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명해야 할 여성 과학자 (2)
재조명해야 할 여성 과학자 (2)
  • 류정은 / 기계 석사07
  • 승인 2007.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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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과학 분야의 주부 과학자 아그네스 포켈스
문제를 풀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이든 어떤 도구든 투입될 수 있는 것이 과학이며, 정량화된 측정량을 얻고 실제 현상들에 대한 설명력을 갖추어가면서 과학은 견고함을 더해갈 수 있다. 표면 현상에 대한 연구를 하는 표면과학 역시 액체의 표면에 작용하는 힘의 정량적인 측정을 시작으로 자체의 견고한 설명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아그네스 포켈스(Agnes Luise Wilhelmine Pockels : 1862~1935)라는 한 독일 가정주부의 공헌을 빼놓을 수 없다.

포켈스는 과학, 특히 물리학을 좋아하는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대학에 진학해 계속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지만, 여성들의 경우 대학 입학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부모의 반대로 고등학교 이상의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픈 부모와 남동생의 건강을 돌보며 가정주부로서 집안일을 돌봐야 했다. 다행히도 괴팅겐 물리학과에 다니는 그녀의 남동생을 통해 교과서와 과학 논문들을 얻어보며 집에서 틈틈이 혼자 공부를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기름 한 방울은 액체 표면에서 얼마나 넓게 퍼질 수 있을까?”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가사를 돌보면서 던진 18살 소녀의 이 의문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았다. 접시의 기름때를 닦으면서 세제의 거품, 다양한 색의 비눗방울들의 거동을 통해 물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가지게 된 관심은 부엌에 있는 가사 도구들을 이용한 실험과 측정으로 이어졌다. 부엌은 그녀만의 실험실이 되었다. 부엌이라는 실험실에서 표면과학의 역사가 새로운 방향을 찾게 된 것이다.

그녀는 싱크대에서 단추를 이용해 힘의 균형을 측정하는 ‘포켈 수조(tin water trough)’를 만들어 처음으로 표면장력을 정량적으로 측정해냈다. 이 장치는 1932년 표면화학 분야에의 공헌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던 랭뮤어(Irving Langmuir)의 ‘랭뮤어 수조(Langmuir trough)’의 전신으로, 오늘날까지도 표면장력의 측정과 표면의 단일막(monolayer) 연구에 사용되고 있다.

또한 직접 고안한 포켈 수조를 가지고 유체에 기름과 같은 다른 물질이나 불순물이 들어갔을 때 그 유체의 특성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 정량적인 접근을 했으며, 접촉각도 측정했다. 유체의 표면 특성을 조절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불순물에 의해 유체의 특성이 다르게 측정되어 빚어진 서로 다른 실험결과에 대한 논란을 해소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과학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실험결과를 담은 서신을 괴팅겐 물리학과 교수들에게 보냈지만 어떤 응답도 받지 못했다. 1891년, 운 좋게도 그녀는 레일라이 경(Lord Rayleigh)에 의해 10년간의 연구를 묶어서 ‘네이처’에 게재할 수 있었고, 그 후 총 16편의 논문을 쓰며 연구결과들을 발표할 수 있었다. 첫 논문에 영문으로 번역된 포켈스의 편지에 달린 레일라이 경의 평대로 그녀는 표면과학에서 중요한 핵심 문제들을 건드렸다.

부엌에서 실험을 계속하던 그녀는 말년이 되어서야 연구활동을 인정받아 독일 콜로이드 학회에서 연례상을 수상했고, 70세 때 브라운 슈바이히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표면막에 대한 정량적인 연구의 기초를 마련한 그녀를 기리기 위해 20Å정도의 단일분자막이 점유하는 최소영역을 포켈 지점(Pockels’ point)라 부르고 있으며, 독일에서는 그녀의 과학방식을 교육에 적용하여 아그네스 포켈스 학생실험실(Agnes Pockels pupil laboratory)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