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를 위한 적극적 역량 강화와 권위·정실주의 등 ‘문화적 공기’ 정화 필요
교류를 위한 적극적 역량 강화와 권위·정실주의 등 ‘문화적 공기’ 정화 필요
  • 이신영 기자
  • 승인 2005.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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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몇 가지 특징적인 교류의 예를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다양한 세미나 안내나 저명인사들의 강연회 공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미 교류를 통한 학제 간 연구는 역행할 수 없는 시대의 큰 흐름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당당한 주체로 이를 이끌어가야 할 교수와 대학원생의 전반적 현실은 어떠한가?

많은 세미나가 하루가 멀다 하고 진행되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주제와 직접적 관련을 맺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인 경우가 태반이다. 흔히 ‘현실이 너무 바빠서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 류성호 교수는 “여유는 역량에서 나온다. 역량이 없기 때문에 여유가 없는 것이므로 이 사실을 인정하고 부단히 역량을 키우는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대학원생 주도 세미나의 경우 아주 바람직한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추진하는 대학원생들의 마음이 무거운 경우가 많았다. 적절한 사람을 물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상당한 지적인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세미나에 참석해도 실질적으로 별로 얻을 게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당장 현재 자신의 연구와 관련성 차원에서는 공감할 수 있지만 역량이 출중할 경우 새로운 관련성을 찾아 새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때 자신의 역량에 대한 또 다른 불신의 표현이 아닐까?

활발한 교류를 위해 개개인의 노력은 필수적이지만 더욱 큰 차원에서 문화적 공기가 정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몸담고 숨쉬고 있는 한국사회의 탁한 기운, 예컨데 권위주의나 정실주의와 같은 인습은 분야를 초월하는 장애 요소이다. 유학 간 선배들이 즐겨 이야기하는 수평적 사제 관계는 활발한 대화를 촉진시켜 창의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독일과 공동연구를 통해 올해 Cell지에 논문을 게재했던 유종상 학우는 교류에 있어 상호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서상 한국인들은 공동 연구 시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나중에 갈등의 불씨가 되어 교류를 껄끄럽게 한다는 것이다. 류성호 교수는 활발한 교류를 위해 “집단 속의 개인보다는 개인 그 자체로서 개인의 정체성이 정의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사회는 한 개인 자체를 두고 평가하기보다 소속된 집단이나 연줄을 통해 한 개인을 평가하려는 성향이 강한데 이러한 문화가 한 개인의 자유로운 교류를 억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꾸 자신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소속을 명확히 하려는 태도가 교류를 막는 사고의 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경계와 소속 언어들이 자신의 사고의 영역까지 제한할 수 있는 탓이다. 개개인이 독립된 단위여야 하며 학과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과 얼기설기 얽혀있는 매트릭스 구조, 소속이 불분명하여 관리가 힘들고 회색분자처럼 비춰질 수 있지만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이 최대로 증진될 수 있는 구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