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과학의 과학사적 의미
거대과학의 과학사적 의미
  • 임경순 / 인문사회학부 교수
  • 승인 200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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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후 발전한 과학의 큰 특징···원자탄 개발이 출현 바탕
거대과학의 사회적·역사적 의미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전된 과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거대규모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소위 ‘거대과학(Big Science)’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즉 과거에는 개인이나 작은 집단에 의해서 수행되던 연구가 수십, 수백 명의 과학자들이 연구팀을 짜서 서로 협동해서 연구하는 식으로 발전하였다. 전쟁 중에 진행된 원자탄 개발은 이러한 거대과학의 출현의 바탕이 되었는데, 전쟁 후에 이런 연구는 주춤하다가 한국전쟁 이후 동서 냉전체계가 심화되면서 정부, 대학, 연구소, 군부, 산업체가 서로 연결되어 추진되는 거대규모의 과학이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게 된다. 수백 명의 박사급 과학자들이 거대한 입자가속기를 이용해서 함께 연구에 참가하는 쿼크 입자 발견 계획, 미항공우주국의 허블우주망원경 계획, 인간 유전체 해독연구인 인간게놈프로젝트, 제어핵융합 연구개발 계획 등등 수많은 거대규모의 연구가 이 시기에 나타났다.

로렌스버클리연구소와 거대과학의 시작

로렌스버클리연구소(Lawrence-Berkeley Laboratory) 혹은 그 전신이었던 방사연구소(Radiation Laboratory)는 입자 가속장치인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한 어니스트 로렌스(Ernest Lawrence)가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분교) 물리학과의 작은 연구실에서 거대한 입자가속기 연구소로 발전시켰던 과학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연구소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 연구소는 미국의 거대과학이 지니는 여러 형태의 존재 양식을 마련해 놓음으로써 전후 거대과학 연구가 보편화되는 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거대한 연구소가 출현되기 위해서는 물질적 자원, 돈, 인력, 기술력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했는데, 로렌스는 이런 모든 것을 자신의 주어진 여건으로부터 결합해내는 놀라운 재능을 지닌 사람이었다. 로렌스의 방사연구소의 핵심 실험장치인 사이클로트론은 이 연구소를 둘러싸고 있었던 고전압 기술, 무선공학, 기계공학 등과 같은 기술적 조건이 아니었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시작된 골드러시(gold rush) 이후 캘리포니아에서는 광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했고, 이에 따라 20세기 초부터 이곳에서는 수많은 수력발전소가 생겨났으며, 산업체와 대학에서는 산학협동을 통해 다양한 고전압 기술이 축적되어 있었다. 사이클로트론의 원리와 유사했던 공진가속 방법은 1928년에 이미 독일 아헨의 비더뢰(Rolf Wideroe)에 의해서 고안되었고, 가속장치를 사용해서 처음으로 핵변환을 일으켰던 캐번디시의 월튼(E.T.S. Walton)도 이 방법으로 가속기를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나 사이클로트론이 개발되기까지는 아직 가속 입자 집속 기술을 포함한 수많은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했다.

캘리포니아의 무선공학과 기계공학은 로렌스와 리빙스턴(M. Stanley Livingston)이 사이클로트론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했던 거대하고 강력한 전자석의 제작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당시 팔로 알토에 있던 연방전신회사(Federal Telegraph Company)는 대륙간 무선 전파를 발생시키기 위해서 거대한 풀젠 아크 발생기(Poulsen arc generator)를 개발했었는데, 이 회사가 이 속에 사용하였던 84톤의 거대한 자석을 로렌스에게 제공했다. 또한 이때 캘리포니아의 수력발전의 역사와 함께 성장한 기계 제작 회사인 펠튼 수차회사(Pelton Waterwheel Company)가 이 자석을 1931년 12월 제작된 최초의 27인치 사이클로트론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해주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캘리포니아에서 발달했던 무선 기술은 로렌스에게 사이클로트론에서 양성자를 가속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강력한 고주파(radio frequency) 전기장을 만들어 주었다. 당시 로렌스의 학생이었던 리빙스턴과 스론(David Sloan)은 가속장치를 만들기 위해 고주파 발진기를 만들었었는데, 이때 파롤 알토의 고주파관 제작자였던 찰스 리튼(Charles Litton)이 거대한 사이클로트론에 쓰일 발진기의 고주파관을 제작해주었던 것이다.

버클리의 방사연구소와 같은 거대한 연구소가 출현함에 따라 과학연구방식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된다. 우선 방사연구소가 계속 성장하면서, 이곳에서는 과학과 기술과의 구별이 점점 더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즉, 과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사이클로트론을 개발했지만, 그 진행 과정에서 무선공학, 진공공학, 기계공학적 지식이 과학적 지식과 함께 어우러져 진행되었고, 많은 특허도 출연되었다. 또한 다른 연구소가 사이클로트론을 만들 때 여기서 쓰던 변압기, 검파기, 전송선, 발진기, 전극, 진공 상자, 펌프, 검측기 같은 것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처럼 가속기 연구소 자체가 하나의 기술의 종합체였다.

과학과 기술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면서 가속기 연구소에서는 기존의 학문 분야 사이의 경계도 모호해졌고, 소위 다목적(multi-purpose) 연구,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 혹은 다분야간(multi-disciplinary) 연구라는 새로운 형태의 연구 활동이 출현하게 되었다. 화학자, 생물학자, 의사들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새로운 방사성 물질, 고전압 X-선, 중성자 빔을 이용하기 위해서 몰려들었고, 이에 따라 방사화학, 방사생물학, 핵물리학, 핵의학 등이 서로 결합된 완전히 새로운 학제간 분야인 핵과학이 생긴 것이다. 또한 가속기 연구소는 과거의 과학 연구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군대식 위계질서와 중앙집권적인 과학연구 관리체계를 만들어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로렌스의 방사연구소는 엄청난 팽창을 하면서 거대과학의 세계적인 원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거대과학 연구활동의 특징

가속기와 같은 거대규모의 과학연구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연구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치, 경제적인 요인이 과학연구를 크게 제한하고 있다. 한 예로 1990년대에 이르러 냉전이 종식되고 국방연구가 퇴조하면서 거대한 규모의 초전도 충돌형가속기(SSC: Superconducting Supercollider) 건설 계획이 폐기된 것을 들 수 있다. 이 계획이 중단되어 새로운 통일장 이론의 검증을 필요로 했던 고에너지 물리학 분야에서는 과학활동이 크게 위축되게 되었다. 이렇듯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입자물리 이론 분야와 같은 순수과학 분야의 발전 여부도 정치, 경제적인 요인에 의해서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거대과학 분야에서는 과학연구 자체도 실험기구에 대한 의존성이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지게 된다. 만약 어떤 연구소에 거대한 거품 상자가 설치되어 있을 경우, 한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에는 거품 상자보다는 다른 탐지장치가 더 좋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실험장치를 바꿀 수는 없다. 그 행위자체가 엄청난 연구비를 필요로 하고, 장기적인 연구소의 계획과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이 소속하고 있는 연구소의 설비에 맞게 자신의 연구를 변형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결국 거대규모의 과학활동에서는 일단 설치된 실험장치가 그곳에 있는 과학자들의 장기적인 연구활동을 제한하게 된다. 이렇게 거대 규모의 연구에서는 과학자들이 과거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연구주제를 선택하지 못하고, 거대한 연구조직의 위계 속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것이 관례가 된다.

거대과학 연구활동의 또 다른 특징은 기술자가 과학 실험과정에서 단순한 보조 차원을 넘어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연구소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계의 역할이 커지면서 실험활동에 있어서 기계와 인간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주로 인간이 중심이 되어 기계를 조작하며 능동적으로 실험을 했으나, 이제는 측정자체도 컴퓨터와 같은 고도의 기계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과학자들의 활동은 이런 고도의 측정기구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실험 행위 자체도 점차로 과학자와 실제 측정장치와의 구체적인 접촉이 아니라, 과학자와 데이터 처리장치와의 간접적인 대화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이런 행위는 또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매일 같이 반복되는 아주 판에 박힌 활동이 된다. 따라서 몇몇 과학자들은 이런 활동이 과학자들의 창조성을 박탈한다고 생각하면서 거대과학 연구활동에 실증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로 거품상자를 발명해서 노벨상을 받았던 글레이저는 자신의 거품상자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이런 반복적인 과학활동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고 물리학 분야를 떠나 분자생물학 분야로 연구 분야를 옮겨 버렸다. 결국 거대한 관료조직 내에서 제한을 받으면서 연구를 해야 하며, 또한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을 해야 하는 말단의 과학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과학활동을 하도록 만들어줄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 거대과학이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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