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명해야 할 여성 과학자
재조명해야 할 여성 과학자
  • 이은화 기자
  • 승인 2007.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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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내핵을 발견한 지질학자 잉게 레만 (1888~1993)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지각-맨틀-외핵-내핵의 층상구조로 되어있다. 이러한 지구의 내부구조는 매질의 구성물질과 상태에 따라 속도가 변하며, 굴절하거나 반사하는 지진파분석을 통해 밝혀지게 되었다. 지구층상구조 연구에 사용되는 지진파인 실체파(body wave)는 전파속도가 가장 빠르고 파의 진행방향과 매질의 이동방향이 같은 P(primary wave)파와, P파보다 속도가 느려 P파 다음으로 도착하며 파의 진행방향과 매질의 진행방향이 수직인 S(secondary wave)파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S파는 고체·액체·기체를 모두 통과하는 P파와는 달리 고체만 통과할 수 있다.

<그림 참고> 1901년, 크로아티아의 지진학자 안드리자 모호로비치치(Andrija Mohorovicic)는 지진파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는 것을 보고 지각과 맨틀의 경계(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를 발견했고, 몇 년 뒤 독일의 지진학자 베노구텐베르크(Beno Gutenberg)는 지진파가 전달되지 않는 35°의 폭의 암영대(Shadow Zone)의 존재와 늦어진 지진파의 속도를 통해 지구가 맨틀과는 다르게 금속성분으로 구성된 핵을 포함한다는 것을 제안하였다. 1930년대 들어 더욱 정밀해진 지진계를 통해 암영대에서 P파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고, 1936년 덴마크의 지질학자 잉게 레만(Inge Lehmann)은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지진 관측을 통해 내핵 존재 가설을 세우게 된다.

레만은 암영대에서 감지된 P파가 전달속도를 고려했을 때 ‘도달시간 지연’ 현상을 보인다는 것을 관찰했다. 그녀는 응용수학과 측지학 전공자답게 P파 전달 경로를 직선처럼 이상화시키고 외핵의 경계를 유리처럼 취급했다. P파의 도달시간이 길어지려면 외핵 내부 어디에선가 외핵의 유동 물질보다 밀도가 높은 어떤 것이 존재하여 P파를 반사시켜야 한다. 결국 지구의 핵은 외핵과 내핵의 불연속적인 이중 구조를 갖게 된다. 레만은 P파의 전달 속도와 도달 지연 시간에 부합하는 반사 지점을 찾아내는 작업을 통해 내핵의 반경을 계산해냈다. 그녀는 이 연구내용을 정리하여 지질학계에서 가장 짧은 논문제목인 ‘P’를 발표했다. 그녀의 업적을 기려 지구 외핵과 내핵의 경계면을 ‘레만면’이라 명명했다.

레만은 이후에도 맨틀상부 구조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면서 학계에서 상당한 권위를 확보해나갔다. 그녀는 또한 코펜하겐과 그린란드에 지진 관측소를 설립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덴마크 지구물리학회와 유럽 지진학 연맹을 설립하는 등 많은 국제 지진협회 및 연구소 설립에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1년 미국지구과학협회에서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William Bowie 메달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The master of a black art for which no amount of computerizing is likely to be a complete substitute.”로 묘사한다. 지진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그녀는 1993년 10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여성 과학자가 인정받기 힘든 20세기 중반 레만은 그 누구도 제안하지 않았던 지구내핵존재설을 주장하면서 여성과학자계의 선구자가 되었다. 레만은 자신이 다녔던 덴마크 최초의 남녀공학 학교에서 받은 양성평등적인 교육의 영향으로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사고의 소유자가 될 수 있었다. 그녀는 덴마크의 코펜하겐 대에서 수학과 측지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1925년부터 덴마크 지진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레만이 부딪혀야 했던 수학과 과학계의 현실은 자신이 어릴 적에 받았던 교육현실과 너무나 상반되었다. 그녀는 같은 지질학 연구자인 조카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무능력한 남자들과 쓸데없이 경쟁해야했는지 네가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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