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와 언론] 과학에 대한 시각 차이와 오해가 불러온 한 편의 희극
[황우석 교수와 언론] 과학에 대한 시각 차이와 오해가 불러온 한 편의 희극
  • 황희성 기자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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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대한 논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황 교수의 논문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던 제럴드 새튼 피츠버그대 교수의 결별 선언으로 시작된 사태는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 의 1차 보도와 그 후 취재윤리 불이행 파문 등으로 현재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새튼 교수가 문제로 제기한 연구원의 난자 제공 등은 관계자들의 시인으로 사실로 밝혀졌고, 사태는 점점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 PD수첩 측에서는 급기야 줄기세포의 진위를 검증하겠다는 선언 이후 취재 과정에서의 윤리문제가 불거져 조금씩 봉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난자의 거래 행위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보수로 지급된 돈이 난자의 제공에 대한 대금인지, 아니면 난자의 제공으로 인해 상실된 건강과 시간 등의 개인적 이익에 대한 반대급부인지는 명확하지 않아 어떤 입장에서든 답을 내리기는 힘들다. 또 사진 조작설 등 연구 결과나 논문의 진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혹이 나타나고 있어 일반인들의 궁금증은 더하다.

그러나 연구원의 난자 제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현재 논의되고 있는 쟁점들이 왜 나타났는지는 굳이 ‘헬싱키선언’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여러가지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연구실 내에서의 권력관계에 대해 국내의 시각과 해외의 시각차가 크다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연구실에서는 보통 대학원생(혹은 연구자)과 지도교수의 관계가 계약으로 규정지어져 있다. 즉 이들의 관계가 연구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피고용인과 그에 따른 보수(주로 학위)를 제공하는 고용인 사이의 관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연구원의 난자 제공을 바라보게 되면 황 교수나 그의 동료들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와 계약관계에 있는 연구원이 실험재료를 제공했다는 점은 실험실 내의 권력관계에 의한 ‘비의도적인 강압’으로 비쳐질 수 있다.

<사이언스>나 새튼 교수의 비판은 이러한 ‘관행’이라면 관행일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 황 교수팀이 소홀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황 교수가 과실과 허언을 했다는 비판과 그에 따른 황 교수의 시인 과정은 원활하지는 않지만 형식적인 절차가 이뤄져 더 이상 말할 여지는 없다. 오히려 순수 국내에서 출발한 연구가 세계로 진출했을 때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문제는 이 사건을 보는 언론의 시각이다.

우리대학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 실시한 ‘황우석 연구팀 ‘난자 채취’ 윤리논란’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최근 쟁점 중 하나로 부상한 헬싱키선언에 대해 ‘내용에 대해 들은 적 없다’가 46%, ‘잘 모른다’가 39%로 대다수의 바이오 분야 연구자들이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윤리적 규정이라는 것이 대상 집단의 공통적 인식이나 약속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상황은 한국 과학계의 윤리 교육이 부실하다는 면을 드러내는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한국 과학계의 공통적 인식이나 약속이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서 헬싱키선언의 무조건적인 신봉도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윤리적 논의는 제쳐두고 황 교수의 헬싱키원칙 위반만을 문제삼고 있는 것은 우스운 일인지도 모른다. 상황을 발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번 사태에 대한 윤리적 기반 설정에 윤리학자나 현장 연구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이와는 반대로 지금까지 황 교수가 거둬온 성과에 대한 과도한 ‘띄워주기’ 때문인지, 혹은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고른 결과인지는 몰라도 냉정하지 못한, 논점과는 상관없는 기사나 온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기사들로 점철된 신문들도 있다. 이들은 생명과학분야의 지식을 얻기 힘든 일반인들을 열렬한 황우석 지지자로 만들고 있다. 일군(一群)의 황우석 ‘맹신자’들이 펼치고 있는 모습은 어찌 보면 한편의 희극이다.

BRIC의 설문 결과 중 ‘이번 문제로 인하여 우리나라 생명과학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62%의 연구자들이 ‘국제적으로 한국 생명과학에 대한 신뢰도가 실추될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보통 한 연구자의 성과는 국가의 문제이기 이전에 개인의 명예와 직결되는 것이 보통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연구자들이 이 같은 우려를 하는 이유는 황 교수 연구의 진위 논란이 학계에 미치는 영향 때문일 수도 있고, 신뢰하기는 힘들지만 일부 언론 보도대로 외국 기관들이 한국의 과학적 성과에 대해 질투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황 교수를 ‘국가대표선수’로 치켜 올린 언론의 탓이 아닐까. 상상하기 싫지만 황 교수에게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우리는 두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황 교수 개인의 실패가 BRIC의 설문 응답자들 다수의 예상대로 한국 생명과학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이다. 이 때는 황 교수를 한국 과학계를 대표하는 얼굴로 만든 언론들도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못한다. 반대로 사태의 결말이 황 교수 개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정도로 그치더라도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해 지나친 호들갑을 떤 언론은 본분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30일 과학기자협회에서는 ‘과학보도 윤리선언’을 채택했다. 여기에 포함된 ‘과학보도에 임하는 기본자세’라는 글은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언론이 과학보도를 다루는 자세가 개선되어 가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 일곱 번째 항을 소개하고자 한다.

“과학적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 ‘세계 최초’ 또는 ‘국내 최초’라는 표현을 삼가고 그것이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할 것인지를 고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