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신과학 어떻게 봐야 하나
[연재기획] 신과학 어떻게 봐야 하나
  • 방건웅 / 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02.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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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적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연구흐름


최근 들어 신과학이라는 용어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낯설지 만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과학이란 역사나 종교와 달리 계속 발전하는 것이므로 항상 새로운 것인데 무엇이 다르다고 ‘신’자를 붙여서 차별화 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자면 현대 과학의 발전 배경과 그 밑에 깔린 과학철학을 살펴보아야 한다.

서구문명이 세계를 이끌어 가는 위치에 오르게 된 계기는 산업혁명이며 그 기초는 17세기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기술이 제공하였다. 이 시기의 과학기술은 물질론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의 기초를 제공한 데카르트는 우주는 정교한 시계와 같은 기계장치이므로 물리와 수학의 법칙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세계관은 기계론적 절대론적 결정론적 세계관이라고도 불린다. 이것은 곧 우주의 모든 운동은 기계장치처럼 예측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입력조건만 알면 결과물인 출력은 항상 일정하다는 것을 뜻하며 이를 원인 조건이 확정되면 그에 따라 결과가 자연히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결정론이라고도 한다. 수학적으로는 1:1로 대응하는 선형 관계라고 한다. 이를 절대론이라고도 하는데 관찰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있다는 것이 그 요체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물을 연구하는 방법론은 자연히 연구대상을 하나 하나 구성요소별로 해체하여 탐구하는 방식이 된다. 그 이유는 모든 기계적 장치는 1+1=2라는 선형관계를 만족하므로 구성요소로 해체하여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해체하여 기관, 동력전달장치, 조향장치, 전장부품 등으로 나누어 연구한 다음에 이들에 대한 지식을 종합하면 자동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과학계는 계속 쪼개고 쪼개는 미시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으며 이제 나노기술로 거의 그 극한에 다다르고 있다.

생명체의 비선형적 특성

물질론적 세계관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물을 정적인 구조체로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쪼개어서 연구하여도 연구방법론상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해체하여 연구하는 것은 곧 개체들 간에 경계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때문에 연구 결과 유도되는 법칙들은 주로 닫힌계에 대해 성립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접근 방법이 생물체에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탐구한다고 쪼갤 경우, 그 순간에 그 생명체의 역동적인 생명현상들은 사라진다. 생명체는 주위 환경과 에너지와 정보를 쉴새 없이 주고받는 열린계이다. 따라서 경계를 짓는 순간 죽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생명체가 기계장치와는 다른 비선형적 특성을 보인다는 것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 쉽게 말하면 1+1 = 2가 아니라 1+1 > 2 가 된다. 예를 들면 인체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인 세포들이 모여서 기관을 이루면 세포 차원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기능이 나타난다. 간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인 해독 작용은 아무리 세포들이 많이 모여 있어도 그러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세포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해도 이들이 조직화하여 간이라는 새로운 기관을 만들지 않으면 간 기능은 나타날 수가 없다. 이처럼 세포 차원에서는 예상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기능이 나타나는 현상을 ‘창발(創發)’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비선형적 현상은 자기조직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시간의 흐름과 연관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조직하여 상위 구조의 유기체를 이룬다. 자기조직하면서 순간 순간 수많은 가능성들 중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선택하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하다. 또한 모든 사물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실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창발적 특성은 생명체의 두드러진 특징으로써 모든 구성 요소들이 상호 작용하면서 협력하여 이루어내는 창조적 활동이다. 정적인 구조체라는 세계관에 대응하여 표현한다면 동적인 유기체가 된다.

이와 같은 유기체에 대해서는 앞서와 같은 요소환원주의적 접근이 불가능하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있는 그대로 놓고 접근하고 탐구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사물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방법은 뉴톤 역학적인 관점에서 출발하는 방법론과 다르기 때문에 신과학이라고 구별하여 부르는 것이다.

전통과학은 구별하자면 정적인 구조체를 다루는데 강하며 뉴톤역학이나 양자역학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관련 방정식들이 시간의 흐름과는 독립적이다. 구형의 대포알이 날라 가는 부분만을 찍은 비디오를 전진하면서 보는 것과 후진하면서 보는 것을 구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전진하면서 보면 대포알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날라 간다고 할 것이고 후진하면서 보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날라 간다고 할 것이다. 비디오를 후진시키는 것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인데 시간의 방향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과학은 대부분 동적인 생명 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이어서 시간 의존적이다. 동적 현상들은 시간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반대 방향의 현상이 일어날 수가 없다. 때문에 미시적 관찰에서 얻어지는 방정식과 거시적 관찰에서 얻어지는 방정식들 간에는 상호 연관성이 없다. 이는 독립적인 현상이라는 의미인데 열역학 1법칙으로부터 2법칙을 유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최근 들어 자연계가 기계적 장치라고 보는 관점보다는 에너지적 존재로서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유기적 조직체라는 관점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 실험결과로는 수소의 스펙트럼 천이 현상과 카시미르 힘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우주는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는 구조적 조직체라기 보다 에너지의 흐름 패턴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주목을 끌고 있다. 자연계의 에너지 흐름을 이해한다면 인류는 무한한 동력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가능성은 이미 정전기 유도 발전장치나 상온핵융합을 통하여 확인되고 있다. 참고로 오는 5월에 중국의 칭화대학교에서 제9차 국제 상온핵융합 학술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돋보기와 졸보기가 같이 있어야 하는 이유

지금까지 과학기술은 지나치게 물질론적인 입장에서 세밀하게 쪼개는 방향으로 연구하여 왔다. 이 결과 인류는 자연계의 역동적인 균형 현상에 대한 거시적 감각을 상실하였고 자연과 단절되면서 고립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물질문명의 폐해, 즉 환경 오염, 생태계 파괴, 인간 소외, 가치의 상실 등과 같은 현상들이 이것과 연관이 있다. 즉 물질문명의 근간이 되는 공학기술은 주로 폭발력(explosion)을 이용하는 것으로서 무질서 방향으로 흘러가는 기술들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거시적인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균형을 회복하게 될 때 무질서가 아니라 질서가 잡히는 방향으로 흐르는 힘(implosion)을 활용하는 지혜를 알게 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보다 풍요롭고 살아 있는 따뜻한 과학기술문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신과학은 과학기술의 신대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연구 방법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공학, 의학, 생물학 등등의 전 분야에 걸쳐 가능하다. 인류는 과학과 신과학의 융합과 상호 보완을 통하여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마치 돋보기와 졸보기가 같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