 독일 인더스트리얼 밴드 ‘Rammstein’의 를 연주하고 있다. 관객들은 사운드에 맞추어 미친 듯이 몸을 이리 저리 부딪치고, 보컬은 이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마이크 스탠드를 집어던진다. 아직 대중에게는 생소한 인더스트리얼 밴드 ‘Psychotron’은 8월의 무더윔나큼 뜨겁게 광안리를 달구고 있었다. 이번으로 3회를 맞는 부산 국제 락 페스티벌의 한 모습이다.

하지만 4년 전만 하더라도 상황은 많이 달랐다. 공연장에서 슬래머(몸을 이리 저리 부딪치는 사람)는 커녕 헤드뱅어(머리를 미친 듯이 흔드는 사람)도 보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공연 자체의 수가 너무 적어서, 1년에 한 두 번 있는 ‘소란’, ‘자유’ 등의 공연에서나 락 음악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97년 ‘락레코드 악마주의 사건’과 같은, 락은 일부의 극성 매니아만을 위한 음악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주는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대규모 락 공연은 한국에서 성사되기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그 후 상황은 많이 변하였다. 올해 열리는 수많은 공연들이 이를 보여준다. 3월부터 이어진 외국 메탈 밴드들의 내한 공연들, ‘소요 락 페스티벌’, ‘Metalfest’등 한 달이 멀다하고 공연이 잇달아 펼쳐졌다.

이를 보러오는 관중들도 많이 변하였다. 공연장 한쪽 구석에서는 음악에 맞추어 슬래밍하는 사람들과 다른 한쪽에서는 열심히 머리를 흔드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큰 공연장에서는 스태이지 다이빙(무대에서 관중석으로 뛰어드는 행위)나 바디 서핑(관중의 머리 위로 들어져 다니는 행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연 그 자체는 대부분이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소요 락 페스티벌은 비로 인하여 중도 하차할 수 밖에 없었고. Metalfest의 경우 공연 직전 국내 밴드의 공연이 취소되는 등 파행으로 치달았다. 올해 열린 락 페스티벌 중에서 가장 훌륭한 무대를 보여준 것은 바로 부산 국제 락 페스티벌이다.

부산 국제 락 페스티벌은 무료 공연이었다. 다른 공연의 입장료가 7~8만원을 상회할 때, 무료 공연을 한다는 점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짜’는 개방성을 나타낸다. 다른 공연들은 그 비싼 가격으로 인해 소수의 매니아들만의 잔치로 끝이 난다고 하면, 부산 국제 락 페스티벌은 모두를 위한 공연이었다. 공연장 곳곳에 보이는 나이 지긋이 드신 어르신들, 교복과 가방으로 무장한 여중생들, 아기를 등에 업고 나들이 나온 가족들은 여타 공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물론 재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료 공연이었던 만큼 밴드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었고, 이 또한 제 시기에 들어가기 어려웠다. 두 번째 날 헤드라이너로 잡혀있었던 ‘Dimmu Borgir’의 경우 공연 당일까지 페이가 입금되지 않아 공연이 취소되었고, 다른 밴드들도 공연 시작 3시간 전에서야 페이를 받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공연을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은 상당한 노력이 뒤따랐음을 보여준다. 기획은 락 음악 평론가 성우진 씨가 맡아서 하였고, 카메라는 MBC가, 사운드는 국내 전문 음악인과 외국 엔지니어가 공동으로 맡았다. 중간에 방어 벽을 설치함으로 관객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관객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기도 하였고, 공연 중간 중간에 스프링쿨러를 통해 물을 뿌려 주기도 하였다.

밴드 선정에 있어서도 신중함을 기했는데, 아직 한국에서는 시도된 적 없는 스피드, 고딕 메탈 밴드 ‘Nightwish’를 섭외한 것이라든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특출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Psychotron’, ‘R.F. Children’ 등의 공연을 준비하였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아직 만족할 때는 아니다. 총 4개의 헤드라이너 예정이었던 밴드 중에서 제대로 공연을 한 밴드는 Nightwish 하나뿐이었다. Royal Hunt나 신해철 같은 경우는 불의의 사고로 인한 것이지만, 이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주최측의 능력 부족이라 할 수 있다. 아직 행사의 인지도가 낮아 자리 메움을 할 수 있는 밴드의 섭외도 힘들었다는 점은 관객이 그나마 이해하여 줄 수 있다. 하지만 관객이 떠날까봐 공연 당일 날 제대로 된 공지를 하지 않은 것은 아직 공연을 주최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성숙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기대를 갖는다. 3년만의 괄목할만한 발전이었고, 앞으로의 가능성 또한 크다. 기획사가 주최하는 타 공연과는 달리 지방자치단체에서 주최하는 행사인지라 그 바탕은 어느 공연보다도 탄탄하다. 시행착오들이 하나씩 고쳐나가고, 새로운 시도들을 쌓아나간다면, 언젠가는 부산 특유의 그리고 한국 특유의 세계적 락 페스티벌이 될 것이라 기대를 걸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