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과학 연구의 현황과 전망
거대과학 연구의 현황과 전망
  • 남궁 원 / 물리 교수 · 대학원장
  • 승인 200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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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0년간 노벨상 수상자를 70명 이상 지원 배출한 미국에너지성은 최근에는 향후 20년간에 걸친 국가공동이용설비계획을 발표하였으며 총28개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를 제시하였다. 우리정부는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으로 10개 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IT, BT, NT 등 6T 및 기초과학 추진 정책을 수립하였다. 돌이켜 보건데,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여 닐 암스트롱이 첫발을 옮기는 장면의 실황 중계는 전 인류에게 20세기 과학기술의 위대한 성취를 보여줌과 함께 특히 젊은이들에게 한없는 꿈과 희망을 제시하였다. 그 후 35년, 그날의 그 젊은이들은 분명 선진국과 겨룰 수 있는 첨단기술 일부를 보유하고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거대과학이란 아폴로계획과 같이 프로젝트 수행에 많은 경비가 요구되는 단일 과학프로젝트를 지칭하며 개별 국가가 수행하는 국가프로젝트, 유럽연합과 같은 지역공동프로젝트, 세계적으로 추진하는 국제공동프로젝트로 구분한다. 지역공동프로젝트로는 제네바 근교에 자연의 기본법칙을 연구하는 물리학연구용 입자가속기(LHC) 건설이 있다. 이 설비의 규모는 둘레가 약 30km이며 제네바 국제공항 부근 지하 수십 미터에서 마을을 지나 프랑스 영토의 알프스산맥 아래를 통과한다. LHC를 건설하는 CERN 연구소는 50년 중반에 유럽의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설립하였으며, EC와 EU를 염두에 둔 시범적인 지역공동프로젝트이다. 국제공동프로젝트는 UN 차원에서 수행하는 거대과학으로 이제까지 전례가 없으며, 핵융합연구인 ITER와 입자물리연구용 ILC가 이에 해당한다. 거대과학의 비용은 수 천억원에서 수 조원 수준의 예산과 10여년의 준비 및 건설기간이 요구된다.
우리의 거대과학은 포항공대의 포항방사광가속기(PLS)와 원자력연구소의 다목적원자로(KMRR)를 시작으로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초전도핵융합연구시설(KSTAR), 원자력연구소의 양성자가속기(KOMAC) 그리고 포항공대의 X-선 자유전자레이저(PAL-XFEL)를 들 수가 있다.

포항방사광가속기는 거대한 빛 공장으로 주로 강력한 X-선을 생성하는 설비이다. 뢴트겐의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의 첫 수상과 더불어 X-선이 학문 발전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인류사회에 큰 공헌을 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나, 뢴트겐의 X-선 발생 원리와는 다른 원리로 더욱 강력한 X-선이 우주에서 생성되는 것을 알았다. 실험적으로는 2차 대전 직후에 미국 GE 연구소의 전자가속기에서 처음으로 방사광이 발생함을 관찰하였고 이것은 입자가속기의 에너지를 올리는데 방해요소였지만 결정학연구자들은 짧은 파장의 빛이 필요하였으므로 그들에게는 대단히 귀중한 실험설비로 인지되었다. 다른 목적으로 건설한 설비에서 빛을 얻어서 연구하자니 불편하지만 좋은 연구결과를 많이 생산하였고 이런 설비를 제1세대 방사광가속기라 한다. 이용자가 증가하고 다른 학문연구에도 활용이 확대되어 방사광연구 전용으로 몇 백 명이 동시에 실험을 할 수 있는 향상된 설비를 제2세대로 분류한다. 80년 초에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의 선진국이 보유하였으며 미국은 동부, 중부, 서부에 방사광 연구센터를 운영하였다, 가속기분야의 연구가 진척되어 삽입장치가 개발되고 제2세대 보다 수만 배나 강력한 빛을 내는 설비가 제안되어 80년 중반에 선진 각국은 원천기술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 최우선사업으로 건설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고 김호길 박사는 이런 국제적 흐름을 잘 알고 있었으나 건설비, 기술, 이용자가 없는 여건에서 포항공대설립을 계기로 포항제철 특히 박태준 회장의 지지를 끌어내고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들을 동원하였다. 당시에는 상상도 못하는 건설비 그것도 공적자금을 사용한다는 비판 속에서 1994년 12월 성공리에 가동하게 되었으며 제3세대 방사광가속기로는 유럽연합, 미국, 이태리, 대만에 이어 5번째 보유국이 되었고 선두와는 2년 격차 뿐이었다.

이제 27개의 빔 라인을 가동하며 물리, 화학, 생명, 신소재, 나노기술 등 수많은 학문분야 연구에 연간 1,000여명 이상의 과학자
에게는 국내유일의 연구 설비가 확보되었다. 개발당시에는 신소재 개발의 이용자가 많았으나 그간 생명과학 발전과 더불어 이 분야의 이용사례가 급증하였고, 특히 단백질구조연구에는 필수적인 설비가 되었다.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단백질을 결정으로 만들어야 하는 준비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시료준비의 애로사항 해소에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요구하게 되었고, 최근 해외에서 입증된 실험에 의하면 제3세대 보다 100억 배 강력한 방사광 생성이 가능하여 선진국은 제4세대를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제3세대와 다른 점은 선형가속기를 사용해야하고, 특수 삽입장치가 50 미터 이상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에 25억 전자볼트 선형가속기를 보유한 포항공대는 기존 선형가속기의 성능향상을 통하여 Hard X-선 파장에서 제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기획하고 이를 정부에 건의하였다. 지난 7월 국제물리올림피아드 개회식에 참가한 노무현 대통령이 포항가속기연구소를 방문하여 이러한 국가공동연구 설비가 국제경쟁력 유지에 필요함을 공감하고 적극 지원을 다짐하게 된 것이다. 현재 제4세대 방사광가속기인 X-선 자유전자레이저를 건설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선형가속기연구소의 LCLS 프로젝트가 2008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독일 DESY 국립연구소의 EU-XFEL 프로젝트가 유럽지역 공동프로젝트로 2012년 가동을 예상한다. 포항공대의 PAL-XFEL은 2009년 가동을 목표로 설계를 착수하였으며 우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그리고 선두주자와의 격차는 1년 이내로 예상한다.

PAL-XFEL은 생명과학, 초고속화학반응 등 첨단연구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1958년 설립 이래 우리가 직접 원자로를 설계 제작하여, 원자력기술을 정착시켜야 하는 기관의 염원이었다.

80년 중반에 KMRR(다목적원자로)계획을 승인받아 94년에 가동을 시작으로 95년 초에는 임계반응을 기록하였으며 포항방사광가속기와 함께 우리나라 거대과학의 효시를 이루었다. 한국형 원자로개발의 기반을 이룩하였으며, KMRR의 중성자는 기초 및 응용과학연구를 위한 국가이용자설비뿐 아니라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산하여 의학 및 산업에 필요한 동위원소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중성자는 물질의 내부까지 깊숙이 투과하므로 신소재 구조연구에는 방사광과 더불어 상호보완의 설비이다. 원자로에서의 중성자는 연속으로 생성되므로 순간적으로 강력한 중성자를 요구하는 이용자들의 수요를 만족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양성자가속기를 사용하여 강력한 양성자를 수은과 같은 질량이 큰 물질의 핵을 분쇄하면 엄청난 중성자를 순간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설비를 Spallation Source라 하며 미국은‘06년에 일본은‘07년에 완공예정이다. 원자력연구소의 KOMAC 프로젝트는 예산의 확보와 부지선정 문제로 원래계획에서 많은 차질이 발생하였다. 특히 요즈음 사회문제가 된 방사성 폐기물 저장소를 유치하는 지자체에 건설해야한다는 정책으로 인하여 양성자가속기의 건설은 더욱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2차 대전 중에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하탄 계획이 진정으로 거대과학의 효시인 셈이다. 이어 냉전시대의 대표적인 미·소 경쟁은 수소폭탄과 인공위성개발이었으며 수소폭탄은 수개월의 차이로 소련이 선점하였다. 원자폭탄의 원리를 이용한 원자로는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데 수소폭탄의 원리를 에너지 생성에 이용할 수 있는지 하는 과제가 대두되었다. 수소폭탄의 원리인 핵융합반응은 중수소 원자 두개를 결합하여 헬륨원자를 만들어 엄청난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핵융합반응은 태양을 비롯한 모든 별들을 유지하는 우주의 기본반응이다. 원자로의 원료인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폭탄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어 국제적인 규제대상인 반면 핵융합에 필요한 중수소는 바닷물에 인류가 수 만년 사용할 수 있는 거의 무한정의 청정 에너지원이며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가 없다. 선진국은 수폭개발 이후 핵융합로 개발에 착수하였으나 너무 조건이 까다로워 기초과학으로 분류하고 지난 50년간 플라스마 물리학에서 주로 이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포항방사광가속기와 다목적원자로의 성공은 정부에게 우리과학자들의 거대과학 프로젝트의 수행능력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설비 자체보다 더 중요한 신용을 얻게 되었고, 96년부터 플라스마연구용 KSTAR(차세대초전도핵융합연구)프로젝트를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서 시작하였다. 이에 필요한 초전도 전자석기술을 비롯한 원천기술을 확보하며 KSTAR 계획은 2007년에 초기조립이 완성될 예정이다. KSTAR 설계는 가장 선구적인 것이어서 국제공동프로젝트인 ITER의 시험설비로 인정되었고 KSTAR를 국제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즉, 미국, 일본, 유럽의 과학자들이 ITER가 완성되는 2015년까지 KSTAR에서 예비실험을 하여 효과적인 ITER 운전조건을 실증하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에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나아가서 공동연구자와 공동연구 설비를 보유하게 된 것은 세계 10-11위인 국력
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과 우리 과학기술인의 수준이 그들과 대등한 수준에 있음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국가가 요구하는
국가공동이용설비 건설을 우리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국제적인 리더그룹의 일원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