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촌맺기] ‘칼의 노래’·'남한산성' 작가 김훈
[일촌맺기] ‘칼의 노래’·'남한산성' 작가 김훈
  • 강탁호 기자
  • 승인 2007.11.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좋은 글’ 위해 사물을 과학적 접근하는 훈련 필요
소설가 김훈 씨가 아태이론물리센터 초청으로 지난 14일 우리대학을 방문, ‘말을 말하는 말’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날 2시간여 넘게 진행된 강연에서 김훈 씨는 자신이 글과 언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들려주었다. 27년간 언론계에 몸담고, 언론계를 떠난 후 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김훈 씨는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으로 소설의 새로운 붐을 일으키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김훈 씨를 만나보았다.

- 대학 시절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어떤 이상을 품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1966년 대학에 입학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때였다. 고려대를 중퇴한 것도 돈이 없어서였다.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들어 놓는 것! 그것이 그 당시 나와 우리 세대의 꿈이었다. 결코 비천한 목표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 꿈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비리와 병폐와 모순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제 여러분과 같은 젊은이들이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부산물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진보가 아니겠는가.

- 소설을 쓰게 된 계기
대학교 2학년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난중일기를 접했다. 왜군도 적, 임금도 적, 병졸도 적인 상황에서 헛된 희망을 말하지 않고, 절망의 시대를 절망 자체로 통과해 나가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정신이 건강해지고, 언어를 확실히 장악한 때가 되면 이순신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떠난 후에 기자로 30여 년을 살면서 이 다짐을 잊지 않았다. 틈틈이 자료를 모으고 답사를 했다. 30여 년이 지난 50대의 어느 날, 홀연히 연필을 잡고 쓰기 시작한 게 소설 ‘칼의 노래’이다. 청년의 감수성이란 무서운 것이다. 난중일기는 내 소설 쓰기의 발단이었다.

-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문체가 정말 개성적이라 느꼈는데
작가의 문체는 가수의 음색처럼 작가가 타고난 팔자이다. 양희은의 목소리, 심수봉·김추자 목소리가 저마다 다르듯 작가의 문장도 각기 다르다. 문장은 작가의 운명이다. 나는 주어와 동사, 문장의 뼈대로만 이루어진 간결한 문장을 쓸려고 한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한마디로 깔끔하게 끝내려고 한다.

- 소설 ‘현의 노래’에서 철제무기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매우 세세합니다. 다른 소설에서도 전문용어를 구사하며 세밀한 묘사를 합니다. 이런 ‘묘사’와 ‘설명’의 관점에서 글을 어떻게 쓰는 건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사물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글을 심정적으로만 써서는 안 된다. 세상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바탕이 있어야 한다. 과학이 세상의 전체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나, 과학이 없으면 언어는 왜곡되기 쉽다. 한 예로 ‘현의 노래’에서 철제무기에 대한 부분은 POSCO가 발행한 연구서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쓴 것이다. POSCO의 연구서는 문화재를 (심미적 측면이 아닌) 과학적 측면에서 다뤘고, 나는 고대 철제무기에 대해 과학적인 접근을 할 수 있었다.

- 역사소설을 많이 썼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사실 역사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는 소설을 쓸 때 일단 주제를 설정하고, 그 주제에 가장 알맞은 시대를 찾을 뿐이다. ‘현의 노래’의 경우 무기와 악기의 충돌이란 주제를 쓰기 위해 신 철제무기에 멸망하는 가야와 가야금을 만든 우륵의 시기를 소설 속으로 끌어왔다. ‘남한산성’에서는 인간의 악과 폭력에 대해 쓰기 위해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삼았다. 남한산성이야말로 당대의 악과 폭력이 적나라하게 들어난 배경이다. 내 소설에 있어 역사는 배경일 뿐이다.

- 안중근을 소재로 소설을 계획 중이라고 하는데
안중근은 테러리즘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는 총이 이렇게도 아름답게 쓰일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안중근에 대해서는 그릴 수 있다. 어려운 점은 이토 히로부미를 그리는 것이다. 이토를 한국과 일본 양쪽의 관점에서 그려 나가면서, 안중근에게 살인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그래도 언젠가는 쓰고 싶다.

- 포스테키안에게 하고 싶은 말
포스테키안은 정말로 복 받은 사람들이다. 정부는 포스텍에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다. 우리 때는 그러지 못해서 부럽고 신기하다.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포스테키안들은 나라와 사회에 갚아야 할 것이 많다. 잊지 말고, 정확하게 갚도록 해야 한다. 나도 세금 많이 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