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도구와 과학의 객관성
실험도구와 과학의 객관성
  • 이상원 / 포항공대 과학문화연구센터 책임연구원
  • 승인 200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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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은 근대과학의 가장 큰 특징···과학적 방법의 전형으로 정착
▲ 도마뱀의 간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를 간섭현미경을 통해 찍은 사진. 이 현미경은 물체가 빛을 지연시키는 현상을 이용하여 광파장에 대한 간섭현상으로 투명한 표본에서도 그 구조가 뚜렷이 나타나게하는 원리를 이용해물체의 미세구조나 요철의 변화, 위상변화 등을 나타나게 하는 현미경이다.
현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이라는 말을 안다. 또한 과학이라는 말을 이해하는 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실험이라는 말도 안다. 그만큼 실험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따라서 과학하면 실험을 떠올리게 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런 연상반응이라 할만하다.

실험은 근대과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근대과학이라고 할 때 보통은 뉴튼과학 이후의 과학을 말한다. 약간 더 넓게 근대과학을 정의한다면 르네상스 이후의 과학을 일컫는다. 이런 후자의 정의 속에서 우리는 데카르트,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등을 근대과학자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연구성과는 모두 뉴튼의 과학적 업적 안에서 종합되었기 때문이다.

근대과학은 당시에 ‘실험적 철학’(experimental philosophy)이라는 말로 불렸다. 근대의 과학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실험을 과학적 방법의 표본으로 삼았다. 베이컨은 관찰, 그리고 특히 실험을 강조한 대표적인 근대인이다. 근대과학의 관점에 선 이가 볼 때, 실험은 과학의 핵심적 요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근대이전에는 상황이 이와 극단적으로 달랐다. 중세이전의 과학에서 실험은 전혀 과학적 방법으로 취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고중세의 자연철학자(과학자)들이 실험을 과학활동에 채용하지 않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정치적인 이유이다. 서양 고대는 귀족-노예의 계급구조, 중세는 성직자-귀족-농노라는 계급구조에 기초해 있는 사회였다. 지배계급인 귀족과 성직자는 주로 정신적 작업에 종사했다. 자연철학자들은 물론 지배계급에 속해 있었다. 반면 종속계급인 노예, 농노는 고된 육체노동을 피할 길이 없었다. 피지배계급의 이미지는 손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손은 노동을 표상했고 또한 하층민을 표상했다. 실험은 조작이다. 조작은 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어떠한 자연의 대상에 조작을 가하려면 손을 쓰거나 손에 더하여 도구를 써야 한다. 그래서 당시의 자연철학자들은 실험을 무시했던 것이다. 손을 쓰는 작업은 하층민이나 하는 일이라고 여겼던 고중세 지배계급에 속한 당시의 자연철학자들이 실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점은 당시의 정치적 맥락에서 볼 때는 아주 자연스러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자연철학은 주로 ‘사변’에 의지했다. 순수한 정신적 작업을 통해 그들은 자연의 본성과 질서를 파헤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한 정신적 태도는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로부터 유래되어 중세 내내 유지되었다.

두 번째는 인식론적인 이유이다. ‘인공적 도구’를 써서 자연의 조작을 가할 경우 자연의 진상을 왜곡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자연에 조작을 가한다면, 그 경우 자연의 실제 모습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의 본래 질서를 발견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 역시 당시의 맥락에서는 나름의 이유가 된다. 이 두 번째 이유는 오늘날의 과학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의미가 전혀 없는 인식적 태도는 아니다.

우리는 실험이 과학에 채용되어 과학적 방법이 된 것은 기본적으로 근대이후의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중요한 사항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별다른 의심없이 실험을 과학적 방법의 전형적인 모형으로 여기는데, 이는 일견 당연한 듯 보이는 착각임과 동시에 현재 상태에 지나친 강조점을 두고 과학을 이해하는 관점이다.

이러한 태도를 예를 들어 우리가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통신을 하는 일은 단지 최근의 현대적 생활양식일 뿐이며 그것이 오랜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생활양식은 아니라는 사실과 비유해 볼 수 있다. 현재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이나 행동방식이 과거에도 똑같이 그랬다고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오랜 과거인 고중세에도 전기를 이용한 생활기기를 쓰는 생활양식이 존재했다고 생각하는 이는 사람들로부터 순진하다고 비난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험이 근대이전의 과거에는 과학적 방법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모른다고 해서 바보라는 비난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에도 실험을 했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과학적 방법으로서의 실험의 신화는 강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쓰는 많은 개념은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그리고 개념의 쓰임은 많은 다양함을 지니며 때로 혼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과학의 개념도 많은 경우 그러한 과정을 거친다고 할 수 있다. 관찰이라는 개념이 그러하다. 전통적으로 관찰은 ‘직접적으로’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지각정보를 말한다. 고중세의 과학은 직접적 관찰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예를 들어 고대에 발달한 천문학은 이러한 관찰적 세계와 밀접히 관련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근대이후 과학, 특히 현대과학 활동에는 대부분의 경우 각종의 도구가 도입되어 필수적으로 쓰인다. 그에 따라 관찰의 의미도 확대되었다.

망원경을 쓰는 관찰도 이제는 관찰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현미경이나 망원경은 자연철학 연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대상으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미경과 망원경은 근대과학의 출현과 안정에 큰 기여를 했다. 실험적 의미의 관찰이 직접적 관찰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개념이 되었다.

실험적 조작은 과학철학자 해킹(Ian Hacking)이 말하는 ‘현상의 창조’(creation of phenomena)와 관련이 깊다. 기본적으로 실험은 자연계에 순수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 과정 등등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전자, 양성자, 중성자와 같은 기본입자의 충돌이 도구의 개입 없이 자연에 존재하더라도 오랜 시간 간격을 두고 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만 나타나거나 실험자가 작업하는 곳에서 너무나 먼 우주 공간에 존재한다면, 과학자의 이론적 작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실험도구는 이런 장애를 극복하게 해준다.

뢴트겐은 1895년 이상한 선(ray)을 발견했다. 그것은 뢴트겐선 혹은 X선으로 알려지게 된 선이다. 뢴트겐선은 그 이후의 원자 이하의 세계를 다루는 과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우주에 임의롭게 발생하는 X선을 모아 인간의 신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X선 발생 도구로 우리는 육신의 내부를 관찰할 수 있다.

실험에 의한 현상의 창조는 이러한 자연의 제약을 넘어서게 해줌으로써 자연탐구의 영역을 엄청나게 확대시켰다. 실험과학자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과정을 실험실 안에서 창조하여 자연의 본성에 접근하는 길을 연 것이다. 이것 모두가 가능하게 된 것은 실험도구의 도입과 그 도구에서 얻는 자료에 대한 인정이 있은 이후에 발생했다.

현대에도 일부 실험결과를 회의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과학철학자 반 프라센(Bas C. van Fraassen)은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목성의 위성과 같은 대상은 ‘원리적으로’ 인간이 직접 가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실재성을 인정할 여지가 있으나, 고배율의 현미경을 통해 보는 것을 육안으로 관찰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그 대상의 실재성을 믿어주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목성의 위성은 거기까지 갈 수 있는 우주선이 개발되면, 그 위성에 직접 가서 육안으로 볼 수가 있겠지만, 현미경으로 보이는 대상은 현미경이라는 매체를 통할 때만 보이는 것이고 육안으로는 영원히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의 실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는 직접적 관찰 이외의 경험 형태에 대해서는 확실성을 부여하지 않는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해킹은 현미경적 존재자가 실재함을 조작 혹은 개입을 통해 보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반 프라센을 적절히 공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광학 현미경과 전자 현미경을 정규적으로 세울 수 있고, 양자 모두에서 동일한 이미지를 얻게 되면 우리는 두 현미경이 보여주는 이미지의 실재성을 믿을 수 있다고 그는 본다.

광학 현미경과 전자 현미경은 서로 다른 장치이고 이들은 또한 다른 이론적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작동한다. 두 가지의 상이한 물리적 계가 존재하고 이 둘의 각각은 또한 상이한 이론적 원리를 근거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때 이러한 장치적인 그리고 이론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상에 대한 현미경적 이미지가 두 장치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면, 그 두 가지의 이미지를 도구가 만들어낸 인공물로서 보다는 실재적인 것으로서 파악한다는 것이다.

실험적 작업에 대한 고중세에 있었던 반대처럼 오늘날에도 일부 회의주의자들은 실험결과의 객관성을 의심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험도구는 신뢰할 만한 경험의 영역을 창출해내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고중세의 실험에 대한 반대나 현대 회의주의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과학의 객관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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