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기획] 정책 결정과정 소외 더 큰 불신만 낳는다
[학원기획] 정책 결정과정 소외 더 큰 불신만 낳는다
  • 김혜리 기자
  • 승인 2000.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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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취지 좋아도 일방통행식 행정 묵인되어서는 안돼
정책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 필요
학생식당의 식질개선정책이 4월 3일 시행을 앞두고 있으나, 이 정책의 수립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이 적지 않다.

지난 2월 18일 학생식당 식질개선안을 두고 교수, 직원, 학생이 동수로 구성된 임시 복지이사회가 소집되었다. 그러나 이사회에서는 방학 중임을 고려하여, 개학 후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여 의견을 좀더 수렴한 뒤 다시 이 안을 상정하기로 하고 잠정적으로 결정을 보류했다.

그리고는 몇 주 뒤 학생처에서 식대인상을 시행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 문제는 사실 1년 넘게 학생처와 지난 총학생회가 함께 고민해 왔던 문제였다. ‘밀 플랜’에 식질개선정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식질개선 방안 마련과정에서 학우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던 것은 지난 총학의 부실함을 1차적 이유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총학을 대행하는 학과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차 이사회를 소집하지 않은 채 식대인상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학교 정책결정과정의 문제가 깔려있다.

이번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후 복지이사회가 정식으로 소집되지 않은 채 식대인상으로 결정이 이루어진 데에 있다. 복지이사회는 교수, 직원, 학생 각 5명씩 동수의 이사들로 구성된 의결기구다. 정책결정 과정을 민주적으로 이끌어나가자는 데에 이사회의 의의가 있으며 또한 최종의결기구인 이사회는 복지문제에 관련해 학생측의 대변인을 내세울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런 만큼 이사회에 일방적인 통보만 한 채 학생처에서 독단으로 결정을 내린 것은 의결과정에 치명적인 부분이다.

이와 같은 지적에 복지회 측은 “2월 18일의 이사회 소집 자체에 문제가 있다. 식대인상 같은 종류의 학교 정책은 복지회 이사회에서 결정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 학생 설문조사를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자료일 뿐이다.”라고 말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이사회의 재소집이나 이 사안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학생기구와의 협의 없이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최선의 방안이었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복지이사회의 학생이사인 김중석(화학 4) 학우는 “통보만으로 이사회 소집이 무산된 것에 무척 당황스럽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 학생 복지를 위한다는 이러한 정책 시행에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은 시행 후 조금만 지나면 유야무야되는 이행과정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이번 식질개선정책에 대한 학우들의 가장 큰 불만도 ‘처음에 좀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예전과 비슷해지는 게 아닌가’하는 점이다.

식질개선이라는 좋은 취지에서 시행되는 이번 정책이 이렇게 좋은 면만을 보일 수 없는 이유를 이러한 것들에서 찾을 있다. 물론 이렇게 된 배경에 또 하나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학우들의 무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총학을 대행하는 학과협이 있었으나, 조직적인 학우들 의견 반영의 방법이 단지 설문조사를 하고 그것을 학교측에 통보하는 것으로 끝났다는 점, 이사회 재소집에 없었던 것에 대해 학생처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못한 점들은 만년적인 자치단체의 역량 부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태도이다. 보다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의견수립을 할 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다.

한편 복지회 이사회는 열리지 않았지만, 학생처장과 복지회,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간담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식대인상분이 어떻게 쓰이는지, 식질개선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안이 강구되고 있는지를 거론함으로써 간담회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즉, 형식은 간담회를 빌렸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한 설명회에 불과했다. 식대인상을 놓고 학교측과 학생측의 의견 조절을 할 수 있는 이사회가 열리지 못한 마당에 이를 대신할 수 있는 간담회를 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학생들이 받을 ‘충격’을 완화시켜 주고자 하는 통과의례적 자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미 결정된 정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생각해 봐야 하겠다. 학생과 자치단체의 바람직한 태도란, 대책없는 반발만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행결과를 예측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 보다 양질의 정책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 모두가 새로운 정책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굳이 이 식대인상 건에만 국한될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비록 반발은 있었지만 적자를 감수하면서 학생식당의 식질을 개선하려는 학교측의 의지는 그 순수한 면에서만 본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우리들도 보여야 할 반응이 있어야 한다. 그 일례로 잔식을 줄이는 것을 들 수 있다. 자율배식의 가장 큰 문제점인 많은 양의 잔식은 그 자체가 낭비이고 오염원이 된다. 학생식당의 적자폭을 감소시키고, 그래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도 더 나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학우들이 협조하는 방법이 바로 잔식 줄이기 운동이다. 이는 앞으로 반찬이 늘어나게 되면 더욱 강조되는 사항이다.

새로운 정책이 시행될 때마다 항상 불거져 나오는 구조적 병폐로 지적되던 것들이 이번 식질향상에 부가된 식대인상을 놓고서도 다시 논란을 빚었다. 이미 지적한 바대로 이 대학이 구성원 모두의 삶의 공동체임을 의식하고 자신의 일처럼 관심을 갖는 풍토가 자리잡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