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일본어 강좌 개설파문] 대우전임강사제도 폐지 따른 오해로 파문 번져
[기획취재-일본어 강좌 개설파문] 대우전임강사제도 폐지 따른 오해로 파문 번져
  • 백정현기자
  • 승인 200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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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강좌 중요성 간과돼… 어학정책 개선 필요

최근 2학기 일본어 강좌가 당초 개설되지 않았다가 학생들의 수요를 감안하여 다시 개설하는 과정에서, 이와 함께 박기환 일본어교수의 계약이 만료되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 두 가지 문제가 학생들에게 적지않은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사실 일본어의 개설여부와 일본어 교수의 임용문제는 엄격하게 분리시켜놓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논리적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불거지는 사실들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시야를 흐리게 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박기환 교수의 계약만료가 이번에야 알려지게 되었지만, 사실 이 문제는 이미 98년 이전에 끝났을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98년 초에 이미 99년 2월로 계약을 종료시킨다는 통보가 본인에게 전달되었으며, 이후 2000년 2월로 계약을 1년 더 연장한다는 통보가 역시 전달되었다. 그러나 올해 초의 계약만료를 앞두고 박기환 교수가 거취문제와 관련하여 시간적 여유를 요구하는 등의 이유로 하여 올해 8월 31일로 계약만료시점을 연장시킨 것이다.

박기환 교수의 직위인 ‘대우전임강사’라는 직책은 이미 TIMS의 게시판에서도 어느정도 설명이 되었듯이 정규교원으로의 승진을 배제하기로 양자가 합의한 계약제이다. 어쨌건 교원의 임용문제는 전적으로 인사위원회를 비롯한 학교의 방침과 규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사안이므로 학생들이 단체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일본어 개설여부와 일본어 교수의 임용문제가 겹치는 이유도 이 석연치 않은 구석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

두 가지 정도의 관련사실의 나열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우선 보아야 할 것은 우리 학교의 특수한 교원체제중인 ‘대우전임강사’라는 직위이다.

우리 학교는 개교 초기부터 교양학부(현 인문사회학부)의 위상확립에 남다른 고민을 해 왔다. 타 종합대학과는 달리 인문사회학 관련 학과가 없는 상황에서 단지 학생들의 수준있는 교양수업을 위한 교수들을 초빙하는 데에는 포항이라는 지역적 불리함도 크게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결국 대도시의 여느 대학이라면 비용도 훨씬 적게 드는 ‘시간강사’라는 직책으로 교수를 대신할 수 있겠지만, 우리 학교는 궁여지책으로 ‘대우전임강사’라는 다소 비정규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된 것이다. 이 직책은 정규교원과 같은 양의 강의를 수행하게 하기 위해(담당수업이 주 9시간 이상이면 전임강사 이상의 정규교원이 필요하다) 정규교원의 70%에 해당하는 연봉을 제공하는 등의 혜택을 제공한 것으로, 개교 초기 교양학부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정상적인 수업진행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우리 학교의 방침은 필수과목에서만 전임교원을 두도록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요는 많으나 교수직을 둘 수는 없었던 상황 아래서 이 대우전임이라는 제도는 학생의 입장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이러한 변칙적인 직책을 유지해 나갈 수는 없는 것이 학교의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일본어의 개설여부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는가. 사실 인문사회학부의 교과과정상의 문제점을 모두 짚어본다면 일본어는 그 중 하나의 문제에 불과하다. 크게 인문사회학부라는 울타리 내에 인문과학, 사회과학, 어문학이라는 세 개의 또다른 울타리가 있고 그 중 어문학이라는 분야 안에 일본어라는 과목이 있다. 현재 개편된 교과과정에 의하면 어문학에서 영어와 글쓰기 과목을 제외하고는 필수과목이 없다. 수요자인 학생들의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히는 것으로 방향지어진 현재의 교과과정에서나 사회과학분야의 전임교원 확보도 제대로 안된 인문사회학부의 실정상 굳이 선택과목인 일본어 과목에 전임교원을 배정하라는 학생들의 요구는 사실상 무리인 셈이다.

우리 학교는 개교초기부터 일본어와 중국어 등 제 2외국어의 교육을 중요시해 왔다. 공과대학이라는 특성상 일본어의 중요도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며, 중국어 또한 21세기 동아시아의 판도를 본다면 그 흐름을 같이한다. 일본어나 중국어가 영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 학교를 제외한 다른 대학과 학생들이 모두 인지하고 있는 명확한 사실이다. 실례로 KAIST의 경우를 보면 현재 전임교수 1명, 시간강사 1명이 일본어 초·중급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현 인문사회학부의 기본정책은 일본어를 필수적인 어문학으로 인지하고 있지 않다. 인문사회학부장은 글쓰기 교육을 더욱 강조할 뿐, 영어교육 못지 않게 필요한 일본어의 교육에 대해서는 “강사로 대체할 것”이라는 정도의 대안만 내놓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강사를 초빙하는 데 드는 어려움은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 대우전임이라는 제도가 생기게 되었는지를 간과한 결과다. 이는 소흥렬 교수도 당시 이화여대의 교수로서 참여했던 인문사회학부의 ‘외부자문위원회(위원장 김기혁 교수)’의 활동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98년 하반기에 활동하여 99년 2월 권고안을 제출했던 이 위원회의 권고안에는 원론적인 얘기만을 나열하면서 우리 학교 학생들의 글쓰기 교육만을 강조하고 있다. 위원회의 위원들이 모두 ‘서울’의 ‘종합대학’의 교수라는 점을 보면 포항이라는, 그리고 공과대학이라는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권고안이었던 것이다. 위원장을 제외하고는 포항공대의 특성을 파악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서울에서 열 번도 채 안되는 회동을 가진 뒤 결정한 것이 외부자문위원회의 권고안이다. 여기서부터 비롯된 지금의 인문사회학부의 어학교육의 방향은 무언가 삐긋거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편 학내에서는 이번 일본어 문제에 대한 서명운동이 진행되었고, 총학을 대행하고 있는 학과학생활동협의회가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대처방안을 논의중에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서명운동은 그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다. 서명운동의 중심이 일본어강좌 부활이 아닌 박기환 교수 재계약이라는 점에 맞추어져 있다면, 아무도 이 서명운동으로 득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두 가지 가정이 가능하다. 우선 이 서명운동으로 인해 박기환 교수가 전임직, 혹은 계약직으로나마 재계약이 이루어진다고 하자. 이것은 결국 학생들의 단체행동에 학교의 기본적이고 고유한 인사권한이 침해당한 셈이다. 만약 앞으로 이와 비슷한 류의 사건이 생긴다면, 이것이 전례가 되어 학교의 정책은 그 일관성을 잃을 수 있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학생은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의사를 개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데에는 방해받지 않아야 하지만, 학교의 모든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는 없으며 그 결정을 번복시키는 행위는 제한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서명운동으로 인해 박기환 교수의 거취문제가 변동이 생기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현재의 상황으로는 일본어가 다시 개설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으며, 당장 다음학기의 일본어는 새로운 강사가 와서 진행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서명운동을 하게 된 이유는 박기환 교수에게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서명운동으로 말미암아 박기환 교수가 다시 이 학교에 설 자리는 좁아진 것이다. 일본어가 정식으로 개설되고 혹 전임교원을 채용하게 되더라도 학교의 입장은 이런 소란을 일으킨 사람을 다시 채용하고 싶지가 않을 것이다. 즉 반대를 더욱 더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여론은 일본어를 비롯한 현 인문사회학부의 어학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박기환 교수 한 사람에 대한 동정이 학생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앗아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