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노트] 화학의 탄생
[과학노트] 화학의 탄생
  • 최상일 / 물리 교수
  • 승인 1999.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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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5원소와 그리스의 4원소


화학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하는 질문을 좀 생각해보자. 고대 그리스에서는 모든 물질은 4개 원소(흙, 물, 불, 공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고, 중국에서는 5개 원소(불, 물, 나무, 금속, 흙)로서 모든 물질이 구성되었다고 믿었다. 중국에서는 5개 원소를 음양과 합하여 모든 사물을 분류하는 방법(음양오행)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원소들은 근대 화학의 원소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화학반응 이론의 시조


고대에서 현대 화학의 선조를 찾는다면 중국에서 발견한 유화수은(HgS)의 열분해 현상에 관한 음양론이라고 하겠다. 붉은 색 유화수은(진사)에 열을 가하면 흐르는 금속 수은과 노란 색깔이며 불에 타는 유황으로 분해한다는 사실이 고대 중국에서 발견되었고, 이 현상을 “음원소(수은)와 양원소(유황)가 결합하여 생명의 진수(피와 같은 붉은 색)가 되었던 것이 열에 의하여 다시 음과 양으로 갈라졌다”는 음양론으로 설명하였다고 한다. 처음으로 발견된 두 원소가 아닌가 한다. 현대 화학의 개념을 사용하여 이 이론을 해석하면, 음전하(전자)를 주기 좋아하는 원소 수은이 전자를 받기 좋아하는 원소 유황과 결합하여 유화수은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발견이 아랍국가들을 경유하여 유럽의 암흑시대 이후에 유럽에 전해졌다고 한다.


연금술의 등장

고대 그리스에서는 부식하지 않고 찬란한 노란 색을 유지하는 금이 귀중한 물질이었고, 영구히 변치 않는 이 성질이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불로장수 약에는 반드시 금이 주요성분으로 들어있었고 금 컵으로 음료를 마시도록 의사들이 권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금에 대한 동경과 수요 때문에 다른 물질에서 금을 만들겠다는 연금술이 그리스 학자들 사이에서 서기 1세기에 시작되었고 아랍국가들을 거쳐서 서기 12세기에는 그 당시 유럽문화의 중심지인 스페인과 이태리로 퍼졌다. 그후 유럽에서는 연금술에 심취한 일부 의사들이 금과 관련이 없는 약을 자연물질에서 만들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증류하는 방법이 발달되고 물질을 분해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도 모든 물질이 4개 원소(흙, 물, 불, 공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고대 그리스의 물질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4원소에 입각한 물질관에서 해방


서기 17세기의 영국인 보일 (Robert Boyle, 1627~1691)은 저서 <회의적인 화학자>(1661)에서 흙, 물, 불, 공기가 물질의 원소라는 증거가 전혀 없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므로 원소들의 성질과 결합에 관한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인 화학은 보일이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일랜드 대지주의 아들 보일은 소년 시절에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여러 사람의 사고방식을 접한 후 17세에 집으로 돌아간다. 귀가한 보일은 문학자가 되려고 노력하다가 그만두고 의사가 되었으며 연금술에 취미를 갖게 된다. 경험학파의 시조인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 및 현대물리학의 시조인 이탈리아 갈릴레오의 저서,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의 저서를 읽은 그는 신비성에 쌓인 연금술의 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644년에 출판된 데카르트의 저서 철학원론을 읽은 그는 기계론적 자연관의 신봉자가 된다. 그래서 그는 화학실험에 심취하면서도 그 당시의 물리학과 천문학의 새로운 것들을 공부하는데 게으르지 않았으며, 공기의 물리적 성질과 수은주를 이용한 토리첼리의 연구(1644)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보일의 법칙


1657년에 독일 사람 게릭케가 발명한 공기펌프 소식을 들은 보일은 그의 조수 훅(Robert Hooke, 1635~1703)에게 공기펌프 제작을 부탁한다. 물리학 및 생물학의 여러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훅은 게릭케의 펌프보다 훨씬 효율적인 것을 설계하고 제작하여 새로운 연구 기기를 보일 교수에게 제공한다. 보일은 이 펌프를 사용하여 본격적으로 공기의 성질연구에 들어갔으며, 밀폐된 용기에서 공기를 빼내면 토리첼리의 수은주 높이가 작아지고 용기 안에 있는 시계소리가 작아지다가 없어지고 촛불이 꺼지고 새와 고양이가 고통스러워하다가 죽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는 공기 압력을 줄여서 연구를 할 뿐 아니라 공기를 압축하는 실험도 하여 기체의 압력과 부피는 반비례한다는 보일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압력이 커지면 부피가 줄어드는 사실은 기체가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있고 입자들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기 때문이라는 기계론적 해석을 제공하였다.


정성분석의 시조


보일 교수는 화학과 기계론적 철학 양쪽을 추구하였다. 심지어는 물질의 색을 기계론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하였다.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으나 결과적으로는 화학에 중요한 공헌을 하게된다. 화합물을 혼합하면 생기는 색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모든 산이 제비꽃의 푸른색을 붉게 변화시키고 모든 알칼리는 녹색으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뿐 아니라 모든 푸른색 식물 물질이 산과 알칼리에 대하여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 발견을 좀 달리 보면 “모든 산이 푸른 식물 용액을 붉게 만든다면 그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물질은 산이 아니다”라고 단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일은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물질을 산, 알칼리, 중성으로 분류하기에 이르렀다.

얼마 후 염화수은 용액과 섞은 경우 생기는 침전물이 오렌지색인가 흰색인가에 따라 탄산칼륨과 암모니아를 분별하는 방법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런 화학 시험, 결정의 모양, 액체의 비중 등을 이용하여 정성분석 방법을 개발하였다. 화학 정량분석 방법은 보일이 사망하고 52년이 지난 후에 태어난 라부아지에에 의하여 개발되었으며, 원소의 원자량의 개념을 도입하여 화학반응을 원자의 결합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한 돌턴의 이론은 라부아지에가 프랑스 혁명의 희생자로서 단두대에서 처형된 지 14년 후에 발표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아보가드로가 두 가설(① 화학 물질의 궁극적인 입자는 원자 혹은 원자들의 결합으로 된 분자들이고 ② 같은 부피의 기체는 같은 수의 분자를 포함하고있다)을 제창하였다. 그 뒤 50년 후에 칸니차로(Stanislao Cannizzaro, 1826~1910)가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여서 아보가드로의 가설이 법칙이 되고, 그 후에는 화학이 진정한 과학으로 급성장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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