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풍경 - 아일랜드의 꿈] 작지만 그 힘은 이미 거대한 나라
[지구촌 풍경 - 아일랜드의 꿈] 작지만 그 힘은 이미 거대한 나라
  • 백정현 기자
  • 승인 200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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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 분쟁과 함께 예술적 영감 뛰어난 낭만의 섬나라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로 알아보려 하지 않았던 나라들이 많습니다. 이런 나라들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보다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아름다운 에머랄드의 섬. 아니 그전에 영화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단골악역들의 집단인 IRA의 끊임없는 테러행위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아일랜드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실제 이 나라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낭만이 있으며 우리와 비슷한 ‘한’이 있고, 그것을 극복한 의지가 있다.

공식 국호는 아일랜드 공화국(The Republic of Ireland). 한반도의 약 1/3에 불과한 면적에 인구는 3백 70만명인 작은 나라. 그러나 이 조그만 나라의 수출액은 남한의 절반수준에 이른다. 19세기 중엽까지 8백만 정도였던 인구가 심한 기근으로 인해 6백만으로 줄어들고 현재는 그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전 세계 영어권 국가에서 아일랜드계 인구는 4천만명을 헤아릴 정도다. 또한 이 나라는 내부적으로 분단이라는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비록 북한과는 달리 영국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때때로 무력감을 드러내긴 하지만…

이 조그만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BC 6천년경으로 추정된다. 이후 독실한 카톨릭 문화를 이루지만 9세기의 바이킹, 12세기의 노르만족의 침입에 이어 영국의 침투까지 아일랜드는 외침에 시달려야 했다. 1801년에는 영국·아일랜드 연합왕국이 탄생하였으나, 아일랜드의 독립을 바라는 구교도와 영국에의 종속을 원하는 신교도 간의 대립으로 인해 아일랜드는 화약을 지고 있었다. 이 불씨는 아직도 남아서 북 아일랜드의 독립, 즉 아일랜드의 재독립을 놓고 크고작은 분쟁을 퍼뜨리고 있다. 이 중심에 있는 세력이 IRA(Irish Republican Army : 아일랜드 공화군)이며 이들의 정치조직이 게리 아담스가 당수로 있는 신 페인 당(Sinn Fein : ‘우리들 자신’이라는 뜻)이다. IRA는 오랜 테러활동 후 1994년 극적으로 휴전을 선언하였으나 이후 ‘Real IRA’, ‘Continuity IRA’등의 테러활동으로 북 아일랜드 문제는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999년 12월에는 북 아일랜드 자치정부가 수립되기도 하였으나 이것도 계속된 테러활동으로 금년 2월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금년 5월 IRA가 무기사찰을 수용함으로써 5월 29일 북 아일랜드의 자치정부가 부활하였고, 이에 따라 북 아일랜드 평화협상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러한 ‘반골과 폭동의 나라’라는 역사가 아일랜드의 문화의 중심사상을 형성하는 배경이 되었으며, 수많은 예술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나온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여섯 명. 그 중에서도 문학상 수상자가 네 명이나 된다. 1923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예이츠(W.B.Yeats)는 “1916년 부활절”이라는 시에서 아일랜드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제국주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인식을 내비치고 있다. 이사도라 덩컨이 “당신의 두뇌와 나의 외모를 닮은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며 청혼하자 “나의 외모와 당신의 두뇌를 닮은 아이를 낳으면 어쩌려구”라며 거절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한 버나드 쇼(G.B.Shaw)는 1925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사무엘 베케트(S.Beckett) 역시 1969년 노벨상을 수상했으며, 히니(S.Heaney)는 1995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라는 평을 듣는 “율리시스(Ulysses)”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J.Joyce) 역시 아일랜드 출신이며, 어렸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J.Swift)도 아일랜드 출신이다.

이러한 유명한 문학가들보다도 아일랜드와 좀더 친해지게 되기 위해서는 아마도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한 연예인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근작 “스타워즈 에피소드 1”에서 콰이곤 진 역을 소화한 리암 니슨은 이미 “쉰들러 리스트”의 오스카 쉰들러로 우리에게 연기파 배우로서 널리 알려졌다. 그는 “마이클 콜린스(Micheal Collins)”에서 실존인물인 마이클 콜린스 역을 연기하기도 하였다. 또한 내한방문시 감기에 걸려 그 자신의 이미지에 손상을 주었던 제 5대 007 피어스 브로스난도 역시 아일랜드 출신이다.

아일랜드 출신 가수들은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다. 게일족의 후손으로서 아일랜드의 정서를 세계에 퍼뜨린 엔야(Enya)가 있고, IRA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악마와 싸우자며 공연 도중 교황의 사진을 찢어버리는 등 많은 뉴스를 뿌렸던 `대머리 여가수’ 시나드 오코너(Sinead O、Conn-or)가 있다. 오코너는 ‘20세기 마지막을 장식한 아일랜드 폭동’, ‘아일랜드산 폭격기’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일례로 그녀의 노래 “오토바이를 탄 흑인 소년들”에는 ‘대처수상이 TV에 나와 천안문사태의 학살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군. 똑같은 명령을 자신도 하달하면서 화내는 것은 이상하기만 해.’라는 구절이 있다. 이와는 다른 분위기의 가수도 있다. 이디오피아 난민을 위한 대규모 기금마련 콘서트를 기획하고 전 세계 자선공연의 바람을 불러일으켜, 노벨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으며 대중음악인으로서는 최초로 ‘성자’에 추대된 인물인 밥 겔도프(Bob Geldof) 역시 아일랜드 사람이다. 우리에게는 몇 년전 무삭제판으로 재개봉된 “핑크 플로이드의 벽(Pink Floyd The Wall)”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인물로 기억된다. 80년대 최고의 락밴드라는 평을 듣는 U2 역시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4인조 밴드이다. 고국 아일랜드의 분단과 전쟁은 그들 음악의 가장 주된 테마가 되곤 한다. ‘투쟁이 시작됐어. 많은 사람이 죽어가지만 승리하는 자가 누구인가. 참호가 파이는 것은 우리 가슴속이고 어머니의 자식 형제들 누이들이 찢어지고….(Sunday Bloody Sunday)’ 이 노래에서 U2는 종교의 차이 때문에 나라가 남북으로 갈려 끝없이 다투는 것을 두고 ‘오늘밤에라도 우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외에도 요즘 인기를 끌고있는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 보이존(Boyzone)등도 아일랜드 출신이다.

또한 아일랜드는 세계 최초로 위스키를 제조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적어도 1172년 이전부터 아일랜드는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고 이것이 스코틀랜드 등지로 퍼져나가면서 위스키를 세계의 술로 만들었다. 이제는 Jameson등이 전통적인 Irish Whisky의 명맥을 잇고 있다.

1998년 10월 16일 구교측인 사회민주노동당(SDLP) 존 흄 당수와 신교측인 얼스터 통일당(UUP) 데이비드 트림블 당수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되었다. 산발적인 테러행위에도 불구 북 아일랜드 문제를 대화로 이끌어낸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1969년부터 대략 3천 2백명이 목숨을 잃은 북 아일랜드 분쟁이 해결되는 날, 아일랜드의 가수, 배우, 문인들 뿐 아니라 전 아일랜드 전사들이 그들의 국가 “전사의 노래”를 흥에 겨워 부르는 날 그들의 피로 물든 역사는 새 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