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장론’과 우주의 기원
‘양자장론’과 우주의 기원
  • 박수용 / 물리 교수
  • 승인 2006.10.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물리학의 근본 원리…태초의 우주 모습 설명
▲ 130억년 전에 ‘빅뱅’으로부터 탄생한 우주가 약 38만년 정도 경과한 시점에서 빛이 물질과 분리될 때의 모습(얼룩덜룩한 무늬). 따라서 이 사진은 우주의 태초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종의 우주 화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금년도 노벨 물리학상은 COBE 위성을 이용하여 ‘우주의 배경복사’를 정밀 관측함으로써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데 기여한 공로로 미국의 Mather와 Smoot 두 사람에게 수여되었다.
<사진>에 나타난 얼룩덜룩한 무늬는 130억년 전에 ‘빅뱅’으로부터 탄생한 우주가 약 38만년 정도 경과한 시점에서 빛이 물질과 분리될 때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사진은 우주의 태초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종의 우주 화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Mather와 Smoot는 각기 이 우주 배경복사가 ①정확히 ‘흑체복사’ 스펙트럼 분포를 가지며 ②균일한 등방성 분포에 10만 분의 1 정도의 극히 작지만 의미 있는 요동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우주의 기원이 Einstein의 ‘정상 우주 모형’ 이 아니라, Gamow의 ‘Big Bang 모형’을 따른다는 것을 증명해줌과 동시에, 이 우주가 나중에 은하 같은 별들의 집단으로 응축되기 위하여 필수적인 양자장론적 요동을 태초에 이미 잉태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들의 발견은 우리 우주의 기원이 정확히 ‘양자장론적 빅뱅’ 모형을 따라 탄생·진화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로, Hawking은 이 발견이 ‘금세기’ 내지는 ‘역사상’ 최대의 발견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양자장론적 빅뱅 모형’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원리로 기술되는 중력 시공간 구조 위에 ‘양자장론적 대 통일장 이론(GUT)’을 결합한 것이다. 현재 양자장론에서는 우주의 4가지 기본 힘 중에서 중력을 제외한 전자기력·약력·강력을 아우르는 ‘양자장론적 대 통일장 이론’이 완성되어 있고, ‘표준 모델’로 불리는 이 이론은 우주가 하나의 점에서 ‘빅뱅’으로 탄생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팽창과 진화를 거듭해 왔는가 하는 우주적 시나리오를 매우 상세히 기술할 수 있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이 이론으로부터 예측되는 결과들은 우주의 진화 과정에서 우주 도처에 남겨진 은하와 우주 배경복사 같은 진화의 흔적들 즉, 우주적 화석과도 잘 일치하고 있다.

현재의 양자장론적 우주론은 우리로 하여금 우주의 기원에 대하여 ‘빅뱅’ 직후 Planck 시간인 10의 -43승 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한다. 이 시간 이후의 우주의 흥미 있는 진화 시나리오는 Weinberg의 ‘The First Three Minuites’ 라는 책에 잘 기술되어 있다. 그 이전에 일어난 현상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중력과 양자장론의 느슨한 결합이 아니라, 진정한 융합이 필요하다. 즉, 중력까지도 양자장론적으로 취급하는 이론이 필요한데, 이 문제는 많은 물리학자들의 오랜 노력에도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양자장론의 뿌리는 원래 원자세계를 기술하는데 사용되는 양자역학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보완하고, 핵 및 소립자 같은 더욱 미세한 세계를 기술할 수 있도록 확장하기 위하여 탄생하였다. 기존의 양자역학의 가장 큰 약점은 우선 그 이론이 비상대론적이라는 것과, 입자의 생성과 소멸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는 양자역학에서 수소 원자에 속한 전자가 에너지가 높은 여기 상태에 놓이게 되면 스스로 보다 낮은 에너지 준위로 천이하면서 그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광자를 발생시킨다고 배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천이 현상과 광자 방출은 양자장론적 현상으로 기존의 양자역학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자연계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발광 현상은 바로 이 자발적 천이에 따른 광자 발생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자연이 양자장론적이 아니고 통상의 양자역학적 세계였다면 우리의 세상은 아마 암흑의 세계였을 것이다. 놀랍게도, 양자장론은 원래 이런 입자의 생성과 소멸 현상을 기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라, 양자역학을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과 부합하도록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이론이다.

원래 미시세계를 기술하기 위하여 발전된 양자장론이 거시세계의 극한인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탄생하였기 때문에 그 초기 상태가 핵 속의 소립자 같은 적인 미시세계의 상태와 닮은꼴이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소립자 세계로 깊이 들어가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모든 종류의 소립자들이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구름 같은 분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복 수 있는데, 이것은 양자장론에 내재해 있는 불확정성 원리 때문에 일어나는 필연적인 현상으로, 바로 이러한 상태가 ‘빅뱅’ 직후 태초의 우주 모습이고, 이를 우리는 ‘cosmic soup’ 상태라고도 부른다.

현재 표준모델로 불리는 양자장론의 또 하나의 큰 특징은 ‘게이지 이론’으로 불리는 이론 형태로 대칭성과 ‘상전이’ 현상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상전이 현상은 액체에서 고체로 변화하는 과정처럼 그 상태가 현격히 바뀌는 현상인데, 대칭성의 변화와 에너지의 출입을 수반한다. 비슷한 형태의 상전이 현상이 우주적 스케일에서도 일어났는데, 태초의 ‘빅뱅’이 일종의 상전이 현상으로 태초에 점과 같은 무의 상태인 우주에서 현재 우주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를 합한 엄청난 에너지가 사실은 이 상전이 현상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태초에는 전자기력·약력·강력이 모두 하나의 통일된 힘으로 모든 소립자에 동등하게 작용하는 완전한 대칭성의 세계였던 것이 몇 차례 단계적으로 상전이를 거치면서 소립자와 그들 사이에 작용하는 상호작용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분화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표준모델을 이용하여 예측되는 것과 소립자와 우주에서 관측되는 여러 가지 사실과 잘 부합하고 있는데, 이 COBE 위성 관측 결과가 그 중 가장 드라마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학은 흔히 제일의 원리 학문 (A first principle theory)라고 불린다. 수학이 몇 개의 공리에 기초하여 엄격한 논리 체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학문이라면, 물리학은 자연 현상을 관찰 실험하고, 이를 궁극적인 근본 이론으로 수렴하여 모든 현상을 이 근본 이론에 연결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양자장론은 그 근사적 형태로 양자역학을 포함하고, 또 양자역학은 그 근사적 형태로 뉴턴역학을 포함한다. 근본 이론에 뿌리를 연결하지 못한 이론을 물리학에서는 현상론이라고 하고, 보다 미완성의 이론으로 취급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양자장론은 현재 물리학의 가장 근본 원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