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의 향연을 찾아서 ④ 실용적 의사소통 - 목표와 수단의 일치
의사소통의 향연을 찾아서 ④ 실용적 의사소통 - 목표와 수단의 일치
  • 박상준 / 인문사회학부 교수
  • 승인 2006.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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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매체를 골라, 형식에 맞추어 쓰자
1. 의사소통행위의 실용적인 특성
의사소통행위로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행위는 모두 실용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전 논의에서 밝혔듯이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세계에 충격을 가하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의사소통’ 행위 자체가 사회성을 전제하는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에 비추어서도 그러하다.
‘실용’의 의미를 좀 더 좁혀 보다 일상적인 맥락으로 써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성년의 사회구성원이 행하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의 상당 부분은 직장이나 학교 등 공적인 자리에서 행해지게 마련이다. 현대인의 준거집단이 가정 밖에서 마련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요컨대, 일기 쓰기나 1차 집단 내의 정감적인 언어활동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사소통행위는 주된 사회 활동으로서 실용적인 목적과 효과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실용적인 의사소통행위의 주요한 경우들을 우리는 공적인 글쓰기·말하기라 일컫는다. 실용적인 글쓰기의 예로는 공문서, 보고서, 제안서, 공적인 메일이나 공고 등의 작문을 들 수 있다. 한편 업무상의 전화 통화나 응대, 자기소개나 인터뷰 등에 각종 회의와 프레젠테이션 등에서의 발언이 실용적인 말하기의 예가 되겠다.
이렇게 일상적이고 다양하며 경우에 따라 매우 빈번한 실용적인 의사소통행위에서 우리가 갖추고 지켜야 할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적절한 매체를 고르는 안목과 주어진 형식을 준용하는 전문화된 능력이 그것이다.

2. 적절한 매체의 선택과 활용
실용적인 의사소통행위를 효과적겮별坪岵막?수행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사항 중의 하나는 매체의 선택 문제이다. 핸드아웃을 배포할 것인가 프레젠테이션을 이용할 것인가, 전화를 걸 것인가 이메일을 쓸 것인가 아니면 문자 메시지를 보낼 것인가 등을 결정하는 문제 말이다.
매체를 선택하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해 둘 필요가 있다.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행동하지는 않는 까닭이다.
특정 매체의 선택 자체가 소통되는 내용에 영향을 준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맥루한, <구텐베르크 은하계>). 기계공학적 속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정보사회의 새로운 매체 환경이 지식의 본성과 위상에 변화를 줌으로써 포스트모던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지적도, 매체가 갖는 의미를 잘 알려준다(리오타르, <포스트모던적 조건>, 서광사). 곰곰이 따져 보면, 예를 들어 ‘책’이라는 매체가 등장하기 이전과 이후의 지식에 큰 변화가 있었으리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책’이라는 매체에 담을 수 없는 지혜가 사라지거나 약화되고 거기에 담기 좋은 지식들만 살아남았으리라고 말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상대가 누구며 주제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적절한 매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메일의 경우 신속성 덕에 널리 이용되지만 윗사람에게 사용하기에 적절한 매체는 아니라 하겠다. 대단히 짧은 내용만 담을 수 있기에 예의를 차릴 여지가 물리적으로 거의 없다시피 한 휴대전화 문자의 경우는 친구들 사이에서나 쓸 수 있는 매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보다 효과적인 매체를 선택하는 안목을 갖추는 일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PPT를 이용하는 프레젠테이션과 워드 출력물을 복사한 유인물[handout]이 갖는 효과 면에서의 차이를 알아두어야 한다. 요점을 부각시켜 선명한 인상을 남기는 데는 프레젠테이션이 효과적이지만, 정확하고 세밀한 논의를 펼치는 데는 유인물 앞에 나서는 것이 없다.
보다 넓게 보면, 매체를 사용할 것인지 여부부터가 선택의 대상이 된다. 의사소통의 목적과 상황을 고려하여, 전화를 걸거나 문서를 보낼 것인지 아니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를 고를 수 있다. 매체를 사용하지 않는 맞대면 방식이 갖는 효과가 따로 있는 까닭이다.
매체의 사용 여부에서부터 어떠한 매체를 선택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매체는 의사소통행위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 매체의 선택에서 실수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사거나 전언을 충실히 표현할 수 없게 되어, 의사소통의 실제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목표와 수단을 일치시킨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수행하고자 하는 의사소통행위의 목적과 내용, 상대방과의 관계에 맞는 적절한 매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3. 체재의 존중과 간명한 형식
실용적인 의사소통행위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형식의 문제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말하기든 글쓰기든 어떠한 경우가 특정한 형식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에 맞추어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공문서나 보고서, 논문 등의 경우처럼 확고하게 정해진 형식이 있는 경우에는 그 규범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자신의 체재를 내세우는 이러한 글들은, 체재를 지키지 않은 경우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 애초부터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학회들이 제시하는 논문 투고 규정이나, 관공서에서 사용하는 특정한 서식들, 기업체 각각의 문서 규정 등이 그러한 체재의 예가 된다.

이보다는 좀 더 유연하다 해도, 관습적인 규범들 또한 적지 않다. 공식적인 관계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이라든가, 업무상 고객을 응대하는 방식, 프레젠테이션의 구성 및 진행 방법, 학회에서의 발표 방법 등 또한 어느 정도는 형식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도 그 규범을 제대로 지켜야 의사소통의 실제적인 목적을 이룰 여지가 그만큼 더 커지게 된다.
요컨대, 정해진 형식이 있는 경우라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실용적 의사소통행위의 목적을 최대한 살려줄 수 있는 자유롭고 편한 형식을 취하면 충분하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말이나 글의 체재 곧 전체적인 구성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형식에는 좀 더 미시적인 측면도 포함된다. 표제 설정이나 문장 쓰기 등이 그것이다. 표제는 전체 텍스트의 내용 곧 주제를 환기시켜야 하며, 문장은 간단명료하게 써야 한다. 실용적인 의사소통행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층위에서 효과적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

공문서의 경우에는 주제를 맨 앞에 간명하게 명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 밖의 필요한 내용들은 육하원칙에 맞게 짧은 문장들로 나누어 쓰는 것이 좋다. 여러 가지 내용을 섞어 하나의 문장으로 쓰면 그 각각의 의미가 충분히 강조되지 못하게 된다. 실용적인 글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특히 공문서의 경우에는, 간명하게 쓰는 것이 핵심 중의 핵심이다.
같은 의미에서, 제안서나 보고서의 경우 분량이 많다면, 처음 한 장에 전체 내용을 압축해서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식이 된다(패트릭 라일리, <강력하고 간결한 한 장의 기획서>). 실용적 의사소통의 상대편은 모두 바쁜 사람들이다. 그들의 시간을 아껴줌과 동시에 이쪽의 의도와 목적 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명확히 전달하게 되면, 의사소통의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게 될 것이다.
주제를 앞에 제시하거나 전체 내용의 요약을 맨 앞에 붙이는 방식 등은, 의사소통의 일반적인 형식에 비추어 볼 때 낯선 것이다. 대체로 하나의 완결된 글쓰기·말하기는 서두와 결어를 처음과 끝에 배치하고 그 중간에 본 내용을 담게 마련이다. 독자의 편의와 더불어 글의 완결성을 고려하기 위해서이다.

이에 비해 보면, 주제와 요지를 앞세우는 공적인 글쓰기의 구성방식이 얼마나 실용적인지가 자명해진다. 쥐를 잡는 것이 목적이라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상관없다는 것처럼, 의사소통의 실제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의사소통의 수단인 글이나 말을 완미하게 구성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는 까닭이다. 목적만을 보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은 문제지만, 형식주의에 갇히지 않고 목적에 충실을 기하는 유연함 또한 놓칠 수 없는 미덕이라 하겠다. 적어도 의사소통의 경우에서만큼은 특히 더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