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영웅’ 만들기를 경계한다
‘과학영웅’ 만들기를 경계한다
  • 황정은 / 생명 02
  • 승인 200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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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과학의 참모습에 관심 가져야
지난 19일,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가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를 복제하여 배아 줄기세포를 얻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사이언스가 학술지에 게재하기 전 긴급한 사항을 발표하는 웹사이트인 ‘사이언스 익스프레스(Science Express)’에 소개되면서 온 나라가 열광으로 들끓었다. 지난해 3월 ‘황우석 쾌거’ 때처럼 이번에도 엠바고(보도 자제요청) 파기 사건으로 얼룩지기는 했지만, 작년의 언론 보도에 비판의 목소리도 미약하나마 함께 나왔던 것에 비하면 이번에는 극찬 일색이다. ‘신(神)의 손’, ‘단군 이래 최고 과학자’ 등의 찬사가 쏟아지면서 정부에서는 ‘원하는 대로 지원’해준다며 반색하고 나섰고, 이해찬 국무총리는 기자단 만찬에서 황 교수와의 개인적 친분을 과시했다. 이에 질세라 한나라당에서도 황 교수에게 노벨상을 안겨주겠다며 당내에 ‘과학기술지원특위’를 구성한단다. 이런 가운데 각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황 교수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그 어느 때보다도 대담하게 점치고 있다.

이렇게 대단하다는 황 교수 논문의 실체는 뭘까? 간단히 말하면 체세포 복제를 통해 배아 줄기세포를 얻는 데 있어서 비약적인 기술적 진보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나이, 성별, 질환을 가진 11명의 환자로부터 얻은 체세포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고 그 효율도 작년에 비해 10배 정도 향상시켰다는 것이 그 요지다. 이것은 엄청난 기술적 진보다. 20년이 걸려도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던 기술적 난관들이 일거에 돌파된 통쾌한 사건임에 분명하다.

가장 중요한 기술적 진보는 효율성 향상이었다. 그리고 효율성 향상을 불러 온 핵심적 요소는 손기술과 성실성, 이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래서 언론사마다 앞 다투어 ‘쇠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민족(韓民族)의 우수성’이니 ‘월화수목금금금의 성실성’을 찬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기술적 진보가 있었을 뿐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새로운 가설은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많은 언론들이 ‘획기적인 과학적 도약’이라고 칭하지만 황 교수팀은 배아줄기세포 만들기 기능올림픽에서 또 하나의 금메달을 거머쥔 것이지 엄밀하게 말하면 과학적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황교수의 논문이 과학적으로 ‘새롭게’ 밝혀주는 바는 체세포핵치환기술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을 검증한 것뿐이다(이러한 발견이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가능했던 여러 정치적, 문화적 요인이 존재함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이로부터 뒤따라나오는 면역거부반응의 해결은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이므로 새로운 발견은 아니다. 황 교수가 성공한 그 방법으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서 난치병 치료, 신약 개발 등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일반생명과학 강좌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황 교수의 논문이 새로이 밝혀주는 바는 없다. 사이언스등 소위 ‘저명한 해외 저널’은 원칙적으로는 이런 논문은 받지 않는다. 하지만 줄기세포 분야에 워낙 많은 연구자들이 사활을 걸고 있고 복제기술의 진보가 정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황 교수의 논문이 사이언스에 실리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생명과학의 본질은 OEM식(주문자 상표부착식) 신발 생산 방식과는 거리가 먼데도 한 줄기세포 전문가는 이렇게 코멘트했다. “줄기세포 등 생명공학은 천재적 발상이나 거대한 시설보다 손기술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손이 섬세한 한국인은 생명공학에 가장 유리한 민족”이라고.(마리아병원 박세필 박사, 5월 21일 중앙일보) 그래서 서울시 서초구청은 “손재주는 국력”이라며 ‘젓가락 왕 선발대회’를 열었던가보다.

무조건 애국심에 호소하며 열심히 하자고 다그치는 모습, 창의력을 요구하는 사이언스보다는 성실성과 테크닉을 중시하는 태도, 그리고 이런 가치들을 국민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언론의 행태는 북한의 ‘천리마 운동’, ‘천 삽 뜨기 운동’과 어쩌면 그렇게 닮은꼴일까. 개인의 창의성을 무시하고 자본 투입을 무시한 이 운동들은 결국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황 교수는 훌륭한 업적을 일궈낸 사람이고 그의 노력과 애국심은 감동적이다. 하지만 모든 과학자, 과학도들에게 그의 방식을 본받으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 것이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이미지에 -상대성 이론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아인슈타인을 투영시키는 언론과 이번 사태를 거의 광신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사이에서 도대체 어떤 ‘과학’을 보고 있는 것일까. 언론은 과학의 참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일까. 우리는 과학에 대해 유행 이상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 언론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위 글은 김우재(생명 박사과정)님 글( http://goodking.new21.net/bbs/rgboard/view.php?&bbs_id=0002&doc_num=400)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