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란] 특정 뇌(腦) 부위에 존재한다기보다
[의식이란] 특정 뇌(腦) 부위에 존재한다기보다
  • 강웅구 / 서울대 의대 정신과학
  • 승인 2007.10.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뇌 내 정보흐름의 과정 또는 패턴
▲ 임상의학적 의식 : Reticular Activating System(RAS)은 생체가 주목해야할 자극에 의해 활성화되며, 이 활성은 대뇌에 전반적으로 전달된다.
‘의식(consciousness)’이라는 용어는 몇 가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임상의학에서 의식은 환경 자극을 지각해서 적절한 행동반응을 보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런 의식은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고, 의학적 방법으로 조작도 가능한 생체변인(biological parameters : 혈압·맥박수 등과 같은)이다. 예컨대 의식이 많이 감소한 상태를 ‘혼수(coma)’라고 하는데, 병에 의해 생길 수도 있지만 마취라는 의학적 조작을 통해 유도될 수도 있다. 이 상태에서 개체는 자극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더 정확하게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기 때문에) 수술이라는 신체손상 자극을 문제없이 견뎌낸다.

그러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뇌간(brain stem : 뇌가 척추와 연결되는 부위에 해당되는 곳) 특정 부위의 손상으로 생기는 ‘Locked-in 증후군’(Bernard Weber의 ‘뇌’라는 소설에 묘사된 바 있음) 환자는 외부 자극은 정상적으로 지각하지만, 뇌에서 수의근으로의 모든 경로가 차단되기 때문에 어떤 수의적 신체 반응도 나타낼 수 없다. 따라서 그를 진찰하는 관찰자는 그가 아무런 반응도 못하는 것을 보고 의식이 없다고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

이런 괴리는 일상생활에서도 나타난다. 수면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의식 감소 상태인데, 수면과 각성의 경계점에서 가위눌림(수면마비)을 겪는 수가 있다. 이 상태는, 지각계는 각성하였지만 운동계는 수면에 의한 마비(REM 수면중에는 근육마비가 오는데, 이 때문에 우리는 꿈을 꿀 때 꿈대로 행동하지 않고 그냥 잘 수 있다)가 지속되는 상태로, 주위의 소리를 다 듣지만 꼼짝할 수 없다. 그래서 관찰자에게는 그저 자는 것(무의식)으로 보인다.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몽유병이나 일부 간질에서 관찰자가 보기에는 환자가 환경을 지각해서 의도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물어보면 그 기간동안 환자는 아무런 주관적인 경험이 없었던 경우도 있다. 즉, 의식의 핵심은 운동반응보다는 지각경험이지만, 관찰자는 운동반응을 통해서만 대상자의 의식을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측정 오류가 생길 수 있는데, 이 문제는 의식의 신경과학(neuroscience)적 연구에서도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환경에 대한 의식적 지각을 위해서 꼭 필요한 뇌의 기능은 주의력이다. 주의력은 뇌간 망상체 활성화계(reticular activation system, 그림 참고)가 담당한다고 생각된다. 이곳에 있는 뉴런들은 다수의 대뇌 뉴런으로 단가아민(monoamine)성 신경전달물질을 전달하는데, 이런 해부학적 구조가 소수의 뉴런을 통해서 대뇌의 활성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하며, 이렇게 활성화된 대뇌는 외부자극을 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수면-각성에 따른 의식의 생리학적 변화는 이러한 뇌간을 통한 조절에 의한다. 반면 마취는 뇌간을 통한 선택적 조절이 아니라 약물로 대뇌 뉴런들의 활성을 직접 차단함으로써 비특이적으로 의식 감소를 일으키는 것이다.

한편 신경과학에서는 양적인 의식보다는 ‘독특한 주관적 체험양식(qualia)으로서의 의식’에 주목한다. 재미있는 것은, 상당수의 복잡하고 정교한 행동들이(뇌의 작용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런 의식과 관계없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뇌와 의식과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한다(the hard problem). 이것은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철학의 영역에서도 논점이 된다. 두 가지의 극단적인 관점 중 하나는 이원론으로, 뇌의 활동이라는 생물화학적인 현상으로서 의식이라는 주관적 체험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인 근거가 없는 현상을 과학에서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극단에서는 의식을 뇌의 활성화라는 생체과정의 부수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비유하자면, 컴퓨터는 모니터가 없어도 동작하지만, 모니터 화면이 있는 것은 단지 작동상황을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식이다. 이 경우는 ‘모니터를 관찰하는 뇌속의 감시자’를 상정해야 할 것이다. 어려운 문제이지만, 타협점으로는 ‘한 현상을 다른 관점에서 본 것’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즉 뇌의 활성화는 제3자가 관찰할 때 보이는 현상이고, 이때 뇌의 주인은 주관적 체험이라는 현상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뇌와 의식을 분리시켜 볼 수 없는 것이라면, 주관적 체험으로서의 의식은 뇌의 어느 부위에 있을까? 뇌의 특정부위 손상이 ‘의학적 의식’에 큰 손상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부분이 ‘독특한 주관적 체험양식’을 나타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흔히 거론되는 이론 중 하나로 Baars 등이 제기한 ‘Global Workspace’ 이론이 있다.

이 이론에서는, 의식을 뇌 ‘모듈’ 간의 의사소통으로 본다. 뇌의 각 모듈들은 특정한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인데, 제대로 동작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듈들과 특정 프로토콜에 따라 정보를 공유하여야 하며, 이때 공유되는 정보가 그 순간 의식의 내용을 이룬다고 보는 것이다. 모듈들 간에 Global Workspace를 통하지 않은 직접적 정보전달은, 해당 모듈의 동작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의식화되지는 않는다. 비유하자면, 의식은 인터넷 메신저 비슷한 것으로 뇌의 각 모듈들이 그 구성원들인데, 이들이 네트워크에 공개적으로 올리는 정보가 의식이다(물론 의식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보고하기 위해서는, 외부에 보고하는 기능을 하는 모듈이 log on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모델에서 의식은 특정 뇌부위에 존재한다기보다는 뇌내 정보흐름의 과정 내지는 패턴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