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비아그라 작용원리 규명의 의미
[기고] 비아그라 작용원리 규명의 의미
  • 이정규 / 크리스탈지노믹스 이사
  • 승인 2003.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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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구조에서 캐낸 부작용 없는 비아그라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잡지인 Nature 9월 4일자로 비아그라를 포함, 3종의 발기부전 치료제들(비아그라, 시알리스, 레비트라)이 체내에서 결합하는 효소인 PDE5 (Phosphodiesterase 5)와의 결합 구조를 규명하여 발표하였으며,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었다.

비아그라는 원래 1980년대 다국적 제약회사인 화이자사가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했다. 발기효과는 이 약물의 부작용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기관에서 동시에 효과가 나타난 것은 심장의 혈관에도 PDE5와 비슷한 PDE3란 효소가 있기 때문이다. 심장의 혈관을 이완시키는 명령을 전달하는 물질 역시 cGMP다. 심장의 혈관에서는 PDE3가 역할을 마친 cGMP를 분해한다. 따라서 PDE3의 작용을 차단시켜 cGMP의 농도를 높이면 심장의 관상동맥이 확장돼 협심증이 완화된다. 비아그라는 바로 PDE3에 달라붙어 그 기능을 억제하는 목적으로 개발된 약물이다. 그러나 임상 과정에서 협심증 치료제로는 효과가 미미하고 예기치 않은 부작용들이 생기면서 방향을 바꿔 뜻밖의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신약 개발 사상 가장 운이 좋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몸속에는 12가지의 유사한 포스포디에스터라제 (PDE: phosphodiesterase) 단백질들이 서로 다른 조직에 분포되어 있으며, 이들은 발기부전 이외에도 천식, 심장질환, 골다공증, 각종 면역질환, 정신질환 등 많은 질환에 관련되어 있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이들 PDE 단백질들의 원자수준의 연구를 통하여 여러 질환들에 대한 신약 발굴을 진행중이다. 현재 시판 중인 대부분의 약들은 체내에서 해당 질환 단백질과 결합하여 그 치료효과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므로 약물과 질환 단백질의 결합 구조를 원자 수준으로 이해하게 되면, 부작용 없는 개선된 신약을 만들 수 있다. 신약 발굴 경험과 신기술을 지닌 연구원들로 구성된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바이오 벤처이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이 기술들을 활용하여, 연간 수조원의 매출을 가지는 비아그라(화이자 제약사)를 포함하여, 최근 출시된 시알리스(릴리 아이코스 제약사)와 레비트라(글락소 스미스클라인/바이엘 제약사) 3종의 약물이 체내에서 어떤 형태로 질환 단백질인 PDE 5와 결합하여 작용하는지 원자 수준에서 밝혔다. 그 결과, 부작용 없는 차세대 발기부전 치료제 연구 뿐 아니라, 천식, 심장질환, 정신질환 등 PDE 단백질들에 관련된 신약 발굴에 획기적인 정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PDE의 유전자는 12가지다. 이 효소들은 모두 cGMP나 이와 비슷한 구조인 사이클릭아데노신모노인산(cAMP)을 분해하는 작용을 한다. cAMP 역시 세포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이다. PDE는 인체의 각 기관마다 조금씩 형태가 다른 타입들이 존재한다. 기관지의 세포에는 주로 PDE4, 눈에는 주로 PDE6, 심장에는 PDE3, 그리고 음경에는 PDE5가 많이 분포한다. PDE는 모두 cGMP나 cAMP를 분해하기 때문에 효소들의 활성부위 구조가 서로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실제 이번 연구 결과 PDE4와 PDE5의 활성부위 입체구조가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비아그라는 목표인 PDE5뿐 아니라 이것과 구조가 비슷한 다른 효소들에도 작용함으로써 여러 부작용을 유발하게 된다. 즉 PDE3에 작용해 심장의 혈관을 지나치게 이완시켜 저혈압이나 심장마비를 유발하고 PDE6에 붙어 시각 신호를 교란시켜 색각장애 등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비슷한 구조를 갖는 효소들 중에서 특정 효소에만 아주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약물을 설계해야 한다. 발기부전 치료제의 경우 PDE5만 꼭 집어내야 한다. 이것이 목표가 되는 효소의 정밀한 입체구조가 먼저 밝혀져야 하는 이유다. 이제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연구 성과를 통해 결합체의 구조가 밝혀지고 이미 출시된 치료제가 어떻게 PDE5에 작용을 하는지 알아냈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고 약효가 개선된 새로운 치료제를 발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 연구는 학술적인 가치 뿐만 아니라 산업적 가치도 크기 때문에 세계최고 권위의 종합과학 전문지 네이처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게재하게 되었다.

이렇듯 단백질의 구조를 기반으로 약을 발굴하는 과정을 구조기반 신약 발굴이라고 하는데, 이는 단백질의 입체 구조 정보를 활용하여 나노 분자수준에서 활성부위에 작용하도록 신약을 디자인, 합성하는 생산성이 높은 신기술로, 현재 다국적 제약 회사들에게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기술이다. 이번에 복합체 구조가 밝혀진 PDE5에 대해서도 이러한 구조기반 신약 발굴 기술을 통해 보다 개선된 치료제의 개발이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연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포항 방사광 가속기(PLS: Pohang Light Source)였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이 시설을 활용하여 확보한 다수의 질환 단백질 3차원 구조 정보를 이용하여 신약을 발굴하고 있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2002년 단백질 구조분석용 빔라인의 Detector를 최신 기종으로 교체하여 기증하기도 하였다.

최근의 신약 발굴 추세는 첨단 생명과학기술과 정보기술의 융합으로 가속화 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방사광 가속기, 수퍼 컴퓨터, 고자장 NMR 장비 등 신약 연구에 필요한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 또한 신약 연구는 창의적인 물질을 발굴하는 우수한 두뇌를 필요로 하는데, 한국에는 이러한 분야에 세계 최고 수준의 우수한 연구자들이 많이 있다. 특히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위의 인프라 및 우수 연구 인력을 활용하여, 구조 기반 신약 발굴 분야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창의력과 기술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세계적인 신약을 다수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차세대의 성장 동력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