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효소활성 억제 통한 새치료제 개발 기대
최근 효소활성 억제 통한 새치료제 개발 기대
  • 조성찬 / 생명 박사 후 연구원
  • 승인 2005.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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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손씻는 것 가장 좋은 예방 방법… 독감 예방주사도 효과
현대인들은 바이러스하면 본래의 의학적 의미보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먼저 떠올릴 정도로 인터넷시대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본래 의미의 바이러스가 훨씬 오래 전부터 우리 인류와 함께 했고 지금 우리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면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물임에 틀림없다. 이집트의 미라에서 천연두의 흔적이 발견되고 로마제국과 잉카문명의 멸망이 천연두와 홍역에 의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1919년 겨울에만 스페인 독감으로 무려 20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런 바이러스의 존재가 밝혀진 것은 고작 100여 년 전의 일이고, 전자현미경이 개발된 후에야 그 실체가 확인되었는데 이는 바이러스가 박테리아보다 훨씬 작은 구조체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생물체에 감염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자체적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숙주세포 내에서만 증식이 가능하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감기, 독감, 소아마비, 홍역, 볼거리, 에이즈, 사스, 일본뇌염 등이 대표적인 바이러스에 의한 질환이고 우리나라에 특별히 많은 질환인 간염 중 상당부분이 HBV나 HCV 등에 의해서 발병한다. 이중 감기와 독감을 통해 바이러스와 질병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감기 - 라이노바이러스가 대표적

역사 이래로 인류를 가장 많이 괴롭혀 왔던 질병 중 하나가 감기인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겨울철이나 환절기에 이 질병으로 약 2주정도씩 고생을 한다. 영어로는 ‘보편적’이라는 뜻을 가진 ‘common cold’라고 부를 만큼 흔한 질병이다. 하지만 이런 감기가 추위가 아닌 바이러스에 의해서 발병한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종류는 100여종 이상이고 크게 보면 8가지 정도로 분류되는데 라이노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RSV, 파라인플루엔자, 아데노바이러스, 엔테로바이러스, 허피스바이러스 등이 이에 속한다. 이중 라이노바이러스는 성인 감기의 30-50%를 유발하는 대표적 감기유발 바이러스이다.

라이노바이러스의 ‘라이노’는 라틴어로 ‘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바이러스가 코의 점막세포에 감염해서 증식하고 결국 코감기를 일으키는데서 기인했다. 라이노바이러스는 바이러스 중에서도 가장 작은 부류에 속하는데 약 20나노미터의 직경을 가진다. 이는 5만개의 라이노바이러스를 일렬로 나열해도 고작 1밀리미터밖에 되지 않는 작은 크기이다. 이 작은 바이러스는 정 20면체의 단백질 외피구조 안에 RNA형태의 유전물질을 담고 있는데 외피구조로 만들어지는 특이적인 ‘canyon’구조와 특정 숙주세포막 단백질과의 결합을 통해서 숙주세포 안으로 침입하게 된다. 숙주세포 안으로 침입한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물질을 세포질에 방출하게 되고 숙주세포의 다양한 도구들을 도용해서 복제를 한다. 복제된 유전물질은 다시 바이러스의 형태를 갖춰서 세포 밖으로 방출되고 주변의 다른 세포들로 전염 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숙주의 면역체계에 의해서 감지되는데 이때 여러 가지 면역반응들의 결과로 다양한 감기증상들 (코흘림, 코막힘, 재체기, 기침, 고열, 두통, 식욕감퇴)이 나타나게 된다.

감기는 대부분 호흡기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데 환자가 기침이나 재체기를 할 때 형성되는 대기 중 수포 안에 있는 바이러스가 흡입자에 감염된다. 최근에는 호흡기 감염경로 외에 손을 통한 병원균 감염이 밝혀졌는데 감기바이러스가 환자를 통해 주변 물건들에 산재하다가 이를 무심코 접촉한 사람들에 감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감기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수시로 손을 씻는 것이다. 감기는 자체적으로는 그다지 인간을 위협하는 질병이 아니다. 길어야 2주정도 코막힘, 열, 기침, 재체기 등 비교적 약한 증상들을 앓고 나면 우리 인체의 면역체계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치유된다.


뛰어난 변신능력 가진 독감바이러스

흔히 감기 중에서 그 증상이 심한 경우를 독감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와는 전혀 별개의 인플루엔자라는 바이러스에 의해서 발생한다. 주로 겨울철(11월-3월)에 집중적으로 활동하며 전파력이 강한 것이 특징이고 감기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 외에 고열, 두통, 근육통을 동반한다. 독감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는 인플루엔자 A형, B형, C형 등 3가지가 있으며 직경은 약 100나노미터 내외이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지질외피 구조체 안에 8개의 절단된 RNA형태의 유전물질을 가지고 있는 형태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 역시 라이노바이러스처럼 외피단백질과 숙주세포의 표면단백질 간의 결합을 통해서 감염된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뛰어난 변신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매년 지속적인 유행을 초래하는데 이는 바이러스의 외피 단백질인 haemagglutinin(HA)이나 neuraminidase(NA) 항원의 크고 작은 변이로 가능하다. 인플루엔자의 변이는 매년 또는 몇 년마다 조금씩 변하는 소변이(antigenic drift)와 10-15년마다 크게 바뀌는 대변이(antigenic shift)가 있다.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스페인 독감(1918년), 아시아독감(1957년), 홍콩독감(1968년) 등이 전 세계적인 대유행(pandemic)을 일으킨 대표적인 변종바이러스이고, 특히 스페인 독감의 경우는 세계 1차대전 중 발병하여 군인들을 포함한 약 2100만의 인명을 살상한 역사상 가장 독한 전염병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한 바이러스로부터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현재 몇 종의 약이 독감치료를 목적으로 사용 중인데, 우선 1964년 미국에서 개발된 ‘아만타딘’은 A형 인플루엔자 감염에 효과가 있는 약으로 1966년 정식으로 FDA 승인을 받아 지금까지 치료제로서 또는 예방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만타딘이 독감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기전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바이러스가 세포로 들어가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바이러스의 복제를 막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좀 더 정확한 작용기전이 밝혀진 치료제로는 영국의 글락소 웰컴사가 개발한 ‘Relenza’와 호프만 라 로슈에서 개발한 ‘Tamiflu’가 있는데 이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감염된 세포로부터 빠져나오는데 필요한 neuraminidase(NA) 의 효소기능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결과적으로 바이러스가 다른 세포로 감염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는다. 이중 리렌자는 구강으로 흡입하는 약품으로 1999년 겨울 미국 전역에 유행한 ‘시드니 A형’ 독감치료제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외에도 최근에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에서 ‘라프 카이네이즈’ (Raf Kinase)라는 효소의 활성을 억제함으로써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돼 새로운 감기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이 기대되고 있다.

이런 여러 종의 치료제 외에도 미연에 바이러스의 감염을 막기 위해서 백신을 접종하는 방법이 있다. 매년 WHO (World Health Organization)에서 그 해에 유행할 가능성이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hemagglutinin(HA)의 type을 조사해서 그에 해당하는 재조합된 단백질을 백신으로 이용하는 게 보편적이다.


세계적으로 감기 치료제 개발 활발

인간에게 가장 흔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대로 된 감기 치료제는 없는데, 이는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종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감기에 처방하는 약들은 감기유발 바이러스 자체를 표적으로 하기보다는 감기에 동반되는 여러 증상들을 완화하고 박테리아 등의 이차감염 등을 막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바이러스질환의 치료제나 백신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들 바이러스가 어떤 방식으로 숙주세포에 침투해서 증식하고 주변세포로 재감염 하는지에 대한 분자적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감기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위해서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에 있고 일부 기업체에서 감기 기간을 단축하고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을 개발해서 테스트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바이러스 연구는 주로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특히 한국인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간염을 유발하는 B형과 C형 간염 바이러스, 그리고 HIV 등에 대한 경쟁력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본교 생명과학과에서도 바이러스연구가 진행 중인데 성영철 교수 실험실에서 에이즈백신 분야에서 두드러진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있고, 장승기 교수 실험실에서도 C형 간염 바이러스의 치료제개발을 위해서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머지않아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전 인류를 바이러스로부터 구원할 바이러스 치료제나 백신이 한국인의 노력으로 탄생되길 기대한다.

인간을 위협하는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한 바이러스 퇴치를 향한 생명과학자들의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되고, 결국 끊임없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