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과학강국의 대전제, 우주공간 활용기술
21세기 과학강국의 대전제, 우주공간 활용기술
  • 최기혁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팀장
  • 승인 2002.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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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의 진출은 중세 신대륙을 찾기 위한 대양으로의 진출이라고 볼 수 있다. 중세 이래로 바다와 하늘을 지배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했듯이 21세기는 우주를 지배한 국가가 세계의 주도권을 잡는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세계 과학사에서 흥미로운 과제인 16세기 이후 동양(중국)이 유럽에게 과학이 뒤지게 된 이유는 해양으로 진출을 못한 것이 그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명대 중국의 위대한 제독 정화가 길이 100 m가 넘는 대형범선 선단을 이끌고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섬까지 원정을 다녀올 정도로, 중국은 능력은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해양진출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이후 서양에 과학문명이 뒤떨어져 19세기와 20세기에 거의 모든 동양 각국이 서양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막오르는 우주에서의 패권쟁탈전

일반인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우주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의 우주개발 동향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1996년 공군이 발표한 “Vision 2020” 보고서와, 2001년 미국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의회 우주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중세의 유럽이 바다를 지배하여 세계의 지배권을 획득했던 것처럼, 미국은 21세기에도 세계의 지배권을 확실히 유지하기 위하여 우주 공간을 군사적 산업적으로 활용하는 우주패권을 추구하여야 하며, 이를 위하여 1967년 체결된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조약도 파기할 수 있다”고 천명하였다. 군사적 활용을 위하여 기술개발을 시작하면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인력이 투입되어 결정적인 기술상의 돌파(Break Through)가 일어나는 것을 항공기를 위시한 여러 사례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 세계는 바야흐로 우주에서의 패권 쟁탈전이 전개되려는 순간에 와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 진출에 가장 핵심적인 기술은 우주공간 활용기술이다. 즉 우주공간에 인간이 장기간 체류할 수 있고, 군사 산업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우주패권 추구에 있어서 핵심적인 기술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미국은 주도적으로 선진 15 개 국가들과 협력하여 국제우주정거장 (ISS; International Space Station)을 2005년 완성을 목표로 건설 중에 있는 것이다. 필자는 한국이 우주공간을 활용 (ISS에 참여 포함)하기 위한 Project 실무를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우주공간의 활용을 위해서는 인간의 장기체류에 대한 문제점들이 최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인간의 신체가 우주 무중력 상태에 놓이게 되면 신체는 스스로의 적응에 의하여 뼈와 근육이 약해지게 된다. 뼈의 골밀도는 1개월에 약 1% 정도 감소하게 되어 장기 우주체류에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야기된다. 현재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인데 만일 이러한 골밀도 감소의 메카니즘이 밝혀지고 치료제가 나온다면 우주에서의 장기체류에 결정적인 전기가 됨은 물론 노년층의 골다공증 치료제도 개발 가능할 것이다. 우주의 방사능(Cosmic Ray)은 지상에서 DNA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양의 1/250 밖에 불과하지만 무중력과 상호 복합작용을 일으켜 인체세포에 DNA 변형의 악영향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좁은 우주선 공간에서 장기간 체류할 경우 인간은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도 인류의 우주 진출에 당면현안이다.

우주공간 활용위한 주요과제

물리적인 측면에서 우주공간에서는 중력이 없어지므로 이로 인한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큰 문제점을 야기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기포의 문제이다. 지상에서 기포는 주위 액체보다 훨씬 가벼워 발생즉시 위로 떠올라 없어지지만, 무중력 상태에서는 무게가 없어지므로 액체 중에 발생한 기포는 움직이지 않게 되는데, 현재 이를 없앨 확실한 방법은 없다. 이는 전기영동 실험이나, 합금용융실험 등에 골치 아픈 문제를 야기한다. (필자는 초음파를 이용한 제거 방법을 구상 중에 있다.)

우주 무중력 상태에서 열대류 현상은 없어지지만, 액체 표면에서 농도의 차이로 인하여 표면장력의 차이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대류가 일어나는 현상이 있는데 이를 마랑고니 대류(Marangoni Convection) 현상라고 한다. 이 현상은 대류가 없음을 가정한 많은 우주실험에서는 골칫거리지만 이를 활용하는 새로운 우주실험도 등장하고 있어 장단 양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주에서 재료의 용융실험을 할 때, 용융재료와 용기의 젖기 궁합이 맞으면, 용기의 아주 미세한 틈으로 용융재료가 새어나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두 재료사이의 젖기 궁합을 맞지 않도록 하여 해결할 수 있다.

우주공간의 활용에서 가장 중요한 장점은 무중력, 정확히는 미세중력 (Micro Gravity; g/1백만)이다. 중력이 없어지므로 해서 지상에서는 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실험과 제품생산이 가능하게 된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무중력으로 인하여 열대류 현상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대류현상이 없어지면 지상의 실험에 비하여 크게 유리한 점이 많다. 예를 들면, 생명과학에서 완벽한 전기영동 DNA분리가 가능해져 게놈 프로젝트에 획기적인 발전이 기대되는 것 등이다.

무중력 환경을 이용하면, 완벽에 가까운 단백질 결정 성장이 가능하고, 임계점의 연구와 확산상수의 정밀측정이 가능해지며, 프랙탈 (Fractal) 차원이 낮은 즉 조밀하지만 내부 표면적이 넓은 솜같은 저밀도 물질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효율적인 단열재, 흡음제와 고성능 촉매제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완벽한 마이크로 구슬(직경 20 - 30 μ)을 만들 수 있는데 이는 사람의 혈관을 타고 다니며 간암 등의 환부에 약제를 운반할 수 있는 운반체로 활용될 수 있다.

우주 무중력 환경의 활용이 크게 기대되는 분야는 금속, 반도체 합금분야로, 무중력 하에서는 재료의 밀도차이가 없어지므로, 지상에서는 절대 섞일 수 없는 재료가 확산에 의하여 완벽히 섞일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새로운 성능을 갖는 합금과 반도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주개발, 국가우열 좌우할지도

이렇듯 우주공간의 활용은 21세기에 산업과 기초과학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콜럼부스의 탐험선단이 항구를 떠날 때 누구도 그것이 유럽의 해양지배와 세계패권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앞으로 50년 후 세계 국가의 우열이 우주개발 능력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매년 10월이 되면 불어오는 노벨 과학상의 열풍이 금년도에는 더 큰 충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일본은 3년 연속, 그것도 올해는 한 회사원을 포함한 2명이나 수상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앞으로 20 ~ 30년 후 인류의 우주공간 활용이 보편화 됐을 때, 여기에 큰 공헌을 한 과학자나 엔지니어에게 반드시 상이 돌아가리라고 본다. 국내 최고의 인재가 모인 포항공대 학생 여러분들이 앞에서 제시된 우주활용의 문제점을 해결하여 국가와 인류에게 큰 공헌을 하고 개인적으로 큰 영광인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