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의 창] 과학사를 통해 바라본 연구하는 자세
[연구실의 창] 과학사를 통해 바라본 연구하는 자세
  • 김우재 / 생명 박사과정
  • 승인 2003.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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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경계를 ‘침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종종 자신의 좁은 전공 분야의 외부로부터 개념적인 진보의 결정적인 실마리가 풀린다.’ - 에른스트 마이어

도로교통법 제 10조에 의거 보행자의 무단횡단엔 벌금형이 부과된다. 법은 분명히 무단횡단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벌금을 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다거나 절박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혹은 그저 재미로라도 우리에겐 법을 무시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지루하게 법이나 관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혹시 과학도 혹은 공학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학문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법이나 관습과 같은 마음의 장벽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또 과학기술의 역사에서 그러한 장벽들은 어떻게 취급되어 왔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학문에 있어 무단횡단은 (매우) 감행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무단횡단 성공기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어떤 조직화 수준에 있는 한 연구 분야가 인접한 분야와 상호작용을 처음 시작했을 때 흔히 나타나는 특수한 적대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반분야’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화학에 다체물리학, 분자생물학에 화학, 생리학에 분자생물학이라는 반분야가 존재하며 전문성과 복잡성이 증가되는 각각의 조직화 수준마다 쌍을 이루는 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반분야는 임의적으로 상위 반분야와 하위 반분야로 나뉘며, -윌슨에 따르면- 성공한 과학자들은 모두 자신의 전공을 둘러싼 현상들을 세 가지 수준에서 다루고 있다고 한다. 윌슨의 ‘사회생물학’ 그 자체도 이러한 종합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사회성 곤충의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학을 통합하고자 했다. 화성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의 사회에 대한 연구도 개미사회나, 산호군체가 이루는 사회에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연구될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이후 사회학과 인문학 진영에서 쏟아진 비판들은 그야말로 ‘적대적’인 것이었다(그 논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인접분야 사이의 경쟁이 사회생물학의 경우처럼 학자들 간의 전쟁으로 격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분자생물학의 경우처럼 상보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분자생물학은 생화학과 세포생물학의 상호작용에 의해 탄생한 학문이다. 1950년 이전의 생화학자들과 세포학자들은 서로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으며 서로간의 학문적 언어를 공유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 학문 간의 상호 경쟁은 분자생물학이라는 접점을 바탕으로 생명의 본질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깊고 풍족하게 만들 수 있었다.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학문으로 진화심리학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이자 ‘언어본능’으로 더욱 유명한 스티븐 핑커 교수는 인간의 마음을 연구해 나갈 차세대 학문으로 행동유전학, 인지신경과학과 함께 진화심리학을 꼽는다. 진화심리학은 앨런 튜링에게서 시작된 계산주의 심리학과 진화학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학문이다. 진화심리학에서 바라보는 마음은 일종의 ‘정신기관’이며, 적응적 문제해결 장치들로 이루어진 스위스제 군용칼이다. 최근 시리즈의 마지막편이 개봉된 매트릭스의 주연배우들이 진화심리학 입문서를 읽어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새로운 학문이 가진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의 말처럼 조만간 진화심리학은 심리학을 대체하게 될지도 모른다. 진화심리학뿐 아니라 핑커가 언급한 나머지 두 학문들도 적게는 두 분야(행동과학과 유전학)에서 많게는 십여 가지의 분야(철학, 심리학, 언어학, 사회/인류학, 신경과학, 전산과학 등등) 사이를 무단횡단중인 영역들이다.

굳이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최근 급부상중인 생물정보학도 생명과학과 통계학, 컴퓨터과학 사이를 ‘무단횡단’중인 학문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런 최첨단 학문들의 성과가 너무나 거대해서 도대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고 불평할지 모른다. 좋다. 그렇다면 역사를 장식한 몇몇 과학자들의 사례를 통해 도대체 무단횡단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증명해보겠다.

과학을 발전시킨 역사 속의 아웃사이더들

흔히 찰스 다윈을 ‘생물학자들의 영웅’이라고 말한다. 자연선택에 기초한 진화론은 현대 생물학을 이끌어가는 기본원리다. 하지만 다윈은 대학시절 의학과 신학을 전공한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다. 어린 시절부터 박물학에 관심이 많았던 다윈은 이후 식물학자 헨슬로의 도움으로 박물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잘 알려져 있듯이 비글호에 올라 5년 동안 갈라파고스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돌며 진화론을 위한 기초 자료들을 모으게 된다. 다윈이 자신의 전공분야인 박물학에만 관심을 가진 평범한 전문가에 불과했다면 위대한 <종의 기원>은 출판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학문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지질학에 대한 관심은 다윈에게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읽게 했고,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그를 멜서스의 <인구론>으로 이끌었다. 요약하자면 다윈의 진화론은 박물학과 지질학, 경제학의 무단횡단 속에서 탄생한 이론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가 여러 층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최초의 대륙이었던 판게아가 이동하여 현재의 대륙으로 갈라졌다는 ‘대륙이동설’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대륙이동설의 주창자가 지질학자가 아닌 천문학자이자 기상학자였던 알프레드 베게너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지질학계에서는 아웃사이더였던 베게너가 처음 대륙이동설을 주장했을 때 그는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 해도 한 전공분야에 오랜 기간 속해 있게 되면 학문의 권위와 전통에 굴복하게 된다. 이럴 때 인접분야의 학자들이 정체된 그 학문에 도약의 기회를 제공한다. 베게너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는 당시의 지질학자들이 나무만을 보고 있을 때 감히 숲을 보라고 제안했다. 하룻강아지가 범을 무서워할 줄 모르듯이 조직화된 학문의 아웃사이더들은 학문적 권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이유만으로도 혁명적인 사고를 할 가능성이 많아지는 것이다.

진화학의 난제 중 하나로 한 종 내에서 어떻게 협동양식이 진화할 수 있었는가에 관한 문제가 있다. 현재는 상호 호혜성, 우연한 상호이득, 친족 선택, 집단 선택 등으로 어느 정도 설명이 되고 있지만 이러한 성과가 있기까지는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존 메이나드 스미스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영국에서도 가장 수학적 성향이 강한 생물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경제학에서 유래한 개념인 게임이론(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유명한 존 내쉬도 이러한 게임이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을 진화학에 도입해서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이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론을 정립한다. 그의 ESS개념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통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고 현재 진화학의 가장 유력한 이론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여러분은 이 세 명의 과학자들이 너무나 유명한 이들이 아니냐고 불평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왜 독창적이고 현재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며 영웅으로 칭송받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끝까지 그것이 무단횡단 덕분이었다고 주장할 셈이다. 이 세 영웅들의 사례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면 최근에 수행된 일련의 연구들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연구를 수행한 과학자들은 아직 영웅이 아니니까 말이다.
인류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인류학의 오래된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인류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다지역 기원설과 단일지역 기원설을 두고 대립해 왔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조금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측정방법이 도입되기 전까지 논쟁은 매우 흔한 일이다. 생화학을 전공한 앨런 윌슨은 이러한 인류학의 문제에 도전했다. 그는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를 분석하면 인류의 조상이 어느 지역에서 기원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1987년 그의 이런 노력이 결실을 거둔다.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였다.

1950년대 노엄 촘스키는 ‘보편 문법’이 인간의 두뇌에 내재해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앞서 언급된 스티븐 핑커도 인류의 지놈에는 우리가 유인원과의 공통조상에서 갈라지면서 획득한 언어에 관련된 유전형질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문제는 간단했다. 언어를 지정하는 유전자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2001년 안토니 모나코가 이끄는 분자유전학 그룹은 FOXP2 라는 언어유전자의 존재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2002년 인간의 FOXP2 유전자가 침팬지와 우리가 분화한 그 시점에 매우 특별한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어학자들은 흥분했다. 이 발견은 아직 논쟁에 휩싸여 있지만 우리는 한 가지만 기억하면 충분하다. 때론 생물학자가 언어학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한국형 과학’이라는 울타리를 허물 때

과학의 혁명적인 발전은 자신의 전공분야에 제한받지 않고 자유로운 생각을 가졌던 몇몇 개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제 과학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과학계에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처럼 개념적 진보를 이끈 이론의 부재이다. 우리는 경제발전이라는 짐 때문에 “한국형 과학”이라는 울타리를 쳐 놓고 과학자가 가져야 하는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해오지는 않았을까?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한 나라의 과학이 발전한다는 많은 학자들의 이야기가 정말 헛소리에 불과한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자의 무단횡단은 벌금을 각오하고 한번쯤 시도해볼만한 일인 것 같다. 과학자의 무단횡단은 장려할만한 불법행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