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CH 영어교육의 새로운 접근 - Extensive Reading
POSTECH 영어교육의 새로운 접근 - Extensive Reading
  • 권수옥 / 인문사회학부 교수
  • 승인 2007.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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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 어떻게 하면 좋은가 : Buy one, get three free
Input Exposure 늘리는 것이 최선의, 유일한 외국어 학습법

시리즈를 시작하며---------------------
최근 우리대학은 세계 20위권 대학 진입을 목표로 ‘POSTECH VISION 2020’을 선포하며 제 분야에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포스테키안들이 이에 합당한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연구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공실력과 함께 영어실력 또한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대학의 영어프로그램은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 점에서 이미 다른 대학과 구별이 되고 있는데, 이에 더하여 문학작품 읽기를 이용한 새롭고 재미있는 영어교수법을 소개하여 구성원들의 영어공부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인문사회학부에서는 국내대학으로서는 처음으로 문학작품 읽기를 통하여 어휘·문법·작문·회화의 통합적 향상을 꾀하고자 Extensive Reading(ER) program을 2006년 개발, 2007년 봄 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본 시리즈에서는 ER program의 내용을 설명하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 설립된 어학센터 영어도서관(Poslec English Library)의 취지와 기대효과를 6회에 걸쳐 소개한다.


1. 외국어로서의 영어
인간은 언어본능(language instinct)을 가진 동물이다. 즉,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애써 배우지 않아도 모국어를 습득하는 능력이 내재(inborn)되어 있어서, 굳이 애써 학습하지 않아도 타고난 언어능력으로 인해 최소한의 input으로 완전한 문법체계를 갖춘 모국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굳이 인간의 내재적 언어습득 능력을 보편문법(Universal Grammar)이라는 개념을 창시하여 주장한 MIT의 유명한 언어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Noam Chomsky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우리가 아주 흔히 관찰하는 현상이다.

세상의 어떤 부모도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카세트테이프를 틀어 준다거나,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그 아이는 주위 가족이나 친척들에 둘러싸여 단지 몇 년간 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생활해 가면서 한 단어, 한 구절, 한 문장, 그리고는 어느 순간 세상 그 누구에게서도 발화되지 않은 자신만의 문장을 얘기할 수 있게 된다. 이 시기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하는 착각과 우려에 빠지게 된다. 물론 그 착각은 곧 깨어지는 비극에 처해지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물론 그 아이의 머릿속에서 얼마나 복잡한 과정이 오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의 모국어를 말할 수 있게 된 아이는, 요즘의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말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한국어와는 어순과 구조에서부터 완전히 다른 ‘잉글리쉬’라는 언어를 또 배워야 한다. 이제는 학원에 반드시 가야하고, 카세트테이프뿐만 아니라 비디오도 보고, 노래도 배우고, 심지어 원어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까지 해야 한다. 좀 더 잉글리쉬를 잘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아이도 힘들고 부모도 힘든데, 아이의 영어는 좀체 한국어만큼 만족스럽게 되지를 않는다. 물론 이 아이는 코끼리가 ‘elephant’이고, 사과는 ‘apple’ 이라는 것도 알고, ‘f’ 와 ‘p’ 발음을 구별할 줄도 알고, “How are you?” 하면 “I’m fine. Thank you.”로 답도 할 줄 아는데 말이다.

왜 그럴까? 물론 이론적으로 설명하면 이 아이가 모국어를 배울 때 써먹었던 저 내재적 능력(Universal Grammar)이 더 이상 작동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물론 이 능력이 외국어를 배울 때도 여전히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언어신동도 있다. 늘 인생은 예외로 가득 차 있으니까. 그러나 천재로 알았던 우리아이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대부분의 경우 외국어로 배우는 영어는 한국어만큼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완벽한 이중언어구사자(perfect bilingual)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타고난 능력이 더 이상 작동 안 하는 것은(만약 그 이론이 사실이라면) 그 아이 잘못이 아니므로, 다른 방법을 통해 영어를 잘 배우는 방법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인생이 공평할 테니까. 그건 바로 그 아이가 태어나 한국어를 배웠을 때와 같은 환경에서 한국어 대신 영어를 하면 된다. 부모도, 친척도, 친구도 모두 영어를 사용하면 된다. 이 시나리오는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미국으로 이민가는 것이다.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너도나도 다 이 땅을 떠나면 한반도는 누가 지키나? 두 가지 경우 모두 힘들다면,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단 말인가?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파악했을 것이다. 그 희망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으로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한국에서는 학습자가 의식적으로 영어의 바다에 빠져야 한다.


2. 영어에의 노출?
필자가 좀 억지에 가깝도록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배우는 과정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기술한 이유는 바로 많은 노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여름 태양빛에 비키니로 나가는 노출이 아니라 영어에 우리 자신을 노출시킨다는 거다. 전문적인 용어로 하면 input exposure 혹은 input enhancement라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한국에서 영어를 잘 배우기 위해서는 나이가 몇 살 때 시작하건 상관없이 ‘의식적’으로 영어에 대한 input exposure를 증대시키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을 좀 더 설득력 있게 하기 위함이다. 즉, 무조건 영어로 된 것을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수밖에는 없다. 그래서 영어공부에는 게으른 천재보다는 부지런한 둔재가 훨씬 유리하다. 외국어 학습은 결국 반복학습을 통한 자동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하와이대 언어학과에서 박사과정에 있을 때 머리를 식히려고 이웃 섬으로 가서 한달 정도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드물게도 그 곳에는 한국인이 한사람도 없었다. 다른 미국 대학과 마찬가지로 하와이대도 한국 학생이 많아 거의 매일 한국어를 듣고, 말하고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 한달 동안은 한마디도 한국말을 할 기회가 없이 영어로만 대화하고, 영어신문만 보고, 영어 방송만 들었다.

사실 그 이전에는 아무리 미국에 있었어도 언제나 한국유학생들이 있어 한국어에 노출된 환경이었으나, 그 기간 동안은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 하는 말은 주로 전공과 관련되어 있어 토픽의 제한이 있었으나, 그 곳에서는 내 또래의 미국 젊은이들과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일상생활로 부딪쳤기 때문에 인생겱탑?사랑겧肩×?같은 다양한 주제를 두고 서로 깊은 대화를 했다.

한달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우선 발음이 많이 부드러워 지고, 영어가 훨씬 자연스러워진 것을 쉽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때 몸소 느꼈었다. input exposure를 늘리는 것이 최선의, 유일한 외국어 학습법이라는 것을. 특히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영어를 배운 나와 같은 성인 학습자에게는 더욱더.


3. 왜 많이 읽어야 하는가
영어를 공부할 때 input exposure를 증대시키는 방법들 중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학습의 기본이 되는 읽기(reading)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지식습득의 대부분은 reading을 통해 습득된다.

얼마 전 신문에서 13세의 김활 학생이 빅뱅이 일어나기 직전의 인피니테시멀 세계와 20세기 히틀러 독재 시절 이야기를 크로스 커팅 작법을 이용해 ‘빅뱅의 비밀’이라는 판타지 소설을 출간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 학생은 “판타지 없는 과학은 공허하고, 과학 없는 판타지는 맹목적이다”라는 말까지 서두에 남겼다고 한다. 이 어린 학생의 해박함과 상상력은 그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독서’와 ‘놀이’로 시간을 보낸 데서 왔다고 한다. 아버지가 독일에서 유학중일 때 태어난 김활 군은 200권짜리 미국 판타지 소설 ‘도널드 덕’을 독어로 4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은 우선 영어로 된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라는 걸 볼 수 있다. 영어 신문도 읽고, 잡지도 읽고, 원서로 소설을 읽기도 한다. 읽기활동을 통해 세 가지 영역이 함께 발달할 수 있다. 첫째, 어휘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데, 문맥 안에서 자연스럽게 그 의미와 사용례를 익힐 수 있다. 둘째, 스토리가 주어지기 때문에 회화의 내용이 훨씬 풍부해질 수 있고, 문맥에 맞는 유용한 표현도 훨씬 용이하게 말 할 수 있다. 셋째, 책을 읽은 후의 자신의 감상을 글로 적어봄으로써 텍스트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키우고, 작문 연습이 된다. 곧 읽기를 통해 어휘곂맬춠작문의 세 가지 기능이 함께 향상된다. 이는 하나를 사면 하나가 덤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사면 세 개를 얻을 수 있는 ‘buy one, get three free’가 되니 좋지 아니한가.
이 모든 독서 행위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너무 어렵다거나 따분하다면, 이는 올바른 독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영어로 읽는 책은 자신의 능력보다 조금 더 쉬운 (i-1) 수준의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독서의 본연의 목적인 즐기면서 읽는 활동(pleasure reading)이 가능하다.
Pleasure reading을 하기에 가장 좋은 장르가 바로 문학작품이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쓰여진 문학작품은 그 자체가 감동의 원천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어 학습에 가장 훌륭한 모방 본보기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문학작품을 이용하여 어떻게 재미있는 영어 독서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호를 기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