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탐구] 진화심리학이란 무엇인가?
[집중탐구] 진화심리학이란 무엇인가?
  • 장대익 / KAIST 강사 · 과학철학
  • 승인 2004.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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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은 수렵·채집환경에 적응된 정신기관이다”
▲ 진화심리학자들은 마음을 스위스제 군용칼에 비유한다.
“심리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세워질 것이다.” 이런 뜬금없는 예언을 한 사람은 프로이트도 스키너도 아니었다. 진화생물학의 아버지 다윈(C. Darwin). <종의 기원> 한 귀퉁이를 비장하게 장식했던 이 예언이 거의 백년을 잠자고 있을 때, 하버드 대학의 윌슨(E. O. Wilson) 교수는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1975)을 통해 스승의 예언을 재차 상기시켰다. “사회과학은 가까운 미래에 생물학의 한 분과가 될 것”이라는 호언장담과 함께. 하지만 심리학 분야에서 다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고 그 “새로운 토대”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때는 ‘진화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등장한 90년대 이후부터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mind)에 대한 계산주의 이론(현대 계산 이론의 아버지인 논리학자 튜링에게서 시작됐으며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 혹은 두뇌의 소프트웨어로 이해한다.)과 주류 현대 진화론이 결합돼 나온 잡종 학문이다. 여기서 주류 현대 진화론이란 다윈의 자연 선택론을 중심으로 하여 1920~30년대에 형성된 이른바 ‘근대적 종합’(the Modern Synthesis)을 계승·발전시킨 것으로서 자연 선택의 단위를 유전자로 규정하는 ‘유전자 선택론’(gene selectionism)과 자연 선택의 힘을 강조하는 적응주의(adaptationism)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자연선택의 결과물인 정신기관 ‘마음’

이런 결합으로 탄생한 진화심리학의 기조는 “인간의 마음은, 오랜 수렵·채집기 동안 우리 조상들에게 끊임없이 부과됐던 적응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계산 기관들의 체계”라는 인지언어학자 핑커(S. Pinker)의 표현에 잘 나와있다. 진화심리학은 사회생물학을 계승한 이론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엄밀히 말해 이 둘은 서로 다른 연구 목표와 방법론을 가진다. 예컨대 진화심리학의 일차적인 초점은 특정 행동을 일으키는 심리기제를 향해 있는데 비해 사회생물학은 행동 자체에 우선적인 관심을 갖는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류가 오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유형의 적응 문제들(adaptive problems)에 직면했었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설계된 마음을 가진 개체만이 진화적으로 성공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 마음은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설계되지 않았고 오히려 특정한 몇 가지 ‘적응 문제’들 ― 예컨대, 적절한 음식 가리기, 좋은 짝 고르기, 상대방의 마음 읽기, 동맹 만들기 ―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 이는 마치 우리의 신체가 적응적인 여러 기관들(예컨대, 눈, 다리, 심장 등)로 구성되어 있듯이 인간의 마음도 하나의 보편적인 적응 기관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마음을 ‘정신기관’(mental organ)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설계돼 있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하는 인지신경학·인지심리학에 큰 도전을 던져줬다. 예컨대 진화심리학의 핵심 이론가인 코스미디스(L. Cosmides)와 투비(J. Tooby)는, 인지심리학에서 잘 알려진 ‘웨이슨의 선택과제’(Wason’s selection task) 실험을 재설계함으로써 인간의 연역 추론 능력의 실상에 대한 진화론적 해석을 꽤 그럴듯하게 제시했다. 실험 결과, 주어진 과제가 ‘사회적 교환’의 상황일 때 연역추론 능력이 가장 잘 발휘되었다. 자원이 희소한 수렵·채집기(인류 진화사의 99%이상을 차지하는 기간)에 사회적 교환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인류가 직면한 적응 문제는 무엇이었나? 그 문제는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라는 것이었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기꾼 탐지 모듈이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그들의 이론이다. 최근에는 사회적 교환에 관한 추론이 다른 추론들과는 다른 두뇌 영역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는 연구도 발표되었다.

마음의 모듈성 논란

원래 “인간의 마음이 모듈화 되어 있다”라는 주장은 저명한 심리철학자인 포더(J. Fodor)가 철학분야에서 처음으로 제기한 것이었다. 이때 ‘모듈’(module)이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 구성 인자들끼리는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지만 다른 모듈의 구성원들과는 아주 미약한 상호작용을 하는 그런 장치를 말한다. 그런데 정작 포더는 입력된 감각(언어,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을 처리하는 장치들은 각각 모듈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런 입력들을 처리하는 중앙처리장치는 모듈화 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진화심리학자들은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인류가 직면했던 적응 문제들은 일반적이기보다는 특수한 것들이었기에 중앙처리장치가 모듈에서 제외될 이유 또한 없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만일 마음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설계되었다면 ‘계산적 폭발’이 일어날 것이기에 마음은 구현조차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것들을 소화할 수 있는 일반 위장이 진화사에서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할 필요도 없듯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마음이 진화사에서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할 이유도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모듈성’(modularity)은 진화심리학의 핵심 개념이다.

이런 마음의 모듈성 논제는 언어학, 심리학, 철학, 생물학, 인류학, 컴퓨터과학 등이 총동원될 때 풀릴 수 있는 다학문적 주제이며, 흥미롭게도 이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현재 진행중이다. 포더와 같이 최소한의 모듈만을 인정하는 견해와 모듈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입장이 모두 존재한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자들이 그리는 인간의 마음은 여러 모듈들로 구성된 ‘스위스제 군용칼’이다. 스위스 군용칼에는 칼뿐만 아니라 병따개, 드라이버, 심지어 작은 톱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고유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독립된 도구들이 여럿 매달려 있다. 이런 구조적 특성 때문에 스위스 군용칼 비유는 인간의 마음이 준독립적인 여러 개의 모듈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진화심리학자들의 기본 주장을 잘 반영한다.

진화심리학에는 인간의 인지 능력에 대한 연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사회심리학의 연구 주제들에 대해서도 적응주의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그 중 짝짓기 행동, 성적 질투, 부모·자식 관계, 형제 관계, 이타적 행동 등에 대해서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이 중에서 질투에 성차이가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진화 사회심리학자 버스(D. Buss)에 의하면, 남성은 여성이 정절을 깨는 것에 대해 훨씬 더 큰 분노를 느끼는 반면 여성은 남성이 다른 여성에게 정서적 친밀감을 보이는 것에 대해 더 크게 분노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찰되는 이런 문화 보편적 현상은 인류 진화사에서 남성과 여성이 직면했던 적응 문제들이 같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남성은 자기 이성 짝이 낳은 자식이 정말로 자기 자식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늘 안고 살 수 밖에 없었으며, 여성은 자신의 이성 짝이 다른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겨 자원을 몽땅 그녀에게 갖다 바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고생했다. 버스는 질투의 성차이가 바로 이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진화 사회심리학(evolutionary social psychology)의 이런 연구 결과들은 때로 기존의 전통 이론들에 보완적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양립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남녀 짝짓기 행동에 대해서는 기존의 설명을 크게 보완해주지만, 부모 자식간 충돌에 관해서는 프로이트 이론과 정면 충돌하기도 한다. 한편 이타성의 진화에 관한 연구는 ‘진화윤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었을 정도이다.

이런 흥미로운 연구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국내는 아직 진화심리학 연구가 거의 전무하다. 그나마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최재천 교수를 중심으로 진화 사회심리학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정도이다. 최 교수팀은 그동안 질투의 성차와 현대의 가족 구조, 그리고 조선 시대의 살인 사건들에 대해 진화론적인 연구를 수행해왔다. 최근에 출판된 <살인의 진화심리학>(서울대 출판부)도 성과 중 하나이다. 과학철학자 라카토슈의 용법으로 표현하자면, 한국에서도 진화심리학이 ‘긍정적 연구프로그램’으로서 첫발을 뗀 셈이다.

“미래에는 ‘진화심리학’이라는 이름이 그냥 ‘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바뀔 것”이라는 코스미디스의 도발적인 예언이 적중할 수 있을지는 흥미있게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