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진단] 2004년 ‘쌀의 해’와 기능성 벼 연구 전망
[집중진단] 2004년 ‘쌀의 해’와 기능성 벼 연구 전망
  • 이신영 기자
  • 승인 2004.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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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유전체 연구를 통한 ‘기능성 벼’ 생산의 중요성
“Rice is life.” UN은 이와 같은 문구를 내걸고 각국 정부에 쌀 증산을 독려하고자 2004년을 ‘쌀의 해’로 정하였다. 실제로 쌀은 매년 60억 세계 인류가 섭취하는 칼로리의 21%를 공급하고 있고 10억의 인구를 먹여 살리는 세계 제 1의 에너지 공급원이다.

이처럼 이미 쌀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데, 최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기능성 쌀‘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보통 쌀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말은 아닐 터이고 특별한 기능이 보강되거나 첨가된 쌀이라고 상식 수준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기능성 쌀이란 이름은 학문적으로 명확히 의미가 규정된 뒤 사용된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상품의 차별화를 위해 먼저 사용되었다. 홍삼쌀, 버섯쌀, 당뇨쌀 등 여러 제품이 판매되고 있고 일반 쌀보다 고가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이름들이 의미하듯이 기능성 쌀은 예방의학 차원에서 건강보조식품으로 판매되거나, 보다 직접적인 치료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성분을 첨가하여 식품치료제로 판매되고 있다.

즉 건강과 관련하여 먹거리로서 그 기능성의 의미가 제한되어 사용되는데, 현대 생명과학의 이상은 이러한 좁은 틀에 만족해하지 않는다. 식량, 건강뿐만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환경, 에너지 등의 문제를 생명과학을 통해 풀고자 하는 시도들이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기능성 쌀‘이란 말보다는 ‘기능성 벼’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보다 큰 차원에서 벼의 유용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터이다.

세계 제 1의 에너지 공급원 ‘쌀’
생명과학이 가져올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여 한 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셀룰로오스(cellulose)는 식물 세포벽을 이루는 주요 성분으로 글루코스(glucose)를 기본단위로 하는 자연계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자원 중 하나이다. 따라서 이를 분해할 수 있다면 발효 과정을 통한 에탄올 제작으로 에너지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고, 셀룰로오스가 포함된 음식에 첨가하여 음식을 부드럽게 할 수 있다. 또한 동물 사료에 첨가하여 소화 능력을 향상시키고, 제지·펄프 생산에 쓰일 수 있다. 실제로 폐지 재생에 헤미셀룰레이즈(hemicellulase), 라이페이즈(lipase)와 더불어 셀룰레이즈(cellulose)가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경제성으로, 미생물 배양을 통한 현재 생산 공정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보다 높은 활성과 안정성을 겸비한 효소를 찾고 디자인하는 것과 더불어 식물을 생물배양기(bioreactor)로 사용하여 효소를 생산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알팔파, 토마토, 감자에 셀룰레이즈 유전자를 삽입한 형질전환체를 분석한 논문에 의하면, 형질전환체에서 활성을 띤 셀룰레이즈가 발현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만약 볏짚에 해당하는 영양생장 기관에 이 유전자를 발현시키면 어떻게 될까? 볏짚은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라 소중한 효소를 담고 있는 자원이 될 것이다.

한편 이렇게 해서 생산된 볏짚은 소의 먹이로서도 이상적이다. 농가에서 볏짚을 쓸어 사료에 섞어서 소에게 먹이곤 하는데 이때 볏짚을 소화시키는 주체는 소가 아닌 소의 장에 기생하는 미생물이다. 만약 볏짚 자체에 셀룰레이즈 성분이 강화된다면 볏짚의 소화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볏짚으로 술을 담그는 행복한 상상을 해 볼 수도 있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밀도 있고 옥수수도 있는데 왜 벼인가?” 벼는 밀·옥수수에 비해 재배 가능한 경작지가 넓고 밀·옥수수는 한 번 베어 내면 끝이지만 벼는 한 번 심은 뒤 여러 번에 걸쳐 수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이번에는 일반적으로 기능성을 이야기 할 때 떠올리게 되는 ‘기능성 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선 쌀은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곡물임이 입증되었다. 일례로 농촌진흥청에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단백질 측면에서 쌀(7.4%)은 밀(10.4%)에 비해 전체 양은 적지만, 양질의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어 소화율이 더 높고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경향이 덜하며 비타민 B군과 나이아신, 비만 방지 효과가 있는 섬유질의 양도 밀에 비해 풍부하다. 그런데 이러한 유용한 성분의 대부분은 미강(쌀눈과 쌀겨)에 포함되어 있어 가공 과정에서 제거되고 실제 섭취하는 백미에는 미량만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이런 쌀의 장점을 보강하거나 특정한 기능을 추가한 품종들이 개발되고 있는데, 서울대 식물육종연구실 고희종 교수팀이 개발한 ‘서농 6호’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품종은 벼의 7번 염색체의 ge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일반 쌀에 비해 쌀눈의 크기가 3~5배 가량 커진 거대배아미 품종이다. 한편 ‘고아미 2호’는 고식이섬유쌀로 일반 쌀에 비해 2~3배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 있다. 식이섬유는 에너지를 내지는 못하지만 포만감을 주어 비만을 예방해 주고, 장내에서 콜레스테롤이 흡수되는 것을 막고 대변의 양을 늘려 변비를 완화시켜 준다.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은 옥수수나 일반 쌀을 먹은 쥐에 비해 고아미2호를 섭취한 쥐에서 혈당이 감소하고 혈청과 간 조직의 중성지방과 총 콜레스테롤 함량이 낮아지는 것을 입증했다.

벼의 산업적 응용 가능성
그런데 기능성 벼 품종 개발과 유전자 연구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현재까지 인류는 물리·화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응용하여 놀라운 기술문명을 이룩해 왔으며, 최근에는 그 대상이 빠른 속도로 생물로 바뀌고 있다. 자동차가 굴러가는 것이 신기해 보이지만 부품 하나하나의 기능을 알고 복합적인 작동 원리를 이해할 때 그 신비의 베일이 벗겨지고 나아가 더 성능이 좋은 자동차를 제작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여기서 기계의 부품 하나하나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유전자이며 따라서 유전자의 기능 규명은 과학적 호기심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그 기능을 응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

앞서 벼의 산업적 응용 가능성을 살펴 보았다. 더불어 양분이 미강에 포함되어 있는 탓에 그 우수성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했다. 만약 셀룰레이즈 유전자를 벼에서 능수능란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미강에 포함된 양분을 백미가 있는 부분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면, 혹은 미강에 있는 입맛을 껄끄럽게 하는 성분들을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가능성을 검증해 준 좋은 예로 작년에 일본에서 개발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 GLP-1함유 쌀이 있다. 이 쌀로 만든 밥 한 공기를 먹으면 GLP-1 500mg을 함께 섭취하게 되는데 당뇨병 약을 먹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GLP-1은 인슐린촉진 효과가 알려져 있으면서도 약이나 주사로는 신체흡수가 잘 안 되는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번에 개발된 당뇨병 치료 쌀은 GLP-1의 이런 약점까지 보완했다. 또 다른 예로 황금쌀(golden rice)을 들 수 있는데 나팔수선화의 베타카로틴 유전자 두 개와 박테리아 유전자 한 개를 쌀 유전자에 집어넣어 비타민A를 강화한 쌀이다. 현재 인디카 벼 IR64를 형질 전환시켜 동남아시아 대부분에 적응할 수 있는 벼 품종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해마다 1백만∼2백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비타민A 부족으로 죽고 35만 명의 어린이가 눈이 머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 초기에 선별 마커로 사용했던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를 제거했고 개발도상국가들에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환경단체들이 반대하는 근거로 삼는 슈퍼잡초의 탄생이나 기술독점의 폐해와 같은 우려를 무마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종의 유전자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으며 안정성에 대한 신중한 분석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기능성 벼의 개발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규모의 경제로 인한 가격경쟁에서 밀리는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 육종학을 통한 벼의 품종 개량 연구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최근 벼의 게놈 해독과 이로 인해 유전자 연구도 가속화되고 있어 이러한 가능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에 다양한 용도의 기능성 벼 개발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이며 유전자 기능 연구는 그 핵심에 있다 하겠다. “Rice is n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