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변화 탐구위해 철학은 매번 새로운 의미로 존재
끊임없는 변화 탐구위해 철학은 매번 새로운 의미로 존재
  • 이홍재 기자
  • 승인 2006.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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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CTP 제2회 ‘과학커뮤니케이션 포럼’ / 박이문 교수 초청 ‘21세기 과학의 도전-철학의 응전’ 주제로
- 대학생들이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며, 이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앎’ 이라는 것은 그것이 지니는 효과를 떠나서 그 자체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학문을 하는 사람의 삶에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세 가지의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 그것은 투명성과 신뢰성과 열정이다. 그 중 철학을 한다는 것은 열정에 관계된 것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과 주위 사물에 대해 성찰하고, 그것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는 과정이다. 한 번뿐이지만 귀중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보람있는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태도이며, 그러한 삶의 태도를 추구하는데 열정을 쏟는 것이 좋지 않은가.
- 현재의 과학은 서양의 인식체계에서 증명되고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동양적인 과학에서 서양을 능가할 만한 대표적인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
과학에 있어 동양적이거나 서양적인 것은 없다.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과학의 언어이며, 과학은 학문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동양과 서양의 과학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소 다르더라도, 그것이 본질적으로 과학이라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단 동양에도 많은 사상과 명상적인 지혜가 존재하지만, 국제적인 틀에서 볼 때 세계를 움직이고 바꾸는 일은 서양과학의 이론적인 틀에서만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 철학의 설명 방식이 가지는 한계가 사실은 언어라는 ‘도구’의 한계 때문은 아닌가
최종적인 결론을 내릴 때에 있어서 비단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에서도 일반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이 미세한 것이거나 반대로 거시적인 것일수록 그 언어의 사용은 더욱 세밀해지고, 그 의미는 단일화될 것이다. 그것은 기계가 정교해질수록 그 구조가 더욱 세밀해지는 것과 같다. 이 점은 철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 그렇다면 언어 사용을 정확히 하는 것을 통해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언어 사용에서 무언가를 주장할 때 받아들이는 쪽의 추리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될 수 있고, 거기에서부터 오류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언어 사용에서 의미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 학문이 갈수록 실용화되는 상황에서, 철학은 수학과 마찬가지로 위기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철학자라는 존재는 계속해서 남아있을 수 있을 것인가. 철학도들은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은가
철학과가 없어진다고 철학이 없어질 수는 없다. 학문들이 혼란에 빠져 뒤죽박죽이 된 위기 상황에서 그 혼란상태를 조율할 수 있는 학문이 철학이고, 그 과정 자체가 곧 철학이다. 철학을 하는 사람이 직업적인 철학자이든 일반인들이든 철학은 없어지지 않는다. 경험적인 진리는 절대적인 진리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학이 없이는 논리적인 진리에 대해 탐구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철학은 항상 필요한 학문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현재의 철학계에서 말할 수 있는 뚜렷한 성과가 있는가
98년에 보스턴 세계 철학가 대회가 있었다. 세계적인 철학가들이 모인 행사였지만, 행사가 끝난 뒤 리포터가 비슷한 질문을 던졌을 때 누구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철학이 현재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하여 대답하기란 상당히 힘든 일이다.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끝없이 탐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입증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철학이 현 상태에서 이렇다 할 진전도 없고, 사람들에게 어떤 사실 같은 것을 전파하는 것에도 실패한 지금 그 의미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계속해서 지적인 탐구를 해나가며 얻을 수 있는 희열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철학이라는 것은 일관성있게 엮어진 경험을 분석하여 나온 지식으로, 여러가지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탐구하기 위해 철학은 매번 새로운 의미를 가지며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박이문 교수 약력>
▲1930년 출생. 서울대 불문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취득. ▲프랑스 소르본대 불문학 박사, 미국 남가주대 철학박사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 시몬스대 철학과 교수, 마인츠 대 객원교수, POSTECH 인문사회학부 교수 역임 ▲2006년 현재 시몬스대 명예교수, 연세대 특별초빙교수
<주요저서>
▲자연, 인간, 언어 ▲현상학과 분석철학 ▲노장사상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 ▲과학의 도전 철학의 응전 ▲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 ▲나비의 꿈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 ▲울림의 공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