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CH 영어교육의 새로운 접근
POSTECH 영어교육의 새로운 접근
  • 권수옥 / 인문사회학부 교수
  • 승인 2007.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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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길이 있다…‘문학작품’을 많이 읽어라

1. 왜 모든 인간은 story를 좋아 하는가

지난 호에서는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EFL(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의 한국적 상황에서 성인 영어 학습자가 의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가능한 한 input에의 노출(exposure)을 늘려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광범위한 독서가 필요불가결하다고 말한바 있다.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활자를 통해 이해하는 방법이 ‘공부’라는 개념의 대표적인 행위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모국어이건, 외국어이건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기르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게 된다.
보통 우리 주변에서 흔히 유식한(?) 사람은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이 많고, 세상 돌아가는 속도에 맞추어 살기에 벅찬 필자와 같은 뒷북을 잘 치는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바로 관련된 책을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고 시도하곤 한다. 너무도 진부한 격언이 되어버린 ‘책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을 새삼 거론하자니 쑥스럽기까지 하다.

모든 인간들은 허구로 구성된 개연성이 높으나 현실보다는 어느 정도 덜 가혹한 상상의 여지를 남길 수 있는 텍스트를 좋아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인 우리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대대로 구전되는 설화를 듣는 아메리카 인디언이건, 해적판으로 나온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는 18세기 프랑스 귀족이건, 전차책 버전의 ‘반지의 제왕’을 읽는 한국의 포스테키안이건(한 조사에서 보니 서울대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도서가 판타지 소설이라고 한다) 크게 예외가 없을 것이다.

미국 대학에서 교양과목 중의 하나로 ‘Bible as Literature’라는 과목도 개설된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베스트 셀러인 성경을 신학적으로가 아니라 문학적으로 접근하여 하나의 텍스트(스토리)로 보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그만큼 스토리에 대한 인간의 호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는 아마 읽는 과정 그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기 때문이 아닐까?


2. Am I addicted? or Are you addictive?

우리가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우면서 부딪치는 장벽 중의 하나는 어떤 단어를 어떤 상황에 사용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이는 한국어의 의미역과 영어의 의미역이 포함하는 부분과 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어의 기본을 익힌 학습자에게도 쉽지 않은 영역이다. 가령 영어의 ‘gate’와 ‘door’는 그 의미역이 서로 다르지만 한국어로는 ‘문’이라는 공통의 번역형을 가진다. 문손잡이를 ‘door knob’이라고 하지 ‘gate knob’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전자는 가능하나 후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방적 설명에 의해 가르치기보다는 ‘door knob’이 쓰이는 텍스트를 읽어서 자연스럽게 input exposure를 증대시키는 것이 올바른 학습법이라 하겠다. 기왕 우리가 한국어로 ‘도어납’이라고 쓰지 않는 한은.

이처럼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 공백(gap)이 존재할 때 문맥을 통해 어휘의 의미를 습득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예를 들면, 학생들이 채팅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할 때, 스토리를 읽지 않고 하는 표현의 폭과 10쪽 분량의 채팅에 중독된 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 ‘Nethergrave’를 읽고서 쓰는 표현이나 주제의 폭넓음은 확연히 구분이 된다. 우선 단편소설을 읽은 학생들은 ‘addicted’(ex : He was addicted to computer games.)나 ‘cyber morality’와 같은 단어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실례로, 소설을 읽지 않고 토론을 할 때 ‘중독’이라는 개념으로 문맥적으로 부자연스러운 ‘adherence’라는 표현을 쓰는 학생도 있다. 이 단어는 한국어의 번역형이 ‘addiction’과 유사할 뿐 주어진 주제에 관해서는 ‘addiction’을 대신해서 쓰일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같은 어원의 ‘addicted’와 ‘addictive’도 정확하게 구분해서 쓰는데, 이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온라인 채팅에 대해 말하면서, “I know. It’s addictive”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오기 때문이다. 학습자는 머릿속에 스토리를 즐기는 와중에도 은연중에 ‘addicted’ 와 ‘addictive’를 분명히 구분하여 쓸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 미국인 친구의 아기랑 며칠을 지내다가 헤어질 때 아쉬워 하니까 친구가 “Babies are addictive.”라고 했던 말은 그 당시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 addictive가 저렇게도 쓰일 수가 있구나 라고.


3. Excuse me. vs. Excuse me?

다른 한 가지 예는 가장 흔히 쓰이는 표현중의 하나인 ‘Excuse me’이다. ‘Holes’라는 소설에서 이 표현은 세 가지 다른 뜻으로 쓰이는데, 이를 out of-context situation에서 설명하면 학생들은 이해를 잘 하지 못한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가면서 학생들은 겁 많은 주인공이 여러 소년들 사이를 헤쳐 나가며 두려움에 차서 하는 “Excuse me.”와 거만한 청소년 보호소장이 부하직원이 말대꾸를 함으로서 자신의 권위에 대항한다고 생각할 때 쓰는 “Excuse me?”와 상대가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들어 재차 말해줄 것을 요구할 때 쓰는 “Excuse me?”는 서로가 그 억양부터 다르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영화화되었는데, 소설을 읽고 영화에서 이 장면들이 나올 때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지 ‘Excuse me=실례합니다’로 일대일 관계로 배웠던 과거 학습지식을 대체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문학작품을 이용하여 영어를 공부하면, 상황에 적확한 단어를 골라 사용할 수 있다.

모든 외국인 학습자들에게 진실인 하나는 pleasant surprise로 들어오는 input은 반드시 단기기억을 넘어 장기기억으로 간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영어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활동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지는 방법이 authentic expressions에 많이 노출되는 것이고, 이는 바로 모든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스토리를 읽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외국어로 된 책은 아무리 그 명성이 자자해도 쉽게 접근하기가 힘들며, 불가항력적으로 쏟아지는 어려운 단어, 문화적 이해의 부족으로 해석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 안 되는 문장들로 인해 첫째 재미있게 읽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원작을 단어수준을 통제하여 개작한 simplified original을 통하여 Jane Austin의 ‘Pride and Prejudice’나 George Orwell의 ‘1984’도 시도해볼 수 있다. 이들 개작한 책들은 외국어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쓰여 졌기 때문에 학습자의 수준에 맞추어 여러 단계로 나누어져 있어서 graded reader라고 부른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청소년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다. 이들 작품들은 내용의 수준도 있는 반면 언어가 크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성인 외국어 학습자들이 읽기에 아주 재미가 있다. 필자도 POSTECH에 온 이후 수업준비를 위해 수십 권의 청소년 소설을 읽었는데, 하나 같이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넘어 수려하게 쓰인 언어를 즐기는 기쁨과 유용한 어휘와 표현을 익히고 사용하기에 참으로 좋은 교재가 되었다. graded reader와 청소년 소설은 다음호에 더 자세하게 소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