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 어떻게 볼 것인가] 21세기는 인류문화의 대 전환점으로 기억될 것
[과학문화, 어떻게 볼 것인가] 21세기는 인류문화의 대 전환점으로 기억될 것
  • 김제완 / 과학문화진흥회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0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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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문명은 우리들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우리들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고 우리들의 정서에도 파고드는 ‘과학문화’를 이룩하고 있다. 코페르닉스, 갈리레오를 거쳐 뉴턴이 확립한 우주관은 우리들 인간의 위치를 다시 한번 생각케 했다. 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비과학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 우리의 세상 전부라고 생각한 이 땅, 즉 이 지구도 그 수많은 별들처럼 우주에 떠있고 그나마도 태양이라는 별 주위를 맴도는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인간의 생각을 더 겸허하게 만들었다. 달나라에는 토끼가 있다는 미신을 깨고 무지개는 하늘나라로 가는 다리라는 망상에서 벗어나 ‘이유’있는 사고의 틀을 다져나가게 된 것이다.

과학의 발달 따라
세계관도 변화 맞아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이끌어오고 우리들의 생활도 문화도 이를 바탕으로 서서히 그러나 뚜렷이 과학문명으로 바뀌고 이를 토대로 ‘과학문화’역시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신에만 의존하는 자연관이 바뀌고 왕의 권위를 믿고 따르는 사회 역시 과학적인 법률을 바탕으로 하는 법치국가로 변천해 나갔다. 19세기를 거치면서 눈에 보이는 움직임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를 바탕으로 한 과학으로 변천하는 동안 사회 역시 이를 따라 변하고 20세기는 누가뭐라 해도 전기문명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와 발 맞추어 미시의 세계를 바탕으로 하는 양자론적 과학이 싹트면서 우리들의 과학문화는 또다시 큰 변화를 겪는다.

뉴턴적 사고에서는 오늘의 현실이 내일을 결정하는 인과관계를 의심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과학에서는 이러한 결정론 대신 확률적인 관계를 허용하는 더 느슨한 관계를 인정하고 이를 받아 들였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반도체를 이해하고 이들을 소재로 한 컴퓨터를 통해서 우리들의 생활 자체는 큰 변화를 겪으면서 정보화시대로 접어들었다. 미시의 세계에 대한 연구는 생명체의 이해에도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와서 DNA조작을 통하여 신의 권위에 도전마저 하고 있다. 과학은 또한 우리가 보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놓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따로따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결합된 4차원 시공(時空)이란 상대론적인 사고 역시 ‘문화’의 틀을 바꾸어 놓았다. 사차원 입방체의 3차원 단면인 초 십자가(超 十字架 : hyper cross)에 매달린 예수의 상을 그린 ‘다리’의 작품(뉴욕시 미술관 소장)이 나오고 피카소로 상징되는 입체파의 그림들은 사물의 앞뒤를 평면에 그리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문화 역시 그렇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웰스의 ‘타임머신(Time Machine)’, 아봇의 ‘평면의 나라(Flatt Land)’를 위시로 공상과학소설이 문학의 한 장르로 등장했고 칼 세이간의 ‘코스모스’ 등 본격적인 대중과학을 통하여 우리들의 뇌리에 웅장하고 신비로운 우주의 영상을 심으면서 종교가 아닌 다른 뜻에서 옷깃을 여미고 자연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문화영역이 등장하기도 했다. 과학은 음악과 체육에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자기타, 헤비메탈(Heavy metal) 음악은 과학을 통한 20세기 후반기의 음악적 표현이고 높이뛰기, 수영복, 육상화를 통하여 신소재가 체육에도 스며들어 2000년 올림픽 선수촌의 독특한 분위기의 문화를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구체적이고 부분적인 과학문화보다는 과학문화는 좀 더 전체적이고 보편적으로 우리들 생활 속을 파고들고 있다.

20세기 산업의 원동력인 반도체라는 ‘크리스탈의 불길’이 석유와 증기기관을 대치하여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불과 10여 년의 세월이었지만 인터넷은 우리들 생활에 깊이 파고들고 반도체 칩을 이용한 자동장치들이 이제는 우리들 안방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문화 속에 스며들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는 상상 이상의 세기

과학문화는 이제 부분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다. 인터넷은 우리의 사고를 바꾸어 놓았고 텔레비전은 안방문화로부터 청소년문화에 이르기까지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N세대, X세대 아이들은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구축했고 이들은 연역적 사고를 벗어나 확률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 예를 들면 구세대는 ㄱ이 맞으니 ㄴ이 맞고 따라서 ㄷ도 옳다는 연역적인 논리를 따르지만 N세대들은 ㄱ, ㄴ, ㄷ 등 여러 가지가 서로 모순이 없으니 이들을 받아들인다. 마치 양자론에서 기본적인 몇 개의 틀을 잡고 이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합리적인 결과를 얻기에 양자론이 상식에는 어긋나지만 기능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변화하는 물결 속에서 21세기의 과학문화를 전망하기란 어려울 뿐 아니라 틀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나의 편견을 이야기해 보면 이렇다.

20세기의 전기문명은 생명과학을 틀로 한 문명으로 바뀌고 따라서 과학문화 역시 이런 틀을 따를 것이다. 사고의 틀에서도 아인슈타인의 4차원 시공과 양자론적인 사고를 대치할 다차원적이고 단순한 확률론적인 차원을 넘어선 사고로 대치될 것이다. 예를 들면 ‘초끈이론’은 10차원 세상을 생각하고 양자론에서는 인과관계가 불확정성 범위내에서는 성립하지만 초끈이론에서는 이런 생각마저 무너질 것이다.

지난 9월달에 다녀간 스티브 호킹 박사가 말한 것처럼 100만년에 한 비트(bit)가 추가된 우리들의 DNA 정보가 이제는 곧 몇시간에 하나의 정보를 추가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 시대의 과학문화가 어떻게 될지 전망한다는 것은 만용에 가까운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큰 변화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우주를 빛을 포함한 전자파로 보는 시대가 지나가고 제 3의 빛인 중성미자로 보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우주 깊숙한 곳의 영상과 태양같은 별의 내부를 보면서 또 한번 대우주의 오묘함에 놀랄 것이고 그 옛날 코페르닉스의 우주상이 미신을 타파하고 오늘날의 과학문화를 가져왔듯 21세기 역시 인류문화의 대 전환점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