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얘기를 들어주세요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주세요
  • 유형우 기자
  • 승인 2007.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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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니까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좁은 고등학교 강당에 필자를 포함한 모든 1?학년 학생들을 모아 놓고 포항공대(당시에는 POSTECH과 포항공대라는 이름이 혼용되어 쓰였다) 입시설명회가 열렸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기억은 흐릿하지만, 당시 설명회에서 기억나는 것은 딱 2가지다.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5명 정도로 국내 1위이며, 교수 1인당 SDI급 논문 수가 국내 1위라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니, 꿈을 꿨다. 이 대학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대학이라고.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실망을 하게 됐다. 교수 1인당 학생수가 5명이라는 것은 결코 한 강의의 학생수가 5명이라는 말이 아니었다. 필자가 1학년 때 들은 한 기초필수과목은 150여명의 학생들이 강의실이 아닌 중강당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SDI급 논문 수가 1위일 만큼 경쟁력 있는 교수님들이 결코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운 강의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몇 년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참 어린 불만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이런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대신 최근 더 큰 아쉬움이 생겼다. 대학이 학생을 대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물론 결코 우리대학이 학생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끔 어떤 사항에 있어 보이는 모습이 아쉽다.

지난달 29~30일 POSCO 주최 ‘if 2007’ 행사가 우리대학에서 열렸다. 이런 성대한 행사가 우리대학에서 열렸다는 것은 물론 좋은 현상이다. 우리대학 이사장인 이구택 POSCO 회장이 우리대학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문제는 행사로 인해 직접적으로 불편을 겪을 학생들에 대한 대책이다. 우리대학 특성상 점심시간 앞뒤로 수업이 있다면 보통 학생들은 학생식당까지 가지 않고 스낵바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당일 행사 참가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장소로 스넥바 이용하여 많은 학생들이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학생들 대부분은 평소처럼 점심을 먹기 위해 스낵바에 들렸다가 수많은 양복차림의 사람들에 의아해하며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POVIS의 공지를 미리 읽지 않은 것은 학생들의 잘못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이러한 사항은 미리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적절한 대책을 세운 다음 시행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지난달 열린 이사회를 통해 신축 기숙사의 용도가 RC(Regidental College)로 결정났다. 이에 따라 2008학년도 학부 1·2학년생 전원은 신축 기숙사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기존 학생들도 기숙사 1~9동으로 모두 이주하게 된다. RC 그 자체는 시도해봄직한 제도라고 하더라도, 역시 아쉬운 점은 그 결정과정이다.
대학에서는 학생회장·기숙사자치회장을 비롯한 학생대표들을 모아 의사를 전달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문제는 일반학생들이 이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잘 알리지 않은 학생대표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비록 참석률이 저조할지라도 차라리 애초부터 설명회 등을 통해 RC의 취지를 이해시키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조만간 학생들에게 전체 메일을 보내 그 취지를 설명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교내 사설 BBS인 PosB에서 이런 글을 자주 본다. 대학이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애’를 대하는 것 같다고. 물론 이는 그동안 학생들의 모습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도 있다. 위에서 내려온 결정에 대해 약간은 불만은 가질지 몰라도 곧 조용히 묵묵히 이를 따르는 모습이 대학에서 보기에는 ‘애’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런 학생들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 대학이기에 지난해 교원임면권 사태에서 여느 때와 다르게 강력히 의견을 표출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오히려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학생은 바뀌고 있다. 더 이상 ‘애’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애’로만 본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지난해 발표된 ‘포스텍 비전 2020’에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이 힘을 모아 목표를 향해 정진해야 함을 역설한다. 힘을 모으기에 앞서 각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서로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보다 많이 반영된 대학의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