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기획] 네트워크 이론으로 풀어본 인터넷 대란
[학술 기획] 네트워크 이론으로 풀어본 인터넷 대란
  • 정현석 기자
  • 승인 2003.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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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세상’에는 허브의 도미노 붕괴라는 ‘아킬레스 건’ 있다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아 답답했어요.” “인터넷 강국 우리나라가 암흑 세상이 되기까지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지난 1월 25일 발생한 ‘인터넷 대란’은 인터넷 세상임을 실감케 한 사상 초유의 사이버 테러였다.

25일 오후 2시경, 인터넷 속도가 점점 느려지면서 네티즌들이 접속 시간 초과로 원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을 하지 못했다. 이후 특정 포트를 통한 패킷이 급증하면서 KT 혜화전화국의 DNS(도메인네임시스템) 서버를 비롯한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의 서버가 트래픽 과다로 다운되기 시작하면서 사이버 테러가 현실로 다가왔다. 그 다음날, 정부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서버 관리자 및 보안 관계자들은 인터넷 망을 복구하느라 부산을 떨었지만 네티즌들은 인터넷 대란의 여파로 인한 불편을 계속 겪어야 했고, 인터넷 대란의 원인은 서버관리자들의 ‘보안 불감증’이란 미명 아래 SQL 슬래머로 명명된 인터넷 웜으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번 인터넷 대란은 표면적으로는 인터넷 웜에 의한 DNS 서버 과부하로 DNS 서버가 다운되어 일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자리잡고 있다. 거미줄 같이 연결된 인터넷 네트워크가 인터넷 웜에 의해 단지 수시간만에 무력화된다는 것 자체가 인터넷 네트워크 구조의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 바라바시와 그의 책 ‘링크’

21세기 신개념 과학인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이자 권위자인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Albert-Laslzlo Barabasi)는 ‘링크’ 라는 저서에서 ‘인터넷 대란’의 원인을 인터넷 네트워크 구조의 문제점에서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링크’가 우리들에게 제시하는 ‘네트워크의 세상’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누구나 여섯 사람만 거치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만난다.’ 라는 말은 네트워크가 세상을 얼마나 가깝게 연결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외국의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주변 사람들을 통하면 주변 사람들의 인맥을 통해 서로 알게 된다. 무한한 네트워크인 인터넷도 평균 19번의 클릭만으로 링크를 통해 다른 어떤 웹 페이지와 연결된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이나 웹 페이지 같은 ‘노드(node)’들은 링크를 통해 서로를 연결하여 한 네트워크, 즉 하나의 세상을 이루어 나간다.

이제 우리는 각 노드들을 점으로 하고, 링크를 각 노드들을 이어주는 선으로 생각한다면, 하나의 모델을 가정해볼 수 있다. 각 노드들이 주위의 노드들을 무작위적으로 선택하여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는 모델인데, 이것이 바로 1950년대 후반 폴 에르되스와 알프레드 레니가 설명한 무작위 네트워크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 엄청난 수의 웹 페이지들도 무수한 링크들이 무작위적으로 이어진다면 한 네트워크, 즉 하나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 무작위 네트워크 모델은 관계가 긴밀한 노드 간에는 강한 링크로 하나의 클러스터를 이루고, 이 클러스터들을 약한 링크들이 서로 연결하여 지름길 역할을 함으로써 노드 간의 평균 거리를 급격히 단축시키게 되는 와츠-스트로가츠의 모델로 더욱 구체화되었다.

한편 사회에서 인간 관계가 넓고 사람들을 사귀는데 예외적인 솜씨를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인터넷 상에서도 소수의 유명 웹사이트들은 주변 노드와의 링크를 독점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여느 노드와 다르게 특이하게 많은 링크를 지니는 허브(Hub)이다. 일례로, 인터넷 전체의 90%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문서는 10개 이하의 링크를 받고 있지만, 몇몇의 극소수의 페이지는 100만개 이상의 링크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허브는 주위 노드의 링크들을 독점하게 되고, 허브들은 더욱 커져서 다른 노드들의 지배를 더욱 확고히 하게 된다. 이 허브의 존재는 독점적인 노드의 존재 가능성이 거의 없는 무작위 네트워크에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에 우리가 노드의 연결선 수를 한 노드의 거리에 따라 나타낸다면, 허브 주위의 노드 수에 대한 그래프는 무작위 네트워크의 가운데의 종형 꼴과 큰 차이를 보이는 멱함수 꼴을 따르게 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네트워크는 성장(growth)과 선호적 연결(preferential attachment)이라는 두 개의 법칙을 따른다. 즉, 각각의 네트워크는 작은 노드로부터 출발하여 새로운 노드가 추가되며 확장되는데, 이 노드들은 어디를 링크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이미 많은 링크를 갖고 있는 노드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척도 없는 네트워크(scale-free)’로, 인터넷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모델로 평가 받고 있다.

하나의 세상을 이룸에 따른 이중성

그러나 ‘링크’에서는 이 척도 없는 네트워크에 치명적인 아킬레스 건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네트워크는 몇몇 말단 노드들이 제거된다 하더라도 링크가 주변의 노드로 우회하여 쉽사리 붕괴되지 않고 제 기능을 유지한다. 반면 가장 큰 허브를 제거하고, 그 다음의 큰 허브들을 제거해 나갈 경우 네트워크가 갑자기 붕괴되기 시작한다. 단지 일부의 허브를 제거함으로써 주위의 허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허브에 연결된 링크들이 깨지면서 노드들이 고립되어 버린다. 각 노드들이 자신이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제공함으로써 하나의 세상을 이루는데 큰 공헌을 하는 허브들이 정작 외부의 공격에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네트워크의 아킬레스 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인터넷 대란’도 같은 맥락으로 살펴 볼 수가 있다. 인터넷 웜이 해외로부터 우리나라에 유입되기 시작했을 때는 전체 네트워크에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크기가 고작 376바이트에 불과한 인터넷 웜은 자신의 빠른 증식성 뿐만 아니라 전체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급속히 퍼져나가 각 서버 컴퓨터를 감염시켜 다량의 트래픽을 유발하게 하였다.

이후 이 다량의 트래픽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허브 중의 하나인 KT 혜화 전화국의 DNS서버에 무수한 신호가 집중되게 하여 DNS서버를 마비시킨 뒤, 워낙 많은 트래픽이 계속 작은 허브에 해당되는 다른 서버들로 돌아가면서 작은 허브들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붕괴, 결국 인터넷 망이 마비되고 만 것이다. 만약 대형 허브들이 다수 존재하여 트래픽을 효율적으로 분산할 수 있었다면, 하나의 허브가 붕괴되더라도 다른 허브들이 급격히 붕괴되는 도미노 현상으로까지 이어지지 않고 네트워크의 복구가 가능했을 것이다.

현재의 인터넷을 있게 한 ‘척도 없는 네트워크’는 대형 허브의 도미노 붕괴라는 아킬레스 건을 지니고 있음이 이번 ‘인터넷 대란’을 통하여 명백히 드러났다. ‘링크’가 제시하고 있는 네트워크의 세상. ‘링크’는 ‘인터넷 대란’의 이면에 네트워크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자리잡고 있음을 훌륭히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도 ‘인터넷 대란’에서 네트워크 구조의 신비를 다시 발견해 보고, 더 나아가 ‘링크’가 주는 네트워크 과학의 지적인 즐거움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