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탐구] '두 문화' 논쟁의 현재적 의미
[집중탐구] '두 문화' 논쟁의 현재적 의미
  • 김명진 / 서울시립대 강사
  • 승인 2002.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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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위기의 본질을‘두 문화’에서 찾는 시각은 과연 타당한가

오늘날 인문-사회과학계와 자연과학-공학계간의 상호무지와 오해, 반목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쓰이는 ‘두 문화(The Two Cultures)’라는 개념은, 영국의 C. P. 스노우가 1959년에 행한 리드 강연 ‘두 문화와 과학혁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두 문화’ 현상의 기원을 찾자면 계몽사조에 반발해 등장한 19세기 낭만주의 운동에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겠고, 그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시피 스노우가 이 문제를 공론에 부쳤던 최초의 인물도 아니었으나, 문제를 정식화하고 이에 대해 대중적 주목을 불러일으킨 측면에 있어 스노우와 그의 책 <두 문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스노우는 실험과학자로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으나 이후 소설가 및 평론가로 방향을 전환했고, 2차대전기를 거치면서부터 행정관료와 민간사업체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가 ‘두 문화’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역시 과학자와 ‘문학적 지식인’ 그룹 사이를 왕복하면서 상이한 문화에 접해 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흔히 스노우는 ‘두 문화’ 현상의 문제점을 ‘중립적인’ 위치에서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필자 역시 <두 문화>를 실제로 읽기 전까지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는 오해의 소치이다. 스노우가 비록 <두 문화>에서 과학자들의 인문학적 소양 부족과 기초과학자들의 응용과학에 대한 편견 등 다양한 차원의 ‘상호’무지와 몰이해의 문제를 나란히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그가 가장 중요하게 문제삼았던 것은 “서구 세계를 관리해 온” 문학적 지식인들(‘전통 문화’)의 과학에 대한 무지였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갈등에서 기인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자신의 리드 강연 제목을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라고 붙일 생각이었다는 스노우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그는 국가간의 빈부격차를 낮춤으로써 세계의 비참과 고통을 경감하는 것을 절대절명의 당면과제라고 파악하고 있었고, 이는 서구의 응용과학과 기술을 제3세계에 적용하는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의 확산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그가 생각하기에, 문학적 지식인들의 과학에 대한 무지는 바로 이러한 시도를 가로막는 근원이었고, 따라서 비과학자들의 과학적 소양 증가를 통한(그 역이 아닌) 두 문화의 극복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스노우의 입장은 초기에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고급 인문문화를 대변하는 F. R. 리비스 같은 이들의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다. 리비스는 스노우가 문학적 지식인들 전체를 ‘타고난 러다이트’라고 싸잡아 비판하는 데 격분했고, 스노우가 값싼 물질주의의 대변자 노릇을 하고 있다며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어조로 씌어진 리비스의 반론은 이후 ‘스노우-리비스 논쟁’으로 알려지게 된 길고도 격렬한 대립의 단초가 되었으며, 이는 그 자체가 일종의 ‘두 문화’ 갈등을 보여주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제 씌어진 지 40년이 넘은 스노우의 논지가 갖는 현재적 의미는 무엇일까? 1993년에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서 나온 칸토판 <두 문화>의 서문에서 스테판 콜리니는 스노우가 미친 영향과 그의 논의가 지닌 한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하고 있다. 콜리니에 따르면, 스노우의 논지 중 어떤 측면(전문화의 심화를 바라보는 우려섞인 시각, 교육에 대한 강조 등)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장소를 넘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지만, 다른 어떤 측면은 그렇지 못했다. 예컨대 스노우는 신기술의 적용에 힘입은 제3세계의 산업화가 희망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을 갖고 있었지만, 이후 밝혀진 사실들에 의해 이제는 그와 같은 낙관을 공유하기가 힘들어졌다. 서구식 산업화가 유일한 진보의 길이라고 믿었던 사회진화론적 가정은 이미 설 자리를 잃었고, 서구 과학기술의 ‘이식’을 추구했던 대다수 제3세계 국가들의 부정적 경험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스노우는 ― 그와 논쟁했던 리비스도 ― 인문문화와 과학문화를 구분하는 선명한 경계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이후 과학사ㆍ과학철학ㆍ과학사회학과 같은 과학학 분야들의 발전과 더불어 과학 활동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이제는 이 둘을 가르는 어떤 ‘본질적인’ 차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다. 사회구성주의 과학학의 의미를 놓고 일군의 과학자ㆍ과학철학자들과 과학사ㆍ과학사회학자들이 서로 맞붙은 1990년대의 과학전쟁(Science Wars)은 이를 잘 보여 준다.

흔히 과학전쟁은 ‘두 문화’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스노우-리비스 논쟁의 재판인 것처럼 이해하는 시각이 많았지만, 실상 그 내용을 따져보면 인문문화와 과학문화의 선명한 구분이 가능하며 또 필요하다고 보는 진영과 이 둘간의 본질적인 구분이 무의미해졌다고 믿는 진영간의 논쟁에 가깝다는 점에서 논쟁구도상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고 하겠다.

‘두 문화’의 간극이 가지는 문제

한국에서의 ‘두 문화’ 논의는 그간 썩 활성화된 편은 못되었으나, 최근들어 논의가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여기서 논의의 주류는 (문제를 대칭적으로 검토하기보다는) 스노우의 ‘원래’ 논지를 좇아 인문문화(내지는 정책관료 및 사회 일반)의 과학에 대한 무지를 개탄하고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과학적 소양의 증가를 통한 ‘두 문화’의 극복이 필요함을 주장하는 시각이다. 이러한 논의축은 최근 이공계위기론이 제기되고 ‘두 문화’ 현상이 그 원인으로 널리 지목되면서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두 문화’와 이공계위기를 연결짓는 식의 논의구도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으며, 이를 ‘과학문화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특수한 한국적 상황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여러 논자들에 의해 누차 지적되었다시피, 오늘날의 이공계위기는 자연과학ㆍ공학이 인문ㆍ사회과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홀대받아 생겨난 것이 아니라 경영학, 법학, 의학 등의 소위 ‘돈되는 학문분야’를 쫓는 사회 일반의 분위기가 반영되어 생겨난 것이며, 오히려 대다수의 인문ㆍ사회과학 분야들이 여러 해 전부터 이런 문제를 앞질러 겪어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상당수의 서구 선진국들이 이미 1960년대부터 비슷한 문제를 겪어왔음을 감안할 때, ‘과학문화에 특히 무지한’ 한국적 특수성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렵다(그리고 과학지식의 양이라는 잣대로 보더라도 한국의 일반대중이 선진국에 비해 과학에 더 무지한 것도 아니다).

어찌보면, ‘더 많은 돈’만을 쫓는 학문 전체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할 문제의 본질을 ‘두 문화’에서 찾는 시각이야말로 한국사회에 잠재한 ‘두 문화’ 갈등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지표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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