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우리의 모습] 현미경에서 방사광 가속기까지
[2020우리의 모습] 현미경에서 방사광 가속기까지
  • 윤화식(가속기연구소 빔라인부 지원실장)
  • 승인 2000.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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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를 보게 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간다

2020년 11월 어느날 국내외 매스컴들은 일제히 보도했다. 김 일성 대학 ‘ㄱ’교수, 포항공대 ‘ㄴ’교수, 가속기연구소 ‘ㄷ’수석연구원이 금년도 노벨 α학상의 공동수상자로 결정되었다고. 그들은 방사광을 이용하여 수년 전에 β구조를 밝혀낸 공로를 인정 받은 것이다. 당시 ‘ㄱ’교수는 김책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포항공대의 ‘ㄴ’교수 연구실에 post-doc이었고 ‘ㄷ’박사는 가속기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었다. 물론 이같은 일이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뒤에서 말할 몇 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현미경이 발명되고 나서 과학자들이 얼마나 흥분했었나를 생각해 보자. 그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그 세계의 경이로움에 놀라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광학현미경은 가시광선의 파장이 약 0.5㎛이기 때문에 그보다 작은 물체를 보지 못한다. (물론 그 후로 전자현미경이 등장했지만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사용에 한계가 따른다.) 사물을 관찰하기 위해서 빛이 필요한데 그 파장이 관찰대상의 크기보다 짧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시광선은 빛의 스펙트럼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적외선에서 가시광선과 자외선을 거쳐 X선에 걸치는 넓은 스펙트럼의 빛을 기존의 광원에 비할 수 없는 강도로 제공하는 것이 방사광가속기이다. 따라서 광학현미경의 한계를 넘어 1Å에 이르는 미시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새로운 현미경이 방사광가속기이다. 방사광가속기의 탄생은 광학현미경 이상으로 넓은 분야에서 과학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그 예로 살아있는 모기의 내부를 1㎛의 공간분해능으로 촬영한 비디오를 지난 5월 12일에 전남 화순에서 열린 곤충학회에서 상영했을 때 곤충학자들의 표정은 한마디로 신기하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전자현미경으로는 살아있는 곤충을 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내부를 보기 위해서는 sample을 slice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광학현미경이나 방사광가속기의 공통점은 단순한 사실이다 도구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면 반드시 기대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들이 발견되고 이어서 새로운 과학이 출현하는 것이다.

방사광가속기의 본격적인 이용은 1980년대에 시작되어 1990년대에 포항가속기(Pohang Light Source)를 포함한 제 3세대의 가속기들의 가동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는 주로 빛의 강도를 키우는데 주력하여 기존의 검출기가 포화되는 경우가 적지않다. 따라서 향후 검출기와 X선 광학의 발전은 방사광의 응용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포항공대가 요즘 들어 침체되어 있다는 얘기를 교직원을 통하여 가끔 듣는다. 세상은 변하며 어느 조직이나 그 변화를 피할 수 없다. 다만 주변의 변화에 적극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처하여 살아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항공대가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발판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방사광가속기이다. 우리와 비슷한 규모로1980년대에 가동되기 시작한 미국의 방사광원인 NSLS에서 1999년 한 해에 나온 ‘Nature’의 논문이 11편이 넘으며, ‘Physical Review Letters’에는 24편이 출판되었다. 첨단과학의 도구로서 방사광가속기의 잠재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통계이다.
포항방사광가속기는 범국가공동연구시설(national users facility)이다. 따라서 남북한 사이의 연구교류가 가능해지면 곧 북한의 과학자들도 방사광을 이용하게 될 것이며 남북한 과학자들의 공동연구도 자연스럽게 시작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NSLS와 PLS의 차이는 저변 즉, ‘human resources’일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시설도 결국 사람이 다루는 것이므로 그 생산성이 인적자원의 질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포항가속기연구소가 속된 말로 뜨고 이와 함께 포항공대가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뜨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적자원의 확보와 포항공대 경영진의 지속적인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며칠 전 포항가속기연구소의 국내자문위원회가 열렸었다. 매년 열리는 이 자문위원회에서는 국내 원로 과학자들이 모여 가속기연구소의 주요 현안에 대하여 논의한다.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어느 원로의 말이 귀를 때린다. “포항가속기연구소의 (국내외에서 학위를 받은) 박사급 소원(所員)들이 포항공대 기술직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밤 늦도록 연구를 해도 보수를 많이 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런 조건으로 어떻게 좋은 사람들을 데려 오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