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끝나지 않은 물음] 7. 아무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물음] 7. 아무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 박이문 / 인문사회학부 교수
  • 승인 2000.02.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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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다. 하나를 보면 둘이 안 보이고, 한 소리를 들으면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하나를 읽으면 다른 것이 읽히지 않는다. 어떤 것을 보고 한 사람은 산이라 하는데 다른 사람은 물이라 하며, 어떤 소리를 듣고 이 사람은 음악이라 하는데 다른 이는 잡음이라 하며, 어떤 낱말의 뜻을 놓고 ‘개’라 하는데 다른 이는 ‘소’라 한다. 산과 물이 따로따로는 보여도 그 둘이 전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고, 바람소리와 음악소리를 따로 따로는 들어도 그 둘이 합쳐서 무슨 소리인지 들리지 않으며, 한 낱말과 한 문구의 의미가 따로따로는 이해가 되어도 그것이 합쳐 이룩된 문장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다. 이래도 저래도,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이것도 저것도, 이 경우 저 경우도 따지고 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

인류는 역사적 경험과 삶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알았다고 믿어 왔다. 선배와 선생님의 신념이 옳은 것 같고, 점술가들의 이야기가 맞는 것같이 보인다. 과학자의 설명이 정확해 보이고, 깊은 진리에 대한 철학자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고, 종교인들의 신앙이 더 심오한 설명을 해주는 것같이 느껴진다. 예수의 말이나 노자의 주장, 기독교의 설교, 부처의 가르침, 공자의 생각이 한결같이 옳은 것 같다. 나나 너나 사람마다 개인적으로는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위와 같은 것을 배워서 세계와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고 자부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배움은 과연 옳은 것이며, 우리의 앎은 정말 진리인가.

알고 보면 똑같은 것을 놓고도 내가 본 것과 네가 본 것이 같지 않은 경우가 많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 선배와 선생의 지식은 흔히 서로 맞지 않는다. 같은 자연현상을 놓고도 점술가들과 과학자들의 설명은 흔히 상충한다. 똑같은 자연현상을 놓고 점술가들은 어떤 영적 존재의 조작으로 설명하는 데 반해서 과학자들은 기계적 법칙의 작동으로 설명한다. 죽음과 삶, 영혼과 영원에 대한 생각에서 철학자들과 종교인들은 흔히 어긋난다. 한편에서 그러한 것들의 실재성을 믿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그것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과학 안에서조차도 물리적 현상에 대한 뉴턴의 삼차원적 설명과 아인슈타인의 사차원적 설명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철학 안에서도 실체에 대한 플라톤의 이원론적 관념론은 노장의 일원론적 자연주의와 일치하지 않는다. 종교 안에서도 기독교가 주장하는 절대적 인격신이 불교에서는 전적으로 부정된다.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주장이나 설명을 다같이 옳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절대신, 영혼, 천당을 믿고 어떤 이는 그런 것들을 믿지 않는다. 절대신의 존재와 부재는 양립할 수 없고, 영적 세계와 현상적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는 입장은 그런 것이 없다는 입장과 양립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인류, 아니 우주의 역사가 어떤 목적을 향해 진행되고 어떤 이는 오로지 무한한 변화를 통한 무한 반복에 불가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생각, 어떤 믿음, 어떤 설명이 옳은가. 누가 그리고 어떤 근거에서 둘 가운데 어떤 쪽이 옳은가를 결정할 수 있는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앎, 만족스럽게 설득할 수 있는 설명이 발견되지 않는다. 모순되는 두 가지 신념 중 어느 것이 옳다고 판단할 수 있는 확고한 근거를 갖지 못하는 한 그 어느 쪽을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느님이 있다는 주장이나 없다는 주장이나 다같이 말이 되지 않는다. 윤회설을 믿는 일이나 믿지 않는 일이나 다같이 말이 되지 않는다. 플라톤의 이데아이론이나 노자의 무위사상도 말이 되지 않으며, 창조론이나 진화론도 다같이 말이 되지 않는다. 헤겔의 목적론적 역사관도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종교를 믿어도 안 믿어도 다같이 말이 되지 않으며, 유물론도 유심론도 역시 말이 안 된다. 공간과 시간의 무한성과 유한성에 대한 신념은 모순되지만 그런 개념들은 이래도 저래도 말이 안 된다. 모든 것이 말이 된다는 말이나 말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다같이 말이 되지 않는다. 모든 개별적인 것들의 하나하나가 한결같이 말이 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통합한 전체에 대한 주장들은 한결 더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고 알았다. 나는 산과 들을 보고, 먼 나라, 먼 과거에 대한 이야기도 수없이 들어 왔다. 나는 물론 한글을 쓸줄 알고, 위상수학, 양자역학, 유전자, 컴퓨터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다. 나는 중국의 역사, 아프리카의 지리에 정통하며, 수리경제 이론에 밝다. 나는 플라톤, 노자의 철학에 정통하고, 첨단 문학이론이나 사회학적 이론에도 밝다. 나는 세계의 모든 종교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나는 세계의 역사에도 훤하다. 나는 인간을 의학적, 생물학적, 화학적 그리고 물리학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고, 생명체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지식이 아무리 정확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에 대한 단편적이고 파편적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정말 추구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앎이며,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함의하는 우주현상에 대한 총체적 앎이며 포괄적 설명이다.

세계와 인생에 대한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설명만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측면에서 본 특정한 부분에 대한 모든 설명이 한결같이 말이 되지 않는 이유는 어떤 문제나 현상에 대한 여러 설명이 서로 모순된다는 사실을 넘어, 아니 그 이전에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이유의 단서는 모든 신념, 설명 그리고 주장은 필연적으로 언어를 통해서만 표현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때 찾을 수 있다. 좀 더 따지고 보면 절대자 하느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영혼,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없는 물질의 유무를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앞서, ‘하느님’, ‘영혼’, ‘물질’, ‘영원’, ‘무한’,’존재’, ‘있다’, ‘없다’라는 큼직한 말의 의미조차 한없이 애매모호하고 불투명하다. 그런 낱말들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해도 저렇게 해석해도 정확하게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낱말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투명한 상태에서 어떻게 그것들의 존재 유무에 대한 설명과 주장의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을 따질 수 있겠는가. 낱말들의 정확한 의미는 이렇게 해석하거나 저렇게 해석하거나 말이 잘 되지 않고, 말이 잘 되지 않는 의미를 갖은 언어로 표현한 신념, 설명, 주장은 한결 더 말이 되지 않는다. 알고 보면 그것들은 셰익스피어의 표현대로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한 백치들의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고, 엄격히 따지고 보면 그런 말에 담긴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한 신념과 주장 즉 앎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봐도 말이 안되고 저렇게 들어도 말이 되지 않으며, 이렇게 읽어도 말이 되지 않고 저렇게 해석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동물들 간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말이 되지 않는다.

빌 게이츠가 억만장자인데 반해 수억의 인간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건강과 재능을 갖고 태어났는데 다른 이들이 불구와 저능아로 태어나는 사실도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우주 속에 일어나는 하나하나 모든 현상들을 개별적으로만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설명하고 싶다. 그러나 나의 지적 추적은 절벽에 부딪치고 나의 지적 욕망은 허탈한 좌절감만 남긴다. 나의 궁극적인 욕망은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것들의 형이상학적 ‘의미’, 종교적 ‘뜻’을 찾는데 있다. 모든 객관적 현상이 과학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설명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들의 궁극적 의미, 초월적 뜻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 모든 것, 현상의 궁극적 의미, 뜻은 무엇인가? 높은 정신의 경지에 도달한 종교인과 철학자들이 그러한 의미, 뜻을 깨달았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정직하게 말해서 나에게는 그들의 말도 말이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의 총체적인 궁극적 의미, 뜻이 부재하는 상황에 나는 무한한 공허감에 사로잡힌다. 모든 것이 말이 되지 않고, 모든 것이 말이 되지 않는 자체도 말이 되지 않는다.

보아도 그 형태가 분명치 않아 잘 보이지 않고, 들어도 그 소리가 흐려서 잘 들리지 않으며, 읽어도 그 뜻이 깊거나 애매모호해서 그 뜻을 분명히 그리고 세밀하고 엄밀하게 파악하기 힘든다. 배우고 알면 알수록 그 깊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모든 것은 그 하나하나가 더 이상하고 더 궁금해지며, 보고, 듣고, 이해하고 싶지만 아무리 눈을 비비고 보고, 귀를 기우려 들으면 그럴수록 모든 것은 그만큼 더 희미하며, 머리를 싸매고 읽어도 읽은 것의 의미는 분명치 않고, 생각을 짜서 이해하려해도 그 뜻이 명확하지 않다. 정말 보이고, 정말 들리고, 정말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래도 저래도 세계와 인생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무엇이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몰라진다. 정말 말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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