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화진단] 신입생 환영회 문화-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씁쓸한 대학인의 초상
[대학문화진단] 신입생 환영회 문화-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씁쓸한 대학인의 초상
  • 이재훈 기자
  • 승인 2001.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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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환영회는 대학교 초년생인 새내기들에게나 재학생들에게나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새내기들에게는 대학이라는 구성체에 새롭게 편입되며 자신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또 재학생들에게는 새로운 구성원이 되는 새내기들을 맞이하여 주고 환영해 준다는 점에서 신입생 환영회는 없어서는 안될 일종의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단으로서 등장하는 것은 언제나 술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의 학생회관의 밤은 언제나 술냄새로 진동을 한다. 각 학과, 분반, 동아리의 신입생 환영회마다 어김없이 사발식 또는 선배들이 권하는 술에 새내기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그리고 이 ‘전통’은 선배들로부터 새내기들에게 전해져 다음 해에 다시 되풀이된다.

실제로 대학생들의 술에 대한 사회적인 가치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돌림술이 단결에 도움이 되는 행위로 인식하는 대학생의 비율이 26.2%이며, 윗사람이 술을 권할 때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인식하는 경향도 36.2%로 상당히 높다. 뿐만 아니라 20.6%의 학생들이 대학사회의 결속력을 위해서 술을 거절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9.2%의 학생들은 개인의 사정이 급하다고 하더라도 술자리에서 일찍 일어서는 행위를 단체결속에 해가 되므로 개인의 사정을 양보하여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데에는 대학생이 되면 당연히 술을 마셔야 하고 과음을 하더라도 대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정도 묵인해주는 우리 나라의 관대한 음주문화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새내기들을 맞이하며 환영하는 자리에서 꼭 술을 마셔야만 하고 또 과음을 해야만 할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고 음주가 다양한 대인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하며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또한 같은 방식의 신고식을 일제히 경험한 동기 사이에서는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조직 내에서 더 각별한 친분관계를 유지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술은 어디까지나 신입생을 구성원으로 맞이하며 축하해준다는 목적의 ‘수단’일 뿐이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마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듯 하다.

신입생들은 단숨에 술을 마셔야 하고, 자기순서를 거부한다는 것은 집단행동의 거부로 취급되기 때문에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신입생도 자기 주량 이상의 술을 마시게 되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 또한 과음 때문에 자기 절제력이 약해져 충동적으로 행동을 하게 되어 오히려 선배나 동기들과 불편한 관계를 맺게 되기도 한다. 지난 몇 년간 여러 대학에서 있었던 신입생 환영회에서의 사망사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는 ‘환영’의 수단을 진지하게 바꾸어야 할 때이다. 지금까지 향락적·소비적이었던, 그래서 주객이 전도되었던 신입생 환영회. 목적에 걸맞게 이끌고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난 97년의 한 일간신문에는 부산의 어느 대학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음주 대신 환경 정화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대체한다는 기사가 실렸었다.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상당히 ‘목적’에 걸맞는 행사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새로운 신입생 환영회의 핵심은 토론문화가 대신하여야 한다. 새롭게 구성원이 된 그들에게 대학생활에 대해서 그리고 새롭게 맺게 되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비판해 줄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한 때이다. 내년부터는 음주 뿐만 아니라 대학생만의 비판적·생산적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신입생 환영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