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94년 완공된 포항방사광가속기건설(이하 가속기)의 추진도 김호길 학장의 큰 업적 중의 하나다. 비록 완공을 보지 못하고 별세하고 말았지만, 그의 지론에 의해서 건설된 가속기는 현재도 화학, 물리, 소재분야, 전자, 화공 등에 대학원생 포함 연 600 여명의 연구인력들이 활용하여 기초겴읏?상업화에 관련된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내는 국내 과학계의 중요한 시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또, 국내 연구인력의 수준에 있어서도 가속기 건설 전 10여 명밖에 되지 않았던 방사광이용 경험자 수가 40배 이상 증가하는데 일조하는 등 큰 역할을 하여 우리나라도 방사광가속기연구 시기가 비슷한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손색이 없을 정도의 인력풀을 갖추게 되었다. 가속기 건설 자체에 있어서 가속기 이용자의 저변 확대에 관한 문제, 또 가속기 건설 과정 중 저장링의 에너지를 1.5GeV에서 2.0GeV로 바꾸기로 결심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 등을 모두 해결하고 설득시키며 건설한 가속기의 현재의 위상을 볼 때, 김호길 학장의 뜻이 한국 과학사에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87년말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의 최신 방사광시설인 NSLS 관계자들이 우리대학을 방문하여 ‘NSLS의 설계도면과 필요부품을 다 주어도 조립조차 할 수 있는 능력이 안된다.’라고 말한 지 8년 후 95년, 포항을 방문한 ALS(Advanced Light Source)소장이 가속기를 버클리로 옮기고 싶다고 한 말에서 한국 과학과 가속기 연구의 발전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대학에 중진급 교수들이 몰려들고 포항방사광가속기의 건설이 확정된 88년은 김호길 학장이 89년도 본지 3호 신년사에서 밝힌 바 있듯이 ‘한국 기술적 과학의 원년으로 후세의 사가들이 기록할 계기를 만든 해’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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