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용 쥐의 생애
실험용 쥐의 생애
  • 이화림 / 생명 99
  • 승인 2008.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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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생이지만 실험데이터와 논문은 영원히 남아
  
▲ 생명공학연구센터 동물실험실에서 배양중인 실험용 쥐들.
예전에는 정부에서 “쥐를 잡자”라는 캠페인을 펼칠 만큼 배척의 대상이었던 쥐가 요즘은 애완동물로 사랑받는다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랑받는 쥐들이 있으니, 바로 실험용 쥐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받는 사랑은 대개 잔인한 실험 끝에 죽음으로 보답받기에 치명적인(?) 사랑일 수밖에 없다. 실험용 쥐의 종류나 기본적인 특성은 백과사전이나 전문 웹사이트에 매우 자세히 나와 있으니, 여기서는 직접 키우는 입장에서 이 쥐들이 어떻게 살다 가는지 보고 만진 대로만 설명하겠다.

실험용 쥐의 일생은 실험동물 취급 회사에 쥐를 주문하고 결재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얼마 후 도착하는 가로 두 뼘, 세로 세 뼘, 높이 반 뼘 크기의 골판지 박스에는 한 마리 혹은 두서너 마리가 뒤엉켜서 담겨 있는데, 박스 안에는 깔고 잘 깔짚들과 도착하기까지 먹을 식량들이 함께 담겨 있어 쥐의 작은 여행을 돕는다. 이렇게 도착한 쥐들은 우리대학 생명과학관과 생명공학연구센터에 각각 따로 설치된 동물실로 옮겨져 남은 일생을 보내게 된다. 목적에 따라 무균쥐를 주문하기도 하는데, 이런 쥐들은 VIP인 만큼 보다 비싼 과정을 거쳐 운반되고, 도착한 다음에도 철저한 보안 속에 무균실로 옮겨진다.

흔히 쥐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햄스터같이 몸통 길이가 손가락만한 생쥐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몸통 길이가 발바닥만한 덩치 큰 허연 쥐들이다. 이건 생쥐가 많이 먹고 많이 자란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종(species)이다. 실험실에서 손가락 크기의 작은 쥐는 mouse(생쥐)라 하고, 발바닥 크기의 큰 쥐는 rat(쥐)라고 한다. 크기를 비교하면 양과 소 정도의 차이가 나지만, 성질은 rat이 훨씬 순하다.

어쨌거나 도착한 쥐들은 실험용 쥐 전용 우리로 옮겨진다. 가로 두 뼘, 세로 한 뼘, 높이 한 뼘 되는 투명 플라스틱 우리에, 바닥에는 나무를 켜서 만든 깔짚을 깔아주고 뚜껑으로 쇠창살을 덮는다. 쇠창살 천장에는 물이 담긴 물통이 매달려 있고, 유리구슬보다 조금 큰 사료 알갱이들이 담겨 쥐들이 갉아먹도록 한다. 일반적인 사육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애완동물 키우는 분위기가 나지 않는 것은, 동물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수십 개의 우리 속에서 쥐들이 일어서서 앞발로 벽을 치며 우글우글 거리는 광경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쥐들은 매우 빠르게 자란다. 평소에는 암컷과 수컷을 따로 키우다가, 암컷들이 사는 우리에 수컷을 한 마리 넣어주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순식간이다. 어느새 보면 암컷들이 배가 불러 있고, 다시 어느샌가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핏덩어리 10~15마리가 함께 뭉쳐서 눈도 못 뜨고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일주일쯤 뒤에는 금세 털이 자라서 어미 젖 빨러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하며, 다시 일주일 지나면 이제 우리 안은 난장판이 된다. 사람도 그렇지만 쥐들도 어릴수록 달려 다니는 경향이 있어 혼란의 도가니가 되는데, 이 무렵에는 깔짚도 자주 바꿔주고 먹이와 물도 많이 공급해준다. 성장기엔 많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4주쯤 지나면 어미 없이도 잘 살만큼 충분히 성장한다. 이때 어린 암컷과 수컷들을 분리하지 않으면 다시 몇 주 후 순식간에 수십 마리가 튀어나오는 사태도 벌어진다. 대략 두 달 정도 되면 발바닥 크기의 온전한 rat으로 자라며, 이후에는 자라는 속도가 다소 느려진다. 하지만 간혹 오래 키우다보면 거짓말 안 보태고 정말 팔뚝만한 크기의 허연 rat이 우리 안에서 어그적어그적 기어다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마치 공룡을 연상시킨다.

계속 키울 경우 2년까지 산다고 하지만 대개는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실험과정에 따라 다르나 현대 생명과학의 중심이 분자생물학인 만큼, 분자 수준의 규명을 위해 대개는 원하는 부위를 떼어내고 갈아서 DNA나 RNA, protein을 뽑아낸다. 해부학적인 변화를 보기 위해 특정 조직을 얇게 잘라 박편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죽기 전까지는 편안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어서,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날 때부터 몸에 이상을 안고 살거나, 정상적으로 태어나도 사는 동안 온갖 약물에 시달리기도 한다. 특히 뇌과학 분야에서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한 뇌의 반응을 보기 위해 쥐들이 수술을 거쳐 머리에 전극을 꽂고 돌아다니거나, 행동학적 변화를 보기 위해 물고문·전기고문(?)과 같은 온갖 종류의 가혹한 환경에 처하기도 한다.

쥐의 안락사 방법 또한 실험과정에 따라 다양한데, 흔히 사용되는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약물주사는 쥐의 정맥이나 복강 내에 마취제와 같은 안락사 유도 물질을 치사량 이상으로 주사한다. 간혹 근육경련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스트레스는 없는 편이다. 흡입 가능한 에테르(ether)나 고농도의 이산화탄소로 질식시켜 죽일 수도 있는데, 이 방법은 죽기 전 잠시 동안 쥐에게 호흡곤란으로 인한 고통을 유발하지만 화학물질이 체내에 축적되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머리를 잡고 꼬리를 순식간에 잡아당겨 의식을 잃게 만드는 경추 탈구가 있다. 숙련된 실험자가 있을 때 가장 빠르게 진행할 수 있지만, 실패해서 죽은 줄 알았던 쥐가 살아 돌아다니는 사태도 종종 벌어지는 게 이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쥐의 머리를 자르는 방법이 있는데, 잔인함에도 불구, 화학물질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있는 상태에 가장 가까운 조직을 얻고자 할 때 수행한다. 사체를 함부로 유기해서는 안되며, 죽은 쥐는 잘 포장하여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모아서 처리한다.

이렇게 해서 다소 허무한 쥐의 일생이 끝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얻어진 실험 데이터는 논문을 통해 발표되어 새로운 생명현상을 규명하는 자료로 쓰인다. 고등동물인 쥐는 인간과 같이 포유류에 속하기 때문에 이 중 몇몇 결과들은 의학적 목적에서 인간을 위한 임상실험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한창 키우던 쥐를 단두대에 올려놓으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감추는 잔인함은 이처럼 인간을 위한다는 이기심 덕분에 가능하다.

우리대학 생명과학관 앞에는 알을 부둥켜안은 개구리(Xenopus) 석상이 세워져 있다. 실험과정에서 죽어간 개구리에 대한 마음을 담은 석상인데, 우리와 함께 하다 먼저 떠난 쥐를 위한 석상도 언젠가 건립되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