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길 박사 6주기에 붙여
김호길 박사 6주기에 붙여
  • 박태준 / 국무총리, 포항공대 총동창회 명예회장
  • 승인 2000.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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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남긴 정신적 유산이 전통으로 자리잡기를
이맘때쯤, 포항공대 캠퍼스는 초록빛 신록이 눈부시게 물들고 영산홍과 철쭉꽃이 찬란히 피어 있겠군요. 마로니에들은 일곱 잎사귀를 활짝 펼치고 머잖아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겠지요.

1986년 12월, 본관 옆에 내 손으로 심은 배롱나무에도 올해의 새순들이 돋아나고 있을 것 같군요. 먼 타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듯 불현듯 포항공대를 떠올려보는 나의 뇌리에 이런저런 궁금증들이 스쳐갑니다.

그동안 모두 잘 지내셨는지요? 새 천년과 21세기의 첫 봄을 맞이한 포항공대와 모든 포항공대 가족들에게 봄볕 같은 사랑과 행복이 깃들기를 빌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나는 오늘 오랜만에 청춘의 한 시절처럼 긴 편지를 쓰겠습니다.

여러분, 어느덧 이 4월도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기억에 아로새겨져서 이제는 누구도 지울 수 없는 하나의 이름이 아삼아삼 되살아오는 시간을 맞이한 것입니다. 4월 30일, 그날은 도서관 앞 무은재(無垠齋) 흉상에서 그 특유의 괄괄한 목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를 일이군요.

김호길(金浩吉) 박사. 내가 생애에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어언 15년 전이니, 1985년 6월의 어느 저녁이었습니다. 포항공대 건설본부장을 지낸 이대공 상무(현 포철교육재단 이사장)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만남이었는데, 그때 김 박사는 갓 지천명(知天命)을 넘어선 나이였지요.

생면부지의 김 박사가 나에게 심어준 강렬한 첫인상은 당당한 자존심과 뜨거운 애국심이었고, 나는 그것이 순수한 신념과 열정을 품은 인간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그윽한 향기란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나의 눈에는 그의 오만이 오히려 귀하게 보였다고나 할까요.

그날 김호길 박사가 “제철소 하나는 그럴 듯하게 지었다지만 대장장이가 대학을 어찌 알겠습니까?”라며 노골적으로 나의 비위를 건드렸을 때, 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과학 분야를 지금 같은 수준으로 버려두고서는 나라의 장래가 없어요. 그러니 포철이라도 나서서 지금부터라도 투자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이런 식의 대화가 한참 진행된 어느 순간, 내가 그의 손을 덥석 잡으며 “김 박사, 당신이 맡아주시오. 나와 손잡고 제대로 한번 만들어 봅시다”라는 선언을 했을 때, 그는 또 천연덕스레 “회장님, 철강은 이제 사양산업입니다. 만약 제가 온다면 포항제철 부설 포항공대가 아니라 포항공대 부설 포항제철이 될텐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저에게 학교나 학사운영에 관한 일체의 권한을 일임하실 용의가 있습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물론, 나는 뜨거운 박수로 환영하는 것처럼 파안대소를 터뜨렸지요.
김호길 박사와 나는 이렇게 인연을 맺었습니다. 포항공대를 세우고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그의 사람됨을 더 깊이 알게 되었지만, 그는 능력과 신념을 겸비한 보기 드문 인물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신념이란 말을 철학이나 이상으로 바꾸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훌륭한 신념이 밑받침되지 않는다면 그의 능력은 공동체를 위하여 크게 열리기 어렵습니다. 김 박사의 경우에는 과학자로서의 탁월한 능력이 순수한 애국적 신념과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와 나의 인연을 맺어준 결정적 요인이 되었고 오늘의 포항공대를 있게 만든 튼튼한 기둥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과학이 낙후된 조국으로 돌아가서 과학을 바로 세우자’ - 아마도 이것이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조국으로 돌아온 무렵에 김호길 박사가 깨우치고 있었던 ‘천명(天命)’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그 사람은 벌써 6년 전에 우리의 곁을 영영 떠나갔습니다. 김호길을 아는 사람들의 가슴에 그는 이미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릇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는 삶의 법칙을 어느 누가 모르겠습니까만, 지금 나는 ‘자연의 법칙은 신도 바꿀 수 없다’는 그의 경구(警句)에 기대어 쓸쓸한 심회를 다스려 볼까 합니다.

물론 포항공대의 구석구석에는 김호길 박사의 자취가 살아있는 줄 압니다. 무은재 도서관과 무은재 흉상이 있으며, 무은재길이 있고 추모 문집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뒤에 남은 이들의 뜻깊은 정성이며, 고인에 대한 후학들의 아름다운 예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고인의 진정한 정신적 유산을 경배하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솔직히 나는 이 점에 대해 노파심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고 김호길 박사의 진정한 정신적 유산을 추앙하고 계승하지 않는다면, 고인에 대한 여러분의 모든 경배는 한낱 허례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나는 포항공대 가족 여러분이 ‘흘러간 옛노래’처럼 들을지 모르는, 특히 새내기들은 ‘대체 무슨 노래냐?’라고 의아해 할지도 모르는, 그러나 도저히 감추거나 속일 수 없는 우리 ‘족보’의 한 페이지를 펼쳐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포항공대의 철학’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항공대는 포항제철이 낳고 길렀습니다. 포항제철은 ‘우향우 정신’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기업입니다. 우향우 정신이란 ‘조상의 혈세(일제 식민지 배상금)로 짓는 제철소이니 실패하면 우리 모두 오른쪽으로 달려가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는 순결한 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결같이 그런 자세로 17년을 성장한 포항제철이 이윽고 포항공대를 잉태했을 때는 ‘포항공대가 장차 우리 나라의 이공계 분야를 책임지고 이끌어가게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포항공대 가족 여러분. 나는 더 긴 설명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바로 그 소명 때문에 김호길 박사와 나의 굳센 인연을 맺을 수 있었으며 그것이야말로 고인이 남긴 정신적 유산의 알맹이임을 확신한다는 고백을 남겨두고 싶습니다.

물론 정신적 유산을 추앙하고 계승하는 일은 하루 아침의 인위적 행사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오랜 연륜과 함께 전통과 학풍이 되어 자연스레 살아 숨쉴 때, 빛나는 대학문화로 뿌리를 내릴 때, 비로소 그 일은 포항공대의 일상 속으로 흐르게 될 것입니다.

포항공대 설립자로서 또 총동창회 명예회장으로서 나는, 고 김호길 박사와 내가 요람의 아기처럼 소중히 보듬고 받들었던 그 ‘소명’이 포항공대의 전통과 학풍, 그리고 대학문화로 자리잡아서 길이 이어져 가게 되기를 희구하고 있습니다. 이 간절한 기원 속에는 내가 오늘의 포항공대 가족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진심이 함축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러분. 반가운 얼굴로 다시 만나는 날까지 늘 건강하시고 꿈을 위하여 하루하루를 힘차게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의 그런 삶이 모여서 노벨동산은 마침내 우거진 숲이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교정의 느티나무들이 우람한 거목으로 성장하는 그날까지 ‘언제나 처음처럼’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