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탐구 - 사이버 공간에서 신음하는 한글
집중 탐구 - 사이버 공간에서 신음하는 한글
  • 박정준 기자
  • 승인 2001.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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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년 9월 10일(양력 10월 9일)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어언 555년이 흘렀다. 질곡많은 우리 역사와 함께 훈민정음, 즉 한글 역시 굴곡의 역사를 겪어 왔다. 탄생시부터 당대의 지배사조였던 중화(中華)주의에 거슬러 태어난지라 유산의 위기를 겪었으나(최만리의 상소), 근세에 들어 사회와 문화면에서 새로운 기운이 싹트며 근세 서민층 문학이 용솟음치는 견인차 역할을 했고, 일제의 한반도 강점 이후, 내선일체의 명분아래 한글 말살정책을 겪으며 고사(枯死)할 지경에 이르렀으나, 주시경, 최현배 같은 이의 노력으로 살아 남아 지금까지 우리 겨레의 생각과 감정을 담을 수 있는 훌륭한 그릇으로 기능해 왔다.

언어는 새로운 문화에 접촉하게 됨에 따라 점차 감염되고 변모해가기 마련인지라, 한글도 어휘면에서 창제 이후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중세까지는 대부분의 어휘가 중국으로부터 넘어 왔으며 근대 이후로는 서구문화의 수많은 개념들이 일본식 한자어의 모습으로 수입되었다. 근대화를 겪으며 이렇게 우리말이 변모되어 가는 과정을 두고 남영신 같은 분으로 대표되는 ‘언어 순수주의’의 입장에서는 가능한한 우리 말의본모습을 끊임없이 되살리며 외래요소를 배격하려 하지만, 한편에서는 고종석 같은 이가 외래문화에 감염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언어가 세련되어지는 것을 찬미하고 있으며, 이 방향의 극단에는 복거일 같은 이가 있어, 도구로서의 언어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우리 말을 버리고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쓰자는 의견도 내어놓고 있다.

즉 근대화 이후, 한국어를 중심으로 한 식자(識者)들의 논쟁은 외국어가 한국어에 끼치는 영향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초점으로 두고 이루어졌지만, 정작 한국어에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요소는 식자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곳에서 자라나고 있었으니 통신문화의 발달이 한국어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다음의 글을 한번 읽어보자. (출처:www.idoo.net)

글⑨ 홈 무지 옙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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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듀九 싀풔숴훀 어릨 因仁川女中싁⑨들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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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문화의 등장과 함께 빠른 시간 안에 경제적인 의사교환을 한다는 명분 하에 축약된 어휘나 문구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몇몇 온라인 게임의 언어 필터링(욕이나 상소리를 입력못하게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괴하게 변조된 어휘(한자의 음독/훈독, 음운 분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글자로 감정을 표현하는 ‘emoticon’이 덧붙여져서 시작된 한글의 파괴는 감각적이며 엽기적인 것을 선호하는 신세대의 취향에 부합하며 통신상의 언어에서 지배적 현상으로 퍼지게 되었다. 기성 세대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쉽게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그 징후는 어린 세대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프리챌, 다음, 세이클럽과 같은 대형사이트의 동호회들에서 특히 두드러져서 ‘통신체’라는 신조어로 불리우며 초등학생들의 일기장과 대화를 점령하고 초등학교 국어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한국어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과격한 표현을 쓴 이유도 문제가 되는 통신체를 남발하는 대상이 한국어의 체계를 미처 습득하지 못한 초,중등학생이기 때문이다. 이런 언어파괴 현상을 실질적으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고등학생 이상의 한국어 숙달 세대들은 일종의 유희로서 통신체를 즐겼으나, 중학생도 받아쓰기 시험을 쳐야 할 정도로 기성세대에 비해 국어에 능숙치 못한 한국의 어린 세대들은 언어사회에서 의사소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약속’은 미처 배우지 못한 채로 선배들이 시작한 기괴한 유희에만 탐닉하고 있는 셈이 되겠다.

한글에는 우리 겨레의 얼과 역사가 담겨 있으므로 소중하게 가꾸어야 한다는 언어 순수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어린 세대들의 정신을 담을 그릇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것이며, 언어를 도구로 보는 입장에서도 차세대의 언어구성원들이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약속(문법과 맞춤법)에 능숙하지 못하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최근 식자들의 이슈였던 이윤기씨와 권오운 씨의 비문논쟁(非文論爭: 표준어 문법과 작가의 상상력을 통한 어휘변조의 허용여부를 놓고 벌어진 논쟁)은 차라리 사치스러운 논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통신체가 기괴하다는 표현을 썼으나, 일본어와 영어가 한국어에 끼친 영향과 마찬가지로 통신문화의 영향도 한국어가 피해갈 수 없는 관문임은 틀림이 없고 마땅히 그에 적응을 해야한다. 기괴하다는 것은 서로간에 약속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쓰고 있으며 편리하게든 아름답게든 다듬으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통신문화라는 뜻하지 않은 장벽에 부딪힌 한국어의 나아갈 길을 선도해주는 것이 국어학자들과 문필가들의 역할이며, 그 길로 이끌어주는 것은 방송매체와 교사진의 할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분인 언어의 올바른 전범(典範) 제시는 망각하고 시청률 지상주의의 볼모가 되어 비어, 속어를 남발하고 있는 방송매체들은 자성해야 할 것이며, 국어학자들도 고답적인 논쟁은 지양하고, 새세대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올바른 통신언어의 길을 탐색하고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언어사용면에 있어 어린 세대들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대학생들이 무분별한 통신체의 사용을 통해 어린 세대들의 교육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