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노트] 양자론의 탄생
[과학노트] 양자론의 탄생
  • 최상일 / 물리 교수
  • 승인 2000.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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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한 작은 나라 덴마크 사람인 닐스 보어(Niels Bohr)는 장학금을 얻어서 26세인 1911년에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의 톰슨(J. J. Thomson)의 연구실로 유학을 갔다. 톰슨은 전자의 발견자로서 유명한 사람이었으며, 원자구조에 관하여 일가견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균일하게 분포된 양전하 속에 전자들이 여기 저기 박혀있다는 원자 구조를 제창하기도 하였다. 이 톰슨의 플럼 푸딩(plum pudding) 모형을 자세히 검토한 젊은 보어는 처음으로 대가 톰슨과 의논할 기회를 가졌을 때 짧은 영어로 “이것은 틀렸다”라고 불쑥 말해버렸다. 영어가 서툴어서 자기 의견을 점잖게 표현할 능력이 모자라서 그랬던 것이다. 그 후로는 보어가 톰슨 연구실에 있기가 불편해졌다. 그래서 1912년 3월부터 맨체스터 대학의 러더퍼드(Rutherford) 교수에게 가기로 했다.

바로 이 달에 러더퍼드는 원자구조에 관한 중요한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원자 질량의 대부분은 중심에 있는 매우 작은 양전하를 가진 핵에 집중되어있고 그 주위에 전자들이 균일한 구형분포를 갖고 있다는 것이 요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불안정함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보어도 러더퍼드와 같은 생각이었기에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다가 몇 달 후에 한가지 중요한 발상을 하게 된다.

19세기 말 독일의 전등산업에서는 전등에서 방사되는 전자파의 파장분포를 알 필요가 있었고 많은 실험물리학자들에 의하여 자세한 결과를 얻었다. 일정한 온도의 물체에서 복사되는 빛의 파장분포를 설명하려면 빛의 에너지는 연속적 값을 갖지 않고 비연속적 값을 갖고 있다고 가정해야 된다는 복사이론을 막스 플랑크가 1900년에 제창하였다. 빛의 양자화(quantization)가 처음으로 제창된 것이다. 빛의 에너지의 단위는 빛의 진동수에 어떤 상수(플랑크의 상수 h)를 곱한 것이며 총 에너지는 이의 정수배라는 것이다. 1905년에는 아인슈타인이 금속에 빛을 쪼이면 방출되는 전자의 에너지 분포를 설명하려면 쪼이는 빛의 에너지가 플랑크가 제창한 대로 양자화 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된다는 이론을 발표하였다.

보어는 이 양자화 개념을 더 일반화하기로 하였다. 모든 에너지가 양자화 되어 있다면 원자 속의 에너지도 양자화 되어 있어야 한다. 즉, 에너지는 모든 연속적 값을 가질 수 없고 비연속적 값을 갖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전자의 특정한 에너지 값에 해당하는 전자의 궤도가 있게 마련이다. 보어가 이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도중, 원자에서 방출되는 빛의 진동수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스위스의 요한 발머가 발견한) 수식을 보게 된다. 그는 이 수식을 응용하여 다음 두 결론을 얻게 된다.

(1) 지구 주위를 일정한 거리에서 돌아다니는 위성같이 전자도 일정한 궤도를 갖고,

(2) 전자가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갈 때는 일정한 양의 에너지 증가 혹은 감소가 생긴다.

그러니까 원자가 한 상태에 있을 때에는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고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전할 경우에만 전자파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한다. 보어의 이 원자구조에 관한 양자론(量子論)은 러더퍼드의 원자구조가 발표된 지 약 일년 후에 발표되었다. 이 양자론이 발표된 후 많은 물리학자들이 원자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였다. 큰 질문들을 몇 개 든다면: 전자는 입자인가 파동인가? 전자가 궤도를 바꾸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원자핵 속에 또 입자가 있는가?

1921년에는 코펜하겐 대학에 닐스 보어를 위하여 이론물리 연구소가 설립되었고 원자물리학의 세계적인 중심지가 되었으며, 1922년에는 노벨상이 보어에게 수여된다. 여기서 보어에 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 보어가 남의 강의를 들을 때에는 옆 사람에게 “지금 저 사람이 말한 것이 무슨 뜻이지?”하고 자주 물었다고 한다. 강의가 끝나면 주위에 있는 자기 제자들에게 “나는 아직도 잘 이해 못하고 있으니까 군들 생각을 좀 알려다오”라고 해서 제자들이 열심히 설명을 해드리고 나면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아, 이제 알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이때에는 보어의 이해도가 주위의 누구의 이해도보다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렇게 질문을 하고 토의를 하여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었다. 그는 한 번 양자론에 관한 강의를 한 후에 “내가 말한 문장 하나 하나를 확언적인 것이 아니고 질문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이 고전적으로 파동인 빛을 에너지 입자의 모임이라고 생각하는 양자화를 하였고 보어가 그 개념을 일반화하여 원자의 양자론을 제창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프랑스의 귀족 물리학자 드 브로이는 1924년에 물질입자의 파동성질에 관한 이론을 제창하였다. 이는 보어의 원자론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뿐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많이 제시하게 된다. 그에 의하면 운동량을 갖고 움직이는 입자의 파장은 (플랑크의 상수)/(운동량)으로 주어진다.

보어의 양자론 때문에 새로운 역학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1925년에는 하이젠베르크가 행렬역학의 첫 논문을 발표하였고 다음 해에 보른, 하이젠베르크, 요르단이 협력하여 행렬역학의 기초를 확립하는 논문을 발표하여서 새로운 역학이 시작된다. 양자론에서는 에너지가 비연속적 값을 가질 수 있다는 것과 행렬의 고유값이 비연속적 값을 갖는다는 사실을 연상해서 행렬역학을 생각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오스트리아의 슈뢰딩거는 드 브로이의 물질파동 이론을 발전시켜서 1926년 초에 파동역학을 만들어냈다. 이 두 역학체계가 동등하다는 것이 후에 알려지게 되어 지금은 양자역학이라면 위의 양쪽 역학체계를 포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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