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C 세계 최초 발견으로 암 발성인자 규명에 공헌
PKC 세계 최초 발견으로 암 발성인자 규명에 공헌
  • 류성호 / 생명 교수
  • 승인 2004.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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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The Sci-entist지에는 1980년대에 발표된 모든 과학분야의 논문들에 대한 인용도를 통계로 낸 SCI 자료를 뉴스로 실었다. “Citation Superstars Of The 1980s” (The Scientist 4[1]:18) 라는 제목의 뉴스에는 흥미롭게도 니시즈카 박사의 논문이 1위와 4위에 올라가는 신기록을 세웠다. 다시 말하면 1980년대 발표된 모든 과학기술분야 논문들 중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가장 중요하게 취급된 네가지 논문 중 두가지가 Nishizuka 박사의 논문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그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한 사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1980년대 이후 최다인용

Nishizuka 박사는 어떤 일을 한 사람인가? 왜 그의 논문이 그렇게 사람들한테 주목을 받게 되었는가? 한마디로 그는 세포가 외부 신호를 받아서 증폭되는 장치의 핵심 부품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그 작동 원리를 제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고등 생명체는 수십 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세포들은 각기 서로 다른 기능을 하도록 분업화되어 있다. 분업화된 기능들을 통합하고 조절하기 위하여 세포들 사이에 주고 받는 신호는 신경전달물질, 호르몬 같은 분자들이 매개한다. 신호를 받는 세포는 세포막에 수용체(receptor)를 통하여 안쪽으로 분자적인 변화를 전달하게 된다. 수용체에 도달된 신호(1st messenger)는 약하기 때문에 세포 안쪽에서 이것을 증폭하여 더 많은 수의 신호(2nd messenger)를 만들고, 세포내의 다른 장치들로 연결되는데 protein kinase C (PKC)는 그 중 핵심역할을 하는 효소이다.

Nishizuka 박사는 1970년대 중반에 그 당시에 존재가 확인된 Cyclic nucleotide에 의해 활성화 되는 PK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던 중, 쥐의 뇌에 존재하는 세포막 지질에 의해 활성화되는 protein kinase(PK) 존재를 관찰하게 되는데, 미국과 유럽의 거장들 명성에 밀린 일본의 이름 없는 학자의 발견은 오랫동안 인정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효소를 PKC로 명명하고, 이 효소의 기능을 계속 연구하여, 1982년, 실험실에서 발암물질로 사용하던 phorbol ester (PMA)가 PKC를 활성화시키는 지질인 diacylglycerol(DG)과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어 지속적으로 PKC를 활성화시킨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이 논문은 1980년대에 4번째로 인용도가 높은 논문이었다).

PKC의 발견과 암 발생원리

이 연구에 대해서는 그가 스스로 밝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Nishizuka 박사는 처음에는 PMA가 DG를 생성시키는 호르몬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하고, 실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학회에 이와 같은 주장을 담은 초록을 제출하였다. 그런데, 막상 실험을 해 보니 PMA가 DG를 생성시키지 않았다. 그는 몇 주간을 초조한 마음으로 고민을 하였다. 자신있게 주장하여 초록까지 제출한 모델이 맞지 않을 경우 수많은 학자들로부터 망신을 당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막바지에 몰린 그는 계속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을 보내게 되었는데, 어느날 저녁 낙심한 상태에서 우연히 PMA와 DG 두가지 분자의 구조를 유심히 보고 있다가 이것들의 한 부분이 매우 닮았음을 문득 느끼게 되었다(그림1).
그는 즉시 그 두가지 분자들로 실험을 진행하여, PMA가 DG 생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두가지 분자들이 서로 닮은 부분이 있어 호르몬에 의한 DG생성 없이도 PMA가 DG의 역할을 직접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게 되었으며, 이 사실은 그 당시 가장 주목 받는 연구 결과가 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들을 종합하여 1984년에 Nature에 발표한 Nishizuka 박사의 논문은 1980년대 발표된 과학기술 논문들 중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이 되었다. 이 발견은 호르몬의 신호가 존재할 때만 잠깐 생성되었다가 대사 되어 없어지는 DG와는 달리 발암 물질인 PMA는 오랫동안 세포막에 존재하면서 PKC를 활성화 시키므로 세포의 활성화 과잉으로 암 발생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초기 발암 원리의 성립에 큰 공헌을 한 발견이 되었다.

Nishizuka 박사의 생애

Nishizuka 박사는 1932년에 태어나서 교토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1962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일본 생명과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Osamu Hayaishi 박사(교토대)와 단백질에 인산기가 붙는 현상을 처음 발견한 Friz Lipmann 박사(록펠러대)의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하면서 단백질 인산화에 대한 주제를 평생의 연구 방향으로 잡게 된다. 일년동안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온 그는 지방에 위치하여 교토대학보다 상대적으로 명성이 적은 지방대학인 코베대학에서 교수로 본격적인 단백질 인산화 효소 (PK, protein kinase)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발견들은 그 당시 미국의 연구실들에 비하여 시설이나 정보가 낙후된 일본의 지방대학에서 대학원생들을 지도하면서 이루어진 것들이었으며, 그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나타내던 유리한 여건을 갖고 있는 미국이나 영국의 학자들이 이루어내지 못한 것은 꾸준히 한 우물을 판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당시 Nishizuka 교수의 제자였던 Takai, Kikkawa, Inoue, Kawahara, Kishimoto, Kaibuchi 박사 등은 현재 일본의 중추적인 과학자들로 성장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는 코베 대학교의 총장으로 선임되어 코베 대학교를 일본 일류대학 수준으로 올리는데 기여했으며, 지금은 은퇴하여 그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Biosignal Research Center의 명예 소장으로 있다. 그는 Lasker Award, Wolf Prize 등을 비롯한 10여종의 세계적인 상을 받았고, 미국과학학술원을 비롯한 6개국의 학술원 회원의 영예를 누리고 있으며, 노벨상 0순위에 계속 올라 있는 상태이다. 연구 여건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노력으로 성공의 신화를 이룬 학자의 대명사로도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