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 오름돌] 사라져서는 안되는 것 하나
[일흔여덟 오름돌] 사라져서는 안되는 것 하나
  • 백정현 기자
  • 승인 2000.05.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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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역사학에 있어서는 종래의 관습·제도·방식을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세우는 것이라고 한다. 군사적 쿠데타와 혁명을 구분지을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정신적인 면, 혹은 패러다임이라고 하는 것의 변혁이라는 면모에서 찾아볼 수 있다. 1765년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일어난 일련의 역사적 진보 역시 단순히 ‘기계’라는 것의 발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것이다. 기계는 사람들의 의식을 저 깊은 곳에서부터 바꾸어 놓았으며, 심지어는 사회주의 사상의 모태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엄청난 변혁을 가져왔기에 우리는 그것을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지금의 인류 또한 혁명 과정 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혁명 역시 외관상으로는 조용히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혁명으로 인해 피를 흘리는 사람도 없고 정권이 교체되는 일도 없으며, 아직은 세계 경제의 우위가 바뀌는 일도 없다. 그러나 인류가 겪었던 그 어느 때의 사건보다도 지독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생활양식의 전반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 바로 ‘정보혁명’이다.
일면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혁명이라고는 하지만, 경제신문의 머릿기사에서 인터넷 관련 기업들의 얘기가 빠지는 일은 거의 없다. 현대 산업은 이 인터넷에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잘 적응시키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할 정도이며, 이것은 개인의 발전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초 단위로 변하는 세상에서 자신만이 뒤처지는 느낌 때문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마저도 서슴치 않을 정도다.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여 도태된 공룡의 이야기가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이 요즈음의 사회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관주의일까?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우리 자신 또한 한 예가 될 수 있다. 이미 포스비와 팀스라는 게시판의 이용이 활성화되어 각 과의 공공게시가 이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서로간의 대화조차도 이 가상공간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어찌보면 적어도 포항공대라는 울타리 내에서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조그만 집단에서 어느 ID가 실제의 누구인가 하는 것은 약간의 수고만 있으면 금새 알아낼 수 있으며,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난다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게다가 현실의 문제가 가상공간 상에서 토론이 되어지고, 또 그 토론의 결과가 때때로 현실로 튀어나오기까지 한다.

이 모든 변화가 혁명의 과도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당황스러움으로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적응과 진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하더라도, 몇가지 놓치지 않고 이어갔으면 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중에 하나로 ‘대자보 문화’를 들 수 있다.

과거 억압이라는 것도 있고 탄압이라는 것도 있던 시절에 등록금 인상이 발표되면 날카로운 논조로 대학본부를 비판했던, 5·18이 다가오면 ‘남겨진 자’들에게 격앙된 감정을 호소했던 대자보는 이제 사라져가고 있다. 대자보를 한 장 쓰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생각할 때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그 하얀 종이 위에 채우려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또 그에 대한 반박도 역시 정리되어 대자보로 그 옆에 나란히 붙곤 했다. 논쟁의 요점정리라고나 할까. 그저 아무생각없이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그 연결된 대자보를 자세히 훑어보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길가에 붙어있는 하얀 종이는 동문회 공고와 동아리 모임 공고와 가끔 있는 행사 공고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의 사상과 사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리고 울분과 환희는.

이미 가상의 공간으로 모든 것이 이동해 버렸다. 미처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게시판에 올리는 글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즉각적이고 말초적인 반응들, 따라서 오르는 순간적인 대응들. 하나의 주제가 게시판을 후끈하게 달구었다가도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다른 것으로 교체되기 일쑤며, 대개의 경우 아무런 결론없이 그 말싸움이 끝나곤 한다. BBS라는 것이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한다면 이의는 없다. 그러나 그 괴물이 우리의 토론문화를 먹어버린 것은 아닐까? 가상공간상에서의 토론도 토론이라고 말하려면 그것이 현실세계와 연관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주제만 현실세계에서 차용하고 버리는 토론은 그 정체를 찾을 수 없다.

혁명의 과도기에는 많은 것들이 희생되기도 하고, 그러한 것들 중 일부분은 새로운 세계를 위한 초석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 생애에서만이라도 사라져서는 안되는 것들도 있다. 그런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고통과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