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자가속기] 전자대신 양성자 가속시키는 장치
[양성자가속기] 전자대신 양성자 가속시키는 장치
  • 정현철 기자
  • 승인 2006.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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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가속기란 전자기장을 이용해 하전입자를 가속시키는 장치로, 전자와 같이 가벼운 입자를 가속시키는 렙톤 가속기와 양성자, 헬륨 원자핵 등 무거운 입자를 가속시키는 하드론 가속기가 있으나 그 가속 원리는 기본적으로 모두 같다.
입자를 가속시키는 방식은 전기장의 형태에 따라서 DC 방식과 전기장이 사인파 형태로 시간에 따라 변하는 고주파(주파수가 수 MHz 이상)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고전압 터미널에 전하를 축적하여 전압을 높이는 DC 방법은 ENERGY=qEd 공식에 따라 길이 d인 통로에 전기장 E가 걸렸을 때 전하량 q의 입자가 qEd만큼의 에너지를 갖게 되는 것을 기본 원리로 한다. 이 방식은 교류 전류를 이용하는 방식에 비해 간단하게 입자를 가속시킬 수 있으나, 고전압 터미널에서 발생하는 대기의 절연파괴(breakdown) 현상 때문에 전압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 전기절연성이 좋은 SF6와 같은 물질을 이용해 전압이 수 MV 까지 도달한 가속기도 있으나, 고전압 터미널의 전압이 입자의 에너지와 같기 때문에 DC형 가속기로 입자를 수 MeV 이상으로 가속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고주파 가속기는 교류 전자기장을 특별히 설계된 구조물에 가두어 이를 이용해 입자에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 방식으로 입자를 가속시키는 포항방사광가속기의 선형가속기는 길이가 150m에 불과한데도 전자를 2.5 GeV까지 가속시킬 수 있다. 이처럼 선형가속기에서 매우 짧은 길이로도 입자를 높은 에너지로 가속시킬 수 있는 원인은 마이크로웨이브에 있다(마이크로웨이브는 고주파의 한 부분으로 주파수가 1-수십 GHz 임). 통신에 사용되는 마이크로웨이브는 대기 중에 방사되므로 에너지를 크게 높일 수 없지만, 도체관 안에 가두면 수 MW에서 수십 MW로 높일 수 있다. 마이크로웨이브를 가두는 금속도체관은 전자를 가속시키기에 적당하게, 즉 에너지를 전달하기에 적당하게 특별한 구조로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고주파 공동(RF cavity)이다. 원통형인 고주파 공동 내부에서 마이크로웨이브는 진행하거나(travelling wave cavity), 진행하지 않고 가두어진 상태(standing wave cavity)로 공진되는데, 고주파는 시간에 따라 전압의 부호가 바뀌므로 하전된 입자가 가속되는 순간과 감속되는 순간이 한 주기에 한 번 씩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마이크로웨이브의 전기장 성분이 전자의 진행방향과 평행하도록 놓은 후 가속되는 순간에 하전입자가 놓이게 하고 감속되는 순간은 적절히 피해간다면, 입자를 높은 에너지로 가속시킬 수 있다.
고주파 공동을 일렬로 늘어놓은 선형가속기 외에 원형 가속기의 하나로 싱크로트론 가속기가 있다. 전하량 q의 입자가 속도 v로 전기장 E와 자기장 B를 통과할 때 받는 힘 F사이에는 F=q(E+v×B)인 관계가 성립한다. 이 식에서 볼 수 있듯이 입자는 전기장에 의해서만 가속될 수 있으며, 자기장은 입자의 방향을 바꾸는 역할만 한다. 싱크로트론 가속기는 원형 가속관에 고주파 공동과 전자석을 늘어놓아 입자를 가속시킨다. 자장의 세기와 고주파 공동 내의 교류전류의 위상을 적절히 조절하면 입자의 속력과 에너지는 가속관을 돌면서 점점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싱크로트론 가속기는 적은 비용으로 고에너지의 입자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나, 자장의 세기가 변함으로 인해 높은 전류를 저장할 수 없는 단점을 지닌다.
이러한 입자가속기의 발명은 전자, 뮤온, 타우입자, 쿼크 등 새로운 입자의 발견을 가능케 했다. 가속기와 관련한 연구는 초반에는 소립자 연구에 초점이 맞추어졌으나, 입자의 에너지가 증가할 때 발생하는 방사광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현재는 방사광가속기와 관련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모든 하전입자는 가속됨에 따라 전자기파, 즉 방사광을 방출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총량은 하전입자의 시간당 운동량의 변화량(dp/dt)이 클수록 크다. 선형가속기에서는 전자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운동하므로 그 운동량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라 p=γmv(γ:감마인자)의 값을 갖는다. 이때 속도가 광속에 근접하면 질량이 급격히 증가하므로 입자의 에너지는 커지지만, 속력은 거의 증가하지 않아 속력 변화로 인한 전자기파의 발생량은 매우 작다. 그러나 전자가 자기장에 의해 진행 방향이 바뀌는 경우, γ는 변하지 않지만 벡터량인 속도 v가 급격히 변하게 되고 이는 곧 커다란 운동량 변화로 이어져 전자기파가 발생한다. 포항방사광가속기에서 선형가속기와 연결되어 있는 저장링(storage ring)은 이러한 방사광을 얻기 위해 가속된 전자를 저장하는 장치이다. 선형가속기에서 가속된 전자가 36개의 2극 전자석이 설치되어 있는 저장링에 들어가면 원형 궤도를 계속 돌며 방사광을 방출한다. 이 때 방출되는 빛은 우리가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낮은 에너지의 가시광선에서 높은 에너지 영역인 엑스선까지 에너지 폭이 매우 넓다. 전자가 갖고 있는 운동에너지가 클수록 에너지가 높은 빛이 많이 발생하고 그 밝기도 크게 되는데, 경엑스선의 방사광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전자의 운동에너지가 수십 억 전자볼트는 되어야 하므로 ‘빛 공장’으로서의 방사광가속기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양성자가속기는 전자가 아닌 양성자를 가속시키는 장치이다. 현재 경주에 건설 예정인 양성자가속기는 포항방사광가속기와 같이 고주파 가속장치를 이용한 선형가속기 형태이며 100MeV, 20mA 규모이다. 100MeV의 에너지는 기존의 가속기들에 비하면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빔 전류가 20mA인 것은 선진국들이 198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야 10mA급을 개발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전자질량의 약 1800배에 달하는 양성자는 무거운 만큼 1GeV로 가속되어도 속도는 광속의 0.87배에 불과하다. 때문에 느린 양성자 빔을 이용하여 방사광을 얻는 것은 기대할 수 없으나, 질량이 크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물질의 분자나 원자를 낱개로 떼어 내거나 원자핵과 반응시켜 신물질을 생성할 수 있다.

<참고자료: 초전도와 저온공학 8권 1호, ‘가속기의 현황과 전망’ 강흥식 - 포항가속기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