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초록 - 기술시대의 생명윤리
강연 초록 - 기술시대의 생명윤리
  • 문재석 기자
  • 승인 2002.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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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시대의 생명윤리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계명대 철학과 이진우 교수
당신은 태어나기를 바라는가, 만들어지기를 원하는가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윤리관은 변한다. 과거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는 학생들에게 이제는 교수와의 적극적인 토론이 요구되고 혼전순결을 중시하던 프로테스탄트의 나라 미국은 이제 고등학교에서 피임방법을 알려주며, 즐길 때는 즐기더라도 자신의 몸은 지키자는 가치관이 보편화되고 있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과거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정짓는 수준에서 윤리가 머물러 있었다면, 현대에 들어와서는 인간은 자신의 영향력을 자연에게까지 끼치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윤리관마저도 인간의 범위에서 확대된 환경윤리나 생태윤리로 확장되어 온 것이다. 생태계를 만들어 내거나 파괴할 수도 있는 인간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다른 생명들의 삶과 죽음을 거머쥔 신의 영역마저도 침범한 것이다.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창조'라고 하는 신의 고유영역을 다시 한번 침범하고 있다. 생명윤리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하지만 순수학문의 연구의 자유가 침해받아서는 안된다는 주장과 생명현상 만큼은 인간이 절대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 신성한 영역이라는 신념이 서로 한치의 물러섬 없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에 그 합의점은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지난 4일 목요문화 행사의 일환으로 있었던 이진우 교수(계명대 철학)의 '기술시대의 생명윤리'를 주제로 한 강연은 이러한 대립구도에 하나의 길을 잡아주었다. 약 한시간에 걸친 강연은 5단계의 화두로 나누어져 진행되었다. 계명대학교에서 영화철학을 강의하는 이 교수는 '생명공학은 꿈의 기술'이라 하는 제레미 리프킨의 말을 인용하며 강연을 시작하였다.

이 교수는 생명공학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술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담론들을 보았을 때, 문제가 그다지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현재의 생명공학이 내포하고 있는 담론들은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관점의 부재와 방향감각의 상실만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윤리적 관점의 부재는 극단적인 감정대립으로 치우친 철학과 과학의 대립에 그 원인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배아복제단계에서의 연구를 찬성하게 되면, 철학계에서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고, 반대하게 되는 경우에는 과학기술에 무지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현재의 분위기는 결국 아무런 윤리적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음성적인 연구와 이에 대한 오해가 난무하게 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리란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첨예한 대립은 그간 우리의 윤리관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던 휴머니즘이 과학기술의 영향으로 포스트 휴머니즘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휴머니즘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이원론적으로 해석하는 반면, 포스트 휴머니즘은 외면적 자연과 내면적 자연, 태어난 몸과 우리가 스스로 부여한 몸의 경계를 애매모호하게 그리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 또한 안게되는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이 교수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문제도 제기한다. ‘우리는 생명공학 시대에도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생명공학 시대에도 다른 사람을 자율적인 인격체로 대우할 수 있을 것인가?’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이 교수의 주장은, 유전자로 인위적으로 부여 받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권을 상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실존철학의 중심적 개념인 ‘다자인(Dasein)’에서 ‘디자인(Design)’으로의 변화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러한 변화는, 엄밀한 의미에서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문제는 생명공학 기술에 어느 정도 선을 그으면서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즉, 유전자 조작이나 인간 복제 수준의 적극적 우생학과 간세포 수준에서의 연구의 소극적 우생학으로 생명공학을 나눈 뒤에 소극적 우생학에 대해서는 자율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게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계와 철학계에서는 이 간세포 또한 인간이 되는 가능성을 지닌 것이기 때문에 배아단계에서의 세포를 연구하는 것도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라 주장하지만, 이것은 사실로부터 규범을 도출해 내는 오류를 범한 것이라 이 교수는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날 강연은 “미래의 부모들이 상당한 정도의 자율권을 요구한다면, 미래의 아이들에게도 자율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라는 안드레아 쿨만의 말로 마무리 지었다.

이 교수는 강연이 끝난 뒤 생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외부 환경과 끊임없이 물질교환을 하는 유기체를 일컬어 생명체라 생각한다”며 “외부와 그런 식으로 물질 교환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살아있다는 것은 그러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행위”라고 강조하며 이날 강연을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