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의거 전개과정]
[4·19의거 전개과정]
  • 정리 : 백정현 기자
  • 승인 2000.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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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마산항의 수면으로 떠오른 것은 열 여섯 살 난 김주열이라는 소년의 시체였던 것이다...마산 시민들은 눈앞에 끌어올려진 시신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AP통신, 1960년 5월 2일)

1950년대는 한국 민주주의의 암흑기였다.1960년 3월 15일의 선거는 타락선거의 전형을 보여준다. 4할 사전투표, 반공개(半公開) 투표, 야당참관인 매수 및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불법 선거공작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승만 독재정권의 반민주적인 만행은 온 국민들로 하여금 진정한 민주화를 열망하게 했으며, 민주화 혁명의 불씨는 대구의 어린 고등학생들에 의해 지펴졌다.

야당이었던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의 대구 유세일인 2월 28일 일요일, 대구시내 모든 초·중·고교 학생들이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유세장에 학생들이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등교를 강요당했다. 이에 대구·경북고교학생들이 반발하고 전국적으로 번진 시위가 소위 ‘2. 28데모’이다. 데모는 선거 당일까지 이어져 마산에서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들까지 합세한 가운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으니, 이것이 이른바 ‘마산 제1차 의거’이다. 선거일 수천의 마산시민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군중에게 발포하여, 16명이 죽고 72명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시위의 배후에 공산당이 선동하고 있음을 조작할 뿐이었다.

선거가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11일, 마산항에서 3월 15일의 마산 시위현장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 소년(당시 16세. 마산상고 1학년)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한 낚시꾼의 낚싯줄에 의해 건져 올려진 시신은 눈에서 뒷머리까지 길이 20센티미터의 미제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이었다. 이제 고등학교에 막 들어간 앳된 소년의 끔찍한 시체는 마산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들을 극도의 흥분 속으로 몰아갔으며, 결국 마산에서만 약 3만여명이 궐기한 시위가 ‘마산 제 2차 의거’이다. 시위의 불길이 전국 각지로 번지면서 미 국무부는 한국 민주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까지 했으나 자유당 정권은 여전히 시위대를 공산당으로 몰아 검거했다.

4월 18일에는 고려대생 약 3천여명이 의사당 앞에서 연좌데모를 벌인 뒤 수만의 시민들과 함께 귀가하는 길에 1백여명의 깡패들로부터 습격을 받아 1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피의 화요일’이라 불리는 1960년 4월 19일의 아침은 밝아왔다. 이날 낮 1시경 대장고교생 1천여명이 교문을 박차고 나선 것을 선두로 해서 각 대학의 10만이 넘는 대학생들과 중*고등학생들, 그리고 시민들이 운집하여 서울시내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으나, 실탄사격에 의해 183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사태가 불리하게 흘러가자 이승만은 부랴부랴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진정 이 나라 학생들과 국민들이 원한 것은 민주정권의 실현이었기에 시위는 계속되었다. 4월 25일에는 서울 시내 대학교수 2백 58명이 시국선언문을 채택하였다. 교수들은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랙카드를 들고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하였다.

시민들은 오후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세종로에 집결하여 이기붕의 집을 습격하였으나, 다시 실탄사격을 받아 수십명이 살상당하였다. 그리고 서울지역에 다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으나, 계엄사령관은 계엄군에게 데모 군중에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구속학생 전원을 석방하였다. 여기에 미국정부마저 압박을 가하자 이승만 정권은 막바지로 몰리게 되었다.

다음날인 26일 이른 아침부터는 3만여명의 서울시민들이 계엄군의 탱크를 앞세우고 시내를 누비면서, 이승만의 동상을 끌어내렸다. 심지어는 수송국민학교생들을 중심으로 한 어린이들마저 “언니 오빠들에게 총을 쏘지 마세요”라고 호소하며 애절한 데모를 벌였다. 전국 방방곡곡이 이승만 하야를 요구하는 함성으로 들끓었다. 결국 오후 1시 이승만이 민중에 굴복하는 목소리로 하야성명을 발표하고 국회가 이승만의 즉시하야를 만장일치로 결정하면서, 우리 나라는 윤보선 대통령, 장면 총리의 제 2 공화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186명의 생명을 포함한 7천여명의 피의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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